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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e Nov 22. 2023

엉덩인 둥둥 뜨고 입은 닫질 못하고. 총체적 난국이로다

[튀르키예 여행] 먹고 자고 수영하고.


아무것도 없는 시골 마을에서는 일정이랄 게 없었다. 저녁을 먹고 수다를 떨다 보면 새벽 두세 시가 되기 일쑤였고 늦게 잠자리에 든 만큼 우리의 기상도 늦었다. 집주인 부부의 기상이 늦다 보니 일찍 일어나도 별달리 할 일이 없었다. 우리는 모두가 잠에서 깰 때까지 전 날 찍은 사진을 돌려보거나 밀려있는 메신저에 답장을 하고, 잠시 두고 온 본업과 관련된 일을 처리하곤 했다.


규나이든. 정다운 아침 인사로 모두가 기상하고 나면 다 같이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남자들이 근처 슈퍼에서 갓 만든 빵을 사 오는 동안 한 사람은 냉장고에서 올리브와 마멀레이드를 꺼내고 누군가는 차를 끓였다. 앞접시와 수저를 테라스에 있는 식탁으로 가져가고 나면 한 명에겐 식탁을 지키는 임무가 주어졌다. 우리의 아침 식사를 호시탐탐 노리는 고양이들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갓 내린 차를 가져오면 식사를 시작할 시간. 아침인지 점심인지 모를, 그야말로 브런치였다. 음식을 끝내고도 차이 몇 잔을 더 마시고 나면 그제야 식사가 끝이 났다. 또다시 모두 함께 일어나 접시를 치우고 식탁을 닦는다. 이제 외출할 준비를 할 차례다.




짠 물이라곤 내 눈물과 땀 말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나라에 살면서 본의 아니게 내륙인 신세가 된 내게 바다란 어떻게 생겨먹어도 매력적인 존재다. 그런데 현관을 열고 나와 집 앞 거리를 곧장 걸으면 바다가 펼쳐지는 곳에 사는 두 부부에게는 바다라고 다 같은 해변이 아닌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매일 저녁 내일은 어느 해변에 우리를 데려갈지 상의하면서도 우리에겐 절대 귀띔해 주는 법이 없었다. 베리 뷰티풀. 그게 전부였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우리의 옷차림은 잠옷 아니면 수영복으로 나뉘었다. 아침밥을 먹고 나면 잠옷을 훌렁 벗어던지고 수영복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그래도 슈퍼마켓에 들어가거나 하는 상황을 대비해 문명인의 구색을 갖추기 위해 천 쪼가리 하나쯤을 덧입는 걸 잊지 않았다. 시동이 자주 꺼져 장거리로는 나갈 수가 없는 아이벡의 지프차를 타고 하루에 하나, 이 동네 근처의 근사한 해변들을 모조리 섭렵했다. 매번 새로운 곳에 가면 우와! 그날 몫의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그러면 그날밤 내일치의 감탄을 위해 두 사람은 또 머리를 맞대곤 했다.




물놀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나는 사실 성인이 된 이후 수영을 배웠다. 여전히 파도에 쓸려 물을 마시면 갑자기 당황을 하기도 해서 뭍에서 멀리 떨어진 깊은 바다로 갈 때는 여전히 생명줄 삼아 작은 팔 튜브 하나만큼은 꼭 챙긴다. 그런 내게 수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사람이 바로 이 세 친구다.


바다 앞 이 마을에서 나고 자라 잠수사로도 일했던 아이벡은 뭍에서 만큼이나 수중에서도 자유로웠다. 밍영과 나를 제외한 세 사람은 모두 수준급의 수영 실력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어주었는데, 선생님의 입장에서 우리는 꽤나 골치 아픈 학생들이었을 거다.


바다로 함께 휴가를 떠났던 내 친구들은 모두 내 '엉덩이 비디오'를 하나쯤 가지고 있다. 물속으로 들어가려고 애를 쓰는데 당최 내 엉덩이는 부표처럼 떠올라 가라앉질 않고, 그 모습이 웃겨 숨이 넘어가는 친구들의 웃음소리는 목소리만 바뀔 뿐 매번 같은 레퍼토리다. 부레옥잠, 고래 같은 별명부터 시작해 엉덩이에 뭘 넣은 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연습만이 살 길이니 올해도 어김없이 끈질기게 도전을 한다. 세 사람의 숨이 넘어간다. 웃긴 사람이란 소리를 들을 일이 없는 난데, 의도하진 않았지만 친구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으니 뿌듯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다.


밍영이는 운동 신경이 뛰어나 무엇이든 한 번 배우면 곧잘 따라 해 나의 부러움을 샀다. 바다 수영도, 잠수도, 다이빙도. 몸으로 하는 모든 활동을 밍영이는 금세 자기의 것으로 체득했다. 그런데 이 아가씨. 입수만 했다 하면 바닷물을 한 사발 들이켰다. 입을 다무는 걸 매번 까먹었기 때문이었다. 물 밖으로 나오면 우는 상으로 그녀가 하는 말 "Why it's salty?" 엉덩이가 안 가라앉는 강습생과 입 벌리고 잠수를 해놓곤 물이 왜 짜냐고 묻는 강습생이라니. 총체적 난국이다.



존경스러운 인내심으로 우리를 가르치던 아이벡이 자기가 뭘 보여줄 테니 동영상을 찍어보란다. 녹화를 누르자 "나는 소피예요."하고 잠수를 하더니 엉덩이만 동동 떠있다. 우리 모두가 자지러지게 웃는다.


물 밖으로 나온 아이벡이 다시 "이제 나는 밍영이에요."하고 또 물속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뒤 입을 벌린 채 밖으로 나와 우는 상을 하고 말한다. "Why salty?"


이쯤 되니 다들 웃겨 쓰러지기 직전이다. 너무 웃어 배는 당겨 아파오고 눈에선 눈물이 주룩주룩 흐른다. 파도가 철썩 치니 이내 얼굴을 적신 게 눈물인지 바닷물인지 모르겠다. 바닷물 안이라면 왠지 슬퍼서 운대도 덜 슬플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를 배꼽 빠지게 만든 아이벡의 영상. 부디 당신에게도 큰 웃음을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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