11년 동안 출근이 즐거울 수 있었던 이유.
왜인지는 몰라도 지난번 체코에게 편지 쓰듯 써 내려간 글이 마음을 편하게 했어요. 그래서 이번 글도 친구에게 쓰는 편지처럼 써볼까 합니다.
이전에도 말했던 적이 있지만 저는 좋아하지 않는 것은 곧 죽어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살면서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는 것쯤은 잘 아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선택권이 주어지는 한 저라는 사람은 좋아하는 것, 마음이 먼저 가는 것을 덥석 잡을 거라는 걸 알아요. 가이드로 계속 살고 싶어 사업자를 낸 것도 비슷한 이유였죠. 여전히 하고 싶은 이 일을 계속하려니 더 나은 방법이 없었거든요.
물론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면서 따라온 수많은 부수적인 '하기 싫은' 일들은 달갑지 않은 별책부록입니다. 이를테면 피고용인이었다면 굳이 모르고 살았을 온갖 법적인 절차와 서류 업무들은 정말이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미루게 되는 좋아할 수 없는 업무들이지요.
그 사이 해가 바뀌었으니 어느덧 십일 년 차. 그리고 여전히 저는 이 일이 좋은 것 같습니다.
저는 사랑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하게 되는 것들이라 정의합니다. 수지타산, 이성적 논리, 현실적 판단 등 세상이 많은 것들을 판단하는 잣대로 꺼내길 좋아하는 수많은 '합리적인' 기준들. 그 기준들로 보자면 삶에서 내보내야 마땅할 대상이나 행위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정하게 되고, 지속하게 되고 그렇게 내 삶에 둘 수밖에 없다면 그 비합리적인 선택의 바탕은 그 대상을 향한 '사랑'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게 되는 것이죠.
가이드로 살고 싶어 자영업자의 길을 선택하면서 내가 노동한 만큼만 벌게 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떠나는 한국 휴가. 그 휴가를 다녀오면 다음 달 제 통장에는 어떤 수입도 들어오지 않아요. 어쩌다가 몸이 아프기라도 하는 날엔 회복을 위해 쉰 날 만큼의 수입을 포기해야 합니다. 일하는 만큼 벌고, 쉬는 만큼 그 공백을 감당해야 하는 한 달을 벌어 다음 달을 살아내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최근 오랫동안 애정하고 있는 작가님들의 팟캐스트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베스트셀러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로 유명한 김하나, 황선우 작가님 두 분이 운영하는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라는 프로그램이에요. 그날 들었던 회차에서는 직업인으로서의 고민과 좋아하는 일에 대한 고민을 다뤘는데 선우 작가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되 좋아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이 일을 이토록 오래 좋아할 수 있었던 이유를 또 하나 깨닫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바로 제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이 일을 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이었죠.
'가이드'로 사는 데도 다양한 방식이 있습니다. 여행을 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고, 여행 시장에는 그 다양한 수요에 부응하는 다양한 방식의 상품이 판매되고 있어요. 그리고 참 운이 좋게도 저는 첫 직장에서 제가 가장 잘하고 또 즐길 수 있는 방식의 가이드가 되는 교육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선 첫 직장의 투어 업무 중에는 판매 일정이 없었어요. 여행하는 나라와 도시를 소개하고 설명하는 가이드의 본질적인 임무에 충실하면 되었죠. 주로 투어 중 발생하는 쇼핑 시간을 통해 가이드들은 부수입을 올리는데 그러다 보면 사람의 마음이란 게 어쩔 수 없이 내가 더 이득이 되는 손님에게 기울게 되는 것 같습니다. 손님들도 가이드가 신경 쓰여 고마운 마음이든 혹은 부담스러운 의무감 중 무엇이 되었든 간에 불필요한 소비를 할 수 있고요. 결국은 서로의 선의를 순수한 선의로 기꺼이 받지 못하는 불편함이 자리할 수 있겠죠.
업무에서 이런 일정이 포함되어 있었다면 제가 직업인으로서 얼마나 만족스럽고 자부심 넘치고 행복한 가이드가 될 수 있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싫어하는 것은 곧 죽어도 못하는 성격처럼 진심에서 동하지 않은 말, 마음에 없는 말, 속이는 말 그리고 스스로 옳고 좋다고 믿지 못하는 것을 그런 척하는 일도 결코 잘 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아마 저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이 업계를 떠났을지도 모르겠네요.
다행히도 첫 직장에서 요구하는 업무는 다른 류의 자질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소중한 여행에서 하루를 책임지기 위해 더 깊게 배우고 공부하는 자세, 상대의 니즈를 관찰하고 살뜰히 살피는 연습, 모두의 안전한 여행을 위해 한 발 먼저 내다보고 한 발 먼저 움직이는 태도, 여행자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사소하고 작은 순간들과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섬세한 시선과 감각을 벼리는 일들이었죠. 진심이 들어가야 하는 일이었기에 이 일을 더 잘 해내고 싶어 질수록 개인으로서의 제 자신도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덕에 이리도 오래 제 직업에 대한 애정은 제 자신과 함께 쑥쑥 자랄 수 있었나 봅니다.
저는 조직 생활에 알맞은 사람이 아닙니다. 일찌감치 성인이 되자마자 한국을 떠났던 이유도, 애초에 한국에서의 직장 생활은 고려하지 않았던 것도 다 같은 이유였어요. 하물며 사주팔자, 운세, MBTI, 서양 별자리조차도 하나의 예외 없이 제가 조직 생활보다는 독립적인 일이 더 잘 맞는 사람이라고 저를 단정 짓네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말하자면 확인 사살을 당한 기분이었는데 오히려 그 사실이 저를 참 후련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비록 '불로소득'을 도모할 수 있는 직업군과는 거리가 멀지만 '자영업자 가이드'로 살고 있는 지금이 꽤 만족스럽습니다. 돈과 시간 중 하나를 온전히 나의 뜻대로 택할 수 있다는 자유와 나의 시선과 결이 담긴 투어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직업 만족도를 최상으로 유지해 주는 것 같아요. 경제적으로 거창한 성공은 아직 이루지 못했을지 몰라도 성인으로서 내 한 몸을 건사할 수 있는 경제활동을 하고, 직업인으로서 하는 일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내일 또 하루를 기꺼이 가이드로 살고 싶게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쓰고 나니 내일의 출근이 더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