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가이드와 여행하고 싶으신가요?
제 지난 글들을 읽으신 분들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저는 제 일을 정말 좋아합니다. 나라는 사람을 들여다보며 무엇이 나를 구성하고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거기엔 꽤 큰 부분으로 직업인으로서의 자아가 있더라고요. 대체 이 직업에서 어떤 것들을 얻고 느꼈기 때문일까요?
한 번은 단짝친구인 그리스 사람 M과 우리가 불안감을 느끼는 순간과 그 감정의 형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습니다. 같은 해에 체코로 이주한 우리는 정말 많은 공통점과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어서 많은 주제에서 의견을 같이하는데, 흥미롭게도 불안을 느끼는 방식만큼은 완전히 정반대이지 뭐예요.
저는 불안함을 '떨어져 나갈 듯한 위태로움'으로 느낍니다. 불안함이란 감정을 떠올리면 마치 내가 헬륨 풍선이고 아주 얇은 끈 하나로 세상과 이어져있는데 그 끈이 툭 끊어져 이 땅에서 저 멀리멀리 혼자 날아가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런데 M은 불안함을 '땅이 나를 집어삼키는 듯한 질식하는 느낌'으로 느낀다고 했어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잃어가는 것 같을 때 질식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그날 저희는 긴 대화를 나누었어요. 단체에 속하는 것을 중시 여기는 동양의 집단주의 문화와 서양의 개인주의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어떻게 같은 불안을 이렇게 정반대의 기분으로 느낄 수 있는지를요. 그리고 그날의 대화를 통해 저는 다시 한번 타인과의 유대가 제게는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참 중요한 요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이런 기질들 덕분에 가이드로 살아가는 일이 더욱 즐거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행자와 도시를, 두 개의 다른 세상을 잇는 일이기도 하지만 개인적 측면에선 타인이라는 또 다른 우주를 만나는 일이니까요. 사람 간의 인연에 많은 의미를 두고 마음을 주고받는데서 느끼는 따뜻함을 일상의 연료로 삼는 사람으로서 이 직업은 일상에서 개인적 행복 지수를 올리는데도 한몫을 해주었던 것이죠.
살면서 새로운 일과 인연을 대할 때면 저는 노력, 흐름, 수용이란 세 단어를 순서대로 적용하곤 합니다. 마치 간단한 내 인생 사용 설명서 같기도 한 이 매뉴얼이 제 직업에도 적용된단 걸 어느 날 문득 깨달았죠.
투어 중에 남몰래 혼자 하는 게임이 있습니다. 너무나 사소하고 비밀스러워 손님들은 알아차릴 수 없는 이 게임들은 투어 중에 제게 남모를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주는데, 그 게임들은 이를테면 '긴 문장을 잘못 발음하거나 틀리지 않고 한 번에 끝내기', '예약한 시간에 맞춰 식당 도착하기', '장소를 이동하며 재생한 음악이 끝나는 순간 정확하게 다음 장소에 도착하기', '그날의 분위기에 맞춰 선곡한 음악을 틀고 손님들께 '엄지 척' 받기' 같은 것들이에요.(절대 실패할 수 없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트는 캐럴 만세!) 그 작고 사소한 수십 번의 게임을 매 순간 반복하다 보면 꽤 보람찬 하루가 만들어져 있죠. 이 게임들은 제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안의 업무들만큼은 최선의 결과로 내놓기 위한 '노력'입니다.
그러나 불가피하게도 가이드는 언제나 업무 완성도의 얼마쯤은 그날의 운에 내줄 수밖에 없는 직업이에요. 모든 교통수단이 제시간에 오가고, 모든 관광지를 대기 없이 입장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하물며 관광지 개방 여부부터 날씨까지 많은 부분이 통제 밖의 것들 투성이라 그 '흐름' 속에서 가장 좋은 방향을 찾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죠. 그래서 저는 언젠가부터 '아주 사소하고 작은 운'에도 감동하고 기뻐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손님들과 함께 타는 트램이 운 좋게 그날따라 여유 있을 때, 십분 정도를 서서 설명해야 하는 곳에서 다른 인파에 치이지 않는 상대적으로 아늑하고 편한 자리를 내 손님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 때, 평소에 열리지 않는 장소의 개방으로 특별한 경험을 선사할 수 있을 때 추운 날 따뜻하게 데운 와인 한 모금이 주는 온기처럼 행복이 몸속 어딘가에서 사르르 퍼져나감을 느낍니다. 이렇게 사소할지라도 분명히 운으로만 얻을 수 있는 순간들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 가이드가 되지 않았다면 알 수 있었을까요?
마지막은 수용입니다. 평소 십 분 내외면 들어갈 수 있는 장소에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 한 시간을 꼬박 넘겨 입장하게 된다거나, 날씨와 각종 사고로 기존에 이용하던 대중교통수단이 멈추고 발이 꽁꽁 묶이는 것쯤은 이제 변수로 치지도 않는 내공을 가지게 되었지만, 어쩌다 예정에 없던 관광지의 변수로 루트가 변경되거나 어떤 장소를 방문할 수 없게 되는 날은 언제나 투어를 마무리하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걸 알기에 손님들께 발생한 변수에 대한 사과를 드린 후 집으로 돌아오는 스스로에게도 말해줍니다. '괜찮아. 최선이었잖아.'
노력한 뒤에 맡기고, 맡긴 뒤에는 받아들이는 것. 어쩌면 제 직업은 매일 이 세 단어를 연습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직업인으로서 제가 어떤 것을 원하는 사람인지를 분명히 깨닫게 된 것은 몇 년 전 어떤 책의 한 구절을 통해서였습니다. 홍성태 교수님의 '브랜드로 남는다는 것'이란 책에서 아티잔(장인)과 아티스트(예술가)를 비교하는 대목이었는데 저자는 부수적 설명 정도로 사용한듯한 짧고도 명료한 문장이 제게는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을 정확히 자각하게 하는 호명의 순간이었죠.
저는 아티잔의 결을 가진 가이드가 되고 싶습니다. 매일 현장에서 만들어내는 투어 속 사소한 모든 순간 위에 완벽함을 쌓아나가는데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니까요. 사업을 운영한다는 건 어쩌면 남들과 다른 고유함을 바탕으로 자신의 브랜드를 끊임없이 '창조'해나가는 아티스트에 가까운 일일 텐데 저는 그보다는 업무의 반복을 통해 그 속에서 완벽함을 빚어가는 아티잔의 모습으로 이 길을 걷고 싶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빛을 발하는 명품처럼 제가 하는 투어들을 깊게, 더 섬세하게 조각해 보면서요.
오늘은 글이 생각보다 길어졌네요. 지난 11년 동안 이 길을 걷게 해 준 연료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로 미루어야겠어요. 마침 날씨가 따뜻해지고 있으니 따끈한 봄 사진을 좀 곁들여 다시 올게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