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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 Aug 25. 2020

되감을 수 없기에 오래도록 바라보게 되는 사각 풍경

나의 지금을 이루는 모든 시작 #2 필름 카메라

제대로 된 카메라를 잡기 전부터,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사진 포켓몬’으로 불렸다. 사진을 찍고 싶을 때마다 친구들이 포켓볼에서 포켓몬 꺼내듯 날 소환했기 때문이다. 나에겐 벽에 걸린 액자가 틀어져 있으면 반드시 수평에 맞게 고쳐야 하는 가벼운 강박과 완벽주의가 있는데, 이것이 사진에까지 적용되어 나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수평을 맞추고 배경과 인물의 비율을 가늠해 사진을 찍었다. 유달리 사진에 재능이 있다기보단, 그처럼 남들은 그냥 넘기기 쉬운 사소한 디테일을 챙기려는 노력 덕분에 내 사진들은 괜찮은 평을 받았을 것이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포토샵을 다뤘던 덕에 사진 보정도 척척 해내는 나였으니.






남들이 잘한다, 잘한다 칭찬해 주니 칭찬에 약한 내가 사진에 취미를 붙이는 건 순식간이었다. 대학에 들어와 처음 알바해 모은 돈으로 DSLR 카메라를 샀다. 캐논 100D. 보급형 모델이었지만 흰색 바디가 너무 예뻐 마음에 쏙 들었다.


캐논 100D


이 카메라를 들고 생에 첫 유럽여행에 다녀왔다. 유럽 소매치기가 그렇게 위험하다기에 가방 간수하랴, 카메라 챙기랴, 사진 찍으랴 정신이 없어 여행 도중엔 좀 후회하기도 했지만 결과물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처음 내 사진을 인화해 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가 직접 담아온 바다 건너 풍경들이, 빤빤한 코팅지 한 겹을 두르고 익숙한 책상 위를 장식했다. 어쩌면 그 순간이야말로 내가 사진과 사랑에 빠진 최초의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베네치아 무라노 섬의 한 골목. 지금까지도 아주 마음에 드는 사진들 중 하나.
순천만 자연생태공원은 내일로 코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인데, 마음에 드는 사진을 많이 건져서인 듯.


내일로를 따라 국내 여행을 다닐 때도,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갈 때도, 스페인 여행을 갈 때도 이 카메라는 늘 내 어깨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나는 그렇게 카메라로 사진 촬영하는 재미를 배웠다.


그러나, 휴대폰 카메라의 발전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오로지 사진의 퀄리티 하나만 믿고 덩치 큰 보급형 DSLR을 들고 다니는 멋과 수고가 휴대폰 촬영의 편리함을 넘어서지 못하게 되면서, 이 카메라는 서랍 속 어딘가에 쿨쿨 잠들게 되고 말았다. 계륵이라더니 그간 쌓인 추억이 많아 차마 팔아버리지도 못했다.






그렇게 내 사진 취미는 카메라에서 휴대폰으로, 블로그에서 인스타그램으로 서서히 자리를 옮기는 듯했다. 그러는 도중에 얻은 건 내가 인물 사진 찍기를 좋아한단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 정도일까. 카메라 들고 출사 다니던 즐거움을 그리워했지만 DSLR을 꺼낼 필요성까진 느끼지 못했다.


그즈음 마음이 잘 맞아 친해진 대학 후배(이하 A)와 자주 놀러 다니게 되었는데, 어느 날엔가 A는 묵직한 카메라를 들고 나타났다. 벽돌보다 조금 가벼운 정도의 무게를 잘도 목에 달고 다니며 찰칵, 느린 속도로 한 장을 찍고, 천천히 롤을 감고, 또 찰칵, 한 장을 찍었다. 그게 참 좋아 보였다. A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빛바랜 사진들도 마음에 들었다. 휴대폰으로 촬영한 사진을 필름 사진처럼 보정해 주는 어플은 많았지만, 그 어떤 어플도 진짜 필름 사진만의 느낌을 구현해 내진 못했다. DSLR이 휴대폰 카메라에 자리를 빼앗긴 것과 달리, 필카는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로 나를 끌어당겼다.


그래서 A에게 물었다. 필름 카메라 좋아? 하고. 어떤 대답을 들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내 흥미를 끌기엔 충분했던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고나라에서 필름 카메라를 덜컥 구매한 내가 있었으니.


이따금 좋은 촬영 소품이 되어주기도 하는 A의 필름카메라. 아버지가 쓰시던 것이라고 한다.


내가 처음으로 구매한 필름 카메라는 캐논 FTb QL이라는 제품이었다. 필카에 관해선 문외한이라, 당시 중고나라에 올라온 매물 중 가격과 상태가 가장 괜찮아 보이는 것으로 고른 거였다.


처음엔 자동 필카보다 수동으로 시작하는 게 좋을 거란 친구의 조언으로 호기롭게 수동 필카를 구매했지만, 첫 롤은 롤을 감다 찢어지는 바람에 통째로 버리고 말았다. 두 번째 롤은 노출을 잘못 맞춰 통째로 버렸고, 세 번째 롤은 총 서른여덟 장 중 고작 네 장을 건졌다. 누구나 첫 다섯 롤 정도는 버린다는 친구의 말에 그나마 위안을 얻었다.


첫 필름 사진.


버린 필름값과 열심히 찍은 사진들이 아까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지만, 포기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왜인지 망한 사진을 보는 것마저 재미있었다.


필름 카메라는 디지털 카메라처럼 지나간 사진을 확인할 수 없다. 잘못 찍은 사진을 삭제할 수도, 아까운 필름을 되감을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필름 카메라가 좋았다. 성격 급한 나도 필름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세상을 바라볼 때만큼은 느리고 천천해졌다. 꼭 그처럼 느린 듯 빠르게 서랍 속에도 필름이 쌓였다.


한 롤 당 망한 사진의 비율이 조금씩 줄어갈 무렵, 내가 필카에 취미를 붙였다는 사실을 안 외삼촌이 캐논 T90이라는 모델을 선물해 주셨다. 대학 다닐 적 사진 동아리였던 외삼촌이 사용하던 것이라고 했다. T90은 완전 수동인 FTb QL과 달리 자동으로 초점과 노출이 맞고 롤이 감기는 자동 필카였다. FTb QL처럼 예쁘게 생기진 않았지만, 그리고 무게도 훨씬 무거웠지만, 이제 겨우 필카 입문 딱지를 뗀 왕초보에게 자동의 편리함은 신세계였다. 디지털 카메라처럼 휙휙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필름 카메라라니. 한동안 T90을 들고 룰루랄라 출사를 다녔다.


T90으로 찍은 혜화, 회기.


망하는 컷 수가 줄었고, 마음에 드는 사진이 더 많아졌다. 애초 필름 카메라에 빠진 계기와는 점점 동떨어지는 기분이었지만, 뭐 어떤가. 내가 신나면 그만이었다.


자동 필카를 쓰니 재빠른 고양이들도 손쉽게 찍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T90이 무거워도 너무 무겁다는 점이었다. 수동 카메라이니만큼 FTb QL도 그리 가볍지 않은 편이라, 이전에 무겁다고 투덜댔던 캐논 100D의 무게가 공기처럼 가볍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니 그보다 더 묵직한 T90의 무게에 쉬이 적응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여행 다니며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나인데, 차마 여행에 이 돌덩이를 들고 갈 엄두가 안 났다. 결국 일명 ‘똑딱이’라 불리는 작은 자동 필카를 사기 위해 오랜만에 중고나라에 접속했다.


며칠을 내내 검색하고 매물을 훑은 끝에 큰 맘먹고 구매한 것은, 라이카 z2x. 구매할 땐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설현 카메라’로 유명한 기종이었다.


직거래 후 블로그에 올렸던 글. 정말 신나 보인다...


라이카 특유의 따뜻한 색감에 대한 로망이 있었으나 가격이 부담되었던 대학생 나에게 z2x는 적당한 선택이었다. 라이카의 시그니처인 티타늄 바디 대신 플라스틱 바디로 단가를 낮춰 보급형으로 출시한 모델인 듯했다.


z2x로 찍은 제주도와 후쿠오카.


이후 1년 간, 나는 z2x를 들고 신나게 여행을 다녔다. 본래 물건을 험하게 다루는 편도 아니었기에 고장 문제도 없었고, 오래오래 이 카메라를 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블로그에 썼던 글...


구매 후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z2x가 부서졌다. 엄마와 함께 여행을 하던 도중이었다. 여느 때처럼 사진을 찍기 위해 파우치에서 꺼냈는데, 배터리 커버가 깨져 있었던 것이다. 캐리어에 넣을 땐 꼭 폭신폭신한 옷 틈에 끼워 두었었고, 가지고 다닐 땐 파우치에 담아 목에 걸고 다녔었기 때문에 큰 충격을 받을 일이 전혀 없었는데도 그랬다. 찾아보니 플라스틱 바디 필카의 고질적 단점인 모양이었다.


한동안은 배터리 커버를 셀로판테이프로 붙이고 다녔으나, 배터리를 갈 때마다 테이프를 새로 붙여야 하는 불편함과 또 어디가 부서질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결국 배터리 커버가 깨진 z2x는 헐값에 팔고 새 필카를 장만하기로 결정했다.


여전히 라이카의 색감은 포기할 수 없었고, 마음속 1순위였던 미니룩스 시리즈는 가격대가 너무 높게 형성되어 있었다. 그렇게 또 며칠 내리 중고 사이트들을 뒤진 끝에 구매하게 된 라이카 C3. 티타늄 바디는 아니지만 알루미늄 바디로 z2x 같은 플라스틱 바디보다는 훨씬 튼튼하다.


C3 전용 파우치가 존재하지 않아 엄마가 손수 만들어 주신 파우치


메이저한 기종은 아니지만 내가 원했던 라이카의 따뜻한 색감이 잘 표현되고, 무엇보다 데이터백이 탑재되어 있다는 것이 C3 구매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심지어 대부분의 필카는 날짜를 2019년까지밖에 지원하지 않아 2020년부터는 데이터백이 쓸모없어지는데, C3의 경우는 2060년까지 찍힌다는 것이 매우 큰 메리트로 다가왔다. 게다가 라이카의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색 동그라미 로고까지. 내겐 뭐 하나 모자랄 게 없었다.


오른쪽 하단과 같이 날짜가 찍히는 기능을 데이터백이라고 한다.
카메라 구매 직후 찍은 테스트샷.


결론적으로 C3은 지금까지도 잘 쓰고 있다. 카메라 자체의 생김새부터 사진 결과물까지 너무 마음에 들어, 삼식이라는—C3니까—이름까지 붙여 주고 애지중지하는 중이다. 요 1년 새 필름값이 훌쩍 뛴 데다 코로나까지 발발하는 바람에 삼식이와 함께 출사를 많이 나가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






필름 사진 촬영에 대해 이야기하려다 보니, 나를 거쳐간 여러 카메라들과의 추억까지 줄줄이 따라붙어 버리고 말았다. 그 역시도 내 나름의 역사라 하나하나 언급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었다. 덕분에 글이 중구난방이 되고 말았지만, 내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하나다. 필름 카메라는 나에게 무척 큰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수많은 취미를 건드렸다가 금세 식기를 반복하는 나에게 몇 년째 틈틈이 이어오고 있는 필름 사진 촬영은 아주 특별한 취미일 뿐 아니라, 내가 ‘시작’ 한 일들 중 가장 큰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과라니. 사진으로 전시회를 연 적도, 책을 출판한 적도, 수많은 팔로워를 얻은 적도 없으면서 너무 거창한 표현 아닌가 싶기도 하다. 더구나, 비싼 필름 값에 허덕일 때면 내 형편에 너무 사치스러운 취미를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고민될 때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금전적 이익과 명예를 얻어야만 성과인가, 뭐. 가방 한 구석에 자리한 카메라가 든든한 친구처럼 느껴지게 된 것이 나에겐 성과다. 문득 카메라를 들고 외출할 때면 세상의 빛나는 부분이 평소보다 조금 더 눈에 들어온다는 사실만으로도, 필름 한두 롤 값은 아깝지 않다. 하긴, 필름값을 따지기엔 사진을 찍으며 얻은 것이 너무나 많다.


연말에 내가 찍은 사진들로 엽서를 만들어 소중한 지인들에게 연하장을 돌렸을 때의 즐거움은 언제 생각해도 참 귀중하다. 연하장을 받았던 친구들의 표정과 목소리를 떠올리면, 나는 또 슬금슬금 카메라를 쥐게 된다. 그리곤 직사각형 프레임 속에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담아내고 싶어진다. 필름은 되감을 수 없기에 매 컷마다 신중을 기울여 순간을 저장하고 싶어진다. 뷰파인더 너머 느리게 흘러가는 공기를 기록하고 싶어진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한, 나는 언제든 그렇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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