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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e Mar 05. 2024

루마니아는 두 번짼데, 여기가 수도라고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사진으로 기록하는 여행




작년부터 한 달에 한 번 여행하기를 시도하고 있다. 짧아도 괜찮으니 나의 컴포트 존에서 벗어나 안주에서 멀어지고 새로운 자극을 받기 위한 몸부림이다.


목적지를 정하는 방법은 항공권 검색 사이트.

출발지는 프라하 목적지는 읽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Anywhere'. 날짜는 'Whole month'.

이달의 가장 저렴한 비행기가 나를 어디로 데려다 줄지 운명을 맡겨보는 것이다.


2월의 가장 저렴한 목적지로 몇 군데가 떴다. 벨기에, 루마니아, 불가리아, 이탈리아.

이탈리아는 1월 여행지로 밀라노가 당첨되어 얼마 전에 다녀온 데다 취항지가 모두 가본 곳이어서 패스했다. 벨기에는 가장 저렴한 왕복 스케줄이 30유로였는데, 새벽 5시쯤 출발해 그다음 날 새벽 6시 비행기를 다시 타야 하는 1박 2일은커녕 23시간쯤 될법한 미친 스케줄이라 탈락. 불가리아 소피아가 가장 궁금했으나 하필 가장 저렴한 티켓이 있는 날짜에 투어 스케줄이 있어서 탈락. 이렇게 하나하나 지우다 보니 루마니아의 수도인 부쿠레슈티가 남았고, 그래서 나는 루마니아행 티켓을 끊었다. 8년 티미쇼아라라는 도시에 비자 갱신을 위해 다녀온 적이 있었기에 어쩌다보니 번째 루마니아 여행이 되었다.


도시에 대해 아는 것이 없던 첫째 날. 알고 보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차이라고 했던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도시를 떠돌았다. 오로지 나의 시각과 후각을 비롯한 동물적 감각들 그리고 이미 경험한 지구상의 다른 장소들을 비교 대상으로 두고서 공통점을 찾거나 혹은 순위를 매겨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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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쿠레슈티는 구시가지 중심을 제외하고는 큼직큼직하다는 느낌을 주었는데, 비엔나의 크고 화려한 건물들이 웅장하고 압도적인 느낌을 주면서 '이야. 제국의 수도는 역시 다르구나.'하고 우러러보게 만든다면 부쿠레슈티의 웅장함은 그 도시 속에 사는 사람들은 고려되지 않은, 실용성이나 도시 존재에 목적과는 거리가 먼 오로지 '보이기 위한' 웅장함이었다.


부쿠레슈티의 도시 구조는 대로라는 한국어 단어로는 영 그 느낌이 살지 않는, 활주로를 떠올리게 하는 에비뉴 Avenue들이 도시를 가로지르고 그 양쪽으로는 크고 육중한 건물들이 서있는데 건물의 규모가 크다 보니 한 블록 전체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이 건물들 중 모두가 예술적으로 가치 있거나 심미적으로 즐거움을 주는 모습은 아니어서 길을 걷는 보행자의 입장에서는 걸어도 걸어도 같은 건물의 회색 벽이 끝나질 않으니 시각적으로 쉽게 피로해졌고 걷는데도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오로지 목적지에 닿기 위한 걸음을 이어가는 기분이었다.



사실 건물과 대로의 스케일만 놓고 보자면 바르셀로나도 큼직큼직한 건 마찬가지여서 바르셀로나에 살던 시절 고작 몇 블록 사이를 오가는 일이 종종 지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에는 거의 어디에서나 가로수들이 자리해 초록을 선사했고, 눈길이 닿는 것만으로도 그 아름다움에 마음까지 부풀게 하는 건물들, 그리고 건물마다 자리하며 시시각각 시선을 빼앗는 매력적인 상점들이 많았기에 걷는 동안 즐길 요소가 충분했다.


그리고 프라하는 워낙 아기자기한 도시로 이미 유명한데 실제로도 걷는 이를 압도하지 않고 품어주는 듯한 느낌이 있다. 유럽에서 가장 많은 공원을 가진 도시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푸르른 도시답게 프라하에선 거리를 걸을 때면 지저귀는 새소리와 자연의 싱그러움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고, 그 도시 속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색색깔의 아기자기한 건물들의 조화가 근사한 피사체가 되어주니 도시를 걷는 일 자체가 즐거움이 되어준다.

프라하를 떠나온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새삼스레 걷는 즐거움을 일상에서 누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지 여행지에서 깨달아 버리다니.


건물들의 연속 위에서 지쳐버린 나는 결국 6시도 채 못되어 숙소에 들어가 침대 위로 쓰러져버렸다.

3박 4일. 이 도시에 머물기에는 너무 긴 일정을 잡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드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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