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만자가 되었다.
암. 환. 자라고 정확하게 발음하기가 겁이 나서 아만자라고 지칭해본다. 그렇다.나는 얼떨결에 병원에서 ' c-20' 질병코드를 받은 아만자가 되었다.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는지는 지루하고 뻔한 얘기다.
매년 받는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처음으로 대장내시경을 했고, 그 과정에서 용종과는 다른 형태의 작은 종양을 발견하고 조직검사를 맡긴 것의 결과로 나는 아만자가 된 것이다. 천천히 자라는 종양이라고하니, 1cm도 안 되는 크기라고 해도 아마 나와 함께한 지 몇 년은 되었을 것이다. 즉, 나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아만자였다는 말이다. 그게 참 놀랍다. 아만자와 비아만자의 경계는 '인지'에 있다는 사실이.
더 큰 병원에 가보세요. 진단서와 자료는 여기 가지러 오셔야 해요- 라는 전화를 받고, 대체 유암종은 무엇인지 떨리는 손으로 검색을 해보기 시작했다. 대부분 보험에 대한 내용이다. 암과 유사한 종양이라는 뜻의 '유암종'은 그 이름대로 경계성종양으로 보는 견해도 많아서 보험사에서 일반암 진단비가 아닌 경계성 암 진단비가 나온다는 내용이었다. 높은 완치율 또는 비교적 좋은 예후도 유암종의 분류에 대한 보험사의 입장에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암진단비는 다 필요 없고, 내 눈에는 완치율.. 비교적 좋은 예후.. 이런 단어들만 들어왔다.
진단서를 받으러 간 병원에서는 의사가 '요즘엔 젊은 분들도 증상 없이 대장내시경으로 많이 발견하고 있는 종양입니다. 이 정도 크기면 내시경 시술로 제거하면 될 거예요. 다시 조직검사를 해봐야 정확한 것을 알겠지만, 간초음파나 다른 건강검진 결과를 보면 딱히 전이가 있을 확률도 없고, 아주 초기로 생각되니 종양만 제거하고 나면 매년 추적 검사만 하면 될 거예요' 라며 '의사답지 않게' 유독 느슨하고 긍정적인 말을 해주었다.
그러니 큰 병원의 진료를 앞두고 함께 가겠다는 남편에게 '괜찮아~ 별거 아니래. 분명 똑같은 말을 들을 거야. 그리고 대장내시경 날짜만 잡고 오면 될걸? 뭐 같이 가~' 라며 여유를 부리며 혼자 가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래도 남편은 회사에 반차를 내고 함께 가주었다.
실은 남편도 그곳을 다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오래전 우리의 작은 천사가 수술을 하고 항암을 하고 의사와 간호사들과 다른 부모와 환자들과 동고동락을 했던 곳. 그런데 주차장에서부터 의아했다. 여기는 어디지? 모든 구석구석을 다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도착하니 어디가 어딘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기도 많이 낡고 변했네- 두리번거리며 로비로 들어서는데 말문이 막혔다. 병원 바로 앞에도 나가기 힘든 시기가 찾아올 때마다 나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밤의 사람 없는 로비를 돌아다녔다. 늦은 밤에도 이른 새벽에도 로비 의자에는 몇몇의 보호자들이 고단하게 잠들어있곤 했다. 그 적막과 차가움이 내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고요와 평범한 자유 었기에 나는 그 로비를 참 좋아했다.
그러나 13년의 시간이라는 것이 대단한 것인지, 그 후에 쓰인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인지, 걱정했던 슬픔이나 고통 같은 감정이 나를 덮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또 종양 네이놈 때문에 여기를 오게 되다니_!! 같은 호통의 충동이 올라왔다. 대신에 -오늘의 결과를 가볍게 만들어주면 너를 용서해줄게- 뭐 이런 반농담 반 진담 같은 흥정을 하며 진료실 앞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그런데 다시 또 배신을 당하고 말았다. 최초에 진단을 내린 의사의 긍정적이고 느슨한 톤과는 전혀 다르게 무섭고 무거운 얘기만 잔뜩 듣고 나온 것이다. 진지한 표정으로 '유암종'이라는 이름을 '신경내분비종양'으로 교정하며 '이건 유사암이 아니라 암이에요'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일종의 희귀 암으로, 초기에는 증상이 없어서 대부분 대장내시경을 통해 발견한다고 했다. 대장내시경으로 절제를 하여 그 종양의 조직검사를 다시 해봐야 앞으로의 치료방법을 정확하게 결정할 수 있으며, 혹시나 모를 전이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CT와 피검사를 진행해야 한단다. 내가 겁에 질려 보였는지, 전이가 없고 조직검사 결과가 괜찮으면 그냥 다른 암과 마찬가지로 쭈욱 추적검사를 하면 되며 그래도 이 정도 크기에 직장에서 발견된 걸로 봐서는 예후가 좋을 확률이 높다는 말을 건조하게 덧붙여주었다. 그리고 중증질환의 병원비를 지원해주는 산정특례제도에도 등록을 해준다는 말도. 참 이율배반적인 정보의 투척이다.
나는 두려움과 걱정과 황당함이 뒤엉켜서 실실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진료실 문을 나서는데 나는 실실 웃고 남편은 '아..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해줄 줄 알았는데' 뭐 이런 말을 중얼거리면서 좀비처럼 초점을 잃은 눈빛으로 간호사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시술 날짜를 잡고 수납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또 실실 웃으면서 '여보 나 졸지에 아만자 됐어.. 아만즈아..'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이거 나름 심각한 거잖아. 아.. 그래서 검진 병원 의사가 그렇게 좋게 말해준 거였구나. 나 달래주려고..' 뒤늦게 깨달으며.
-
집에 와서 유암종이 아닌 '신경내분비종양'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신경내분비 종양'은 초기에 직장에서 크기가 작고 전이가 없을 때 발견하면 암의 세계에서 보자면 거의 아무것도 아닌 병인데, 작아도 전이가 되었거나 췌장 같은 위치에 자리 잡았을 경우엔 항암제도 잘 듣지 않는, 극과 극의 결과를 내어놓는, 만만하면서도 무시무시한 종양이다. 나는 여러모로 확률적으로 전자에 해당할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무서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같은 노래가 떠오르며 내가 없으면 우리 우진이 두부 후추 다 어쩌나... 같은 쓸데없는 감성에 빠지면서도, 그래도 이래저래 말이 많은 종양이라는 것이 감사하다.
어떤 종양은 잔인할 정도로 조용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희귀한데 너무 악성일 때 그러하다. 그 종양에 대해서 외국 학술지 사이트에서 검색을 해봐야 겨우 한두 개의 자료가 뜨는, 그러나 그중에 예후가 좋은 케이스는 하나도 없는 그러한 악성종양에 대해서 나는 너무나 잘 안다. 그에 비하면 '신경내분비종양'은 이런저런 자료가 넘쳐난다. 심지어 그중 대다수는 '암진단비'에 대한 논란이다. 제목이 '너무 예후가 좋아서 오히려 불리한 종양'인 글도 보았다. 물론 '스티븐 잡스를 죽인 바로 그 종양'같은 제목의 글도 있다. 어쨌거나 조용한 종양은 아니다. 그게 정말 눈말나게 고맙다. 말이 많으면 나도 따지고 대답하고 비웃어주고 하면 되니까.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암이든 어떤 다른 질병이든, 그 종류 -그러니까 출발점부터 외로운 것이 가장 서럽다. 외로운 병이 가장 무섭다.
-
그래서
'뭐.. 살면서 암에 한번 걸러야 한다면.. 난 '신경내분비종양'으로 만족할래. 이제 난 앞으로 다른 암은 안 걸릴 거야'
'나 이래 봬도 아만자야... 여보 나한테 잘해주라고_!!'
'대장내시경 안 했으면 평생 있는지도 모르고 잘 살았을지도 모르는데, 대장내시경 네이놈이 나를 아만자로 만들었어..!'
' 와우 암진단비 많이 나온다! 우리 진단비로 뭐하지?'
이런 경박하고 생각 없어 보이는, 이상한 말들을 늘어놓으며 요란하게 지내고 있다. 종양따위에게는 '도대체 왜?'같은 서사나 이유를 붙여주거나 찾아주고 싶지 않다. 더구나 '왜 우리에게 또 이런 일이?' 같은 서사로는 절대 넘어가지 않을 작정이다. 그냥 이런 일은 일어나는 법이다. shit happens.
남편이 라면을 끓여먹는다면서 냄비에 수돗물을 받는 모습을 보고 경악을 하며 '아니 왜 옆에 멀쩡한 정수기를 놔두고 수돗물로 끓여 먹는 거야? 여보, 내가 없어도 라면은 꼭 정수기 물로 끓여먹어야 해.. 알았지?'라고 말해주다가 '내가 없어도'라는 말에 뒤늦게 가슴이 축축해지는 순간들이 느닷없이 튀어나올 때마다 '신경내분비종양' '직장 신경내분비종양' '내분비종양 예후'이런 단어들을 검색해본다. 그 사이에 새로 올라온 기사나 글들을 보면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그 글들의 내용 때문이 아니다. 그저 외롭지 않은 종양이라는 사실이 좋은 것이다. 나는 아싸인데, 핵인싸 종양에 당첨된 기분이다. 이 또한 헛소리지만, 헛소리로 대응하다 보면 어느 날 이 종양도 내게 헛소리가 되어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다.
내시경으로 절제를 하고, 이런저런 검사를 받고, 결과를 듣기까지는 아직 몇 주의 시간이 남았다.
이 정도면 약간 '페이크 아만자'가 아닐까 싶어서 찔리기도 하지만, 어떤 질병의 환자가 되는 것이 주는 최대 이점을 즐기려고 한다. 삶을 '조감도'로 볼 수 있는 시점의 획득이 그것이다. 에잇 건강 외에 뭣이 중한디.행복하게 사는 것 외에 뭣이 중한디. 그깟 공부좀 안하고 청소 좀 안 하고 뭐 좀 못한다고 그게 뭣이 중한디. 도사처럼 한 마디식 툭툭 내뱉어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