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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준 Jul 25. 2023

사업을 시작한 Giver에게 벌어진 일

27살, 적당한 완벽주의로 시작하는 사업 생존기

받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주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있다. 나는 둘 중 어느 쪽에 속하냐고 묻는다면 떳떳하게 주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나는 기버(Giver)다.

군복무 시절, 야간 상황병 근무를 할 때 항상 후임과 함께 빠르게 할 일을 끝내놓고 공부 혹은 책을 읽으면서 자기 계발 시간을 가졌는데 그 시절 읽었던 책 중 Best 3 중, 두 번째가 바로 애덤 그랜트의 Give and Take이다. 그 시절 그 책을 읽은 것이 지금의 나를 기버로 있게 만들어주었다.


사회초년생이다 보니 물질적으로 줄 수 있는 건 별로 없었고 그 당시 줄 수 있던 건 '지식', '경험'이었다.

크리에이티브는 진작에 포기했고 대신 남들이 재미없어하는 데이터나 분석 꼭 그게 아니더라도 어떤 테스트를 집요하게 해서 인사이트를 뽑아내려는 삽질러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고 주말에도 그 삽질을 하다 보니 어느 센가 인사이트로 자리 잡혀 남들에게 줄 수 있는 하나의 보석이 되었다.


어차피 마케팅이라는 게 아무리 내가 테스트를 해서 인사이트를 뽑아낸다 해도 그 기반은 사람인지라 통제할 수 있는 변수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궁금해하거나 다급하게 SOS를 치는 지인들에게 아낌없이 풀었다.

그리고 콘텐츠 마케터라고 데이터 분석을 아예 안 할 수 없는 노릇이기에 숫자에 약한 지인이 도움을 요청하면 좋은 게 좋은 거고 사이가 더 돈독해진다는 생각으로 내 능력이 가능한 선에서 도와주었다. 어느 정도냐면 가장 최근 23년 4월 이직을 준비하는 지인의 포트폴리오를 도와주는 것에 거의 순수하게 시간으로만 환산하면 며칠을 소요해서 도와준 것 같다. 


주변에서 보면 왜 그렇게까지 도와주냐고 말할 수 있는데 정말 솔직히 현실적으로 보면 시간낭비하는 게 100% 맞지만 내 기준 인간관계의 맺고 끊음의 명확한 기준을 만들어주는 행동이고 그만큼 동시에 들려오는 소리는 관계를 손절할 땐 칼 같다. 그리고 그렇게 관계를 오래 유지한 사람들과는 대개 오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갑자기 왜 저러나 싶긴 할 텐데 덕분에 나중엔 좋은 사람들에게만 시간을 쏟게 되다 보니 그 돈독함은 쉽게 사라지진 않았다.


그리고 그런 기버의 성향인 나에게 또 하나의 특징은 납득이 안 가면 그게 누구든 납득이 안 가는 이유를 물어보고 일하는 사람은 나니까 일을 잘할 수 있게 설득시켜 달라고 말하는 편이었다. 쉽게 말하면 가면을 못쓰고 할 말을 하다 보니 상사 입장에서는 말을 안 듣는 사람으로 비치기도 했을 것이다. 실제로 항상 처음엔 평이 좋았지만 가면 갈수록 상사들이 나에게 말을 거는 횟수가 줄어드는 건 비단 나만 느끼는 건 아니었다. 동시에

동료들에겐 뭐 하는 놈이지? 의 시선, 대신 이야기해 줘서 속이 시원하다의 시선, 그냥 덤덤한 시선으로 나뉘었는데 시원하다의 시선의 동료들과 가까워지게 되었다. 납득이 안될 때 말을 안 듣는 대신 납득이 될 경우 혹은 내가 실수를 했을 때도 일 마무리는 제대로 끝내는 게 기본이었기 때문이다.
(TMI지만 A사 다닐 때 사내 경진대회에서 1등 수상한 만큼 일을 못하는 편은 아니었다.)


스토브리그를 보면 가장 인상 깊게 와닿는 대화가 하나 있다.

백승수 단장과 권경민 사장의 포장마차 씬의 대화에서 백승수 단장이 했던 대사인데 이렇다.

말을 잘 들으면 부당한 일을 계속 시킵니다. 자기들 손이 더러워지지 않는 일을. 
조금이라도 제대로 된 조직이면 말을 잘 안 들어도 일을 잘하면 그냥 놔둡니다.


물론 부당한 일을 시키는 건 아니지만 가끔 어느 조직을 가다 보면 잘하면 내 덕분, 못하면 실무 못한 실무자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있는데 비슷한 케이스를 몇 번 겪다 보니 흔히 물로 비유하면 썩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들었고 그게 나와 동료들의 유대감을 이어주었다. 그리고 나와 동료들은 서로에게 서서히 알아서 기버가 되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이제 27살 파란색 쥐가 사업을 하겠다고 쥐구멍 밖을 나오고 하나씩 차근차근 세우다 보니 딱히 뭔가 원해서 공유하거나 베풀었던 적이 없던 지인들이 알아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아직 연차도 연차인지라 큰 계약 이런 건 아니지만 내가 모르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라든지, 노하우 아니면 다른 방면으로 뛰어나신 대표님들께서 여러 기회를 주시려고 하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뭔가 직접적으로 아직까지 회사소개서나 제안서를 만들어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이들 연락을 주고 있고 그들의 영향력을 요즘 새삼 느끼고 있는 중이다. 그 베이스에는 내 실력에 대한 자신감(자만심 X)이 있는 걸 알고 믿으니까 연락을 주는 것도 있었다.


심지어 내가 잘 모르는 분야를 하고 있는 지인은 성심성의껏 도와주려고 하는 걸 보면서 이게 Give and Take에서 성공하려고 시작하는 Giver의 삶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 그렇게 도와주려는 분들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뿐이고 섣불리 하는 게 아닌 적당한 완벽주의자답게 탄탄하게 가고자 하는 것이 목표이다.


마지막으로 사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로 뭔가를 얻을 수 있지를 생각하기 전에 그들이 겪는 갈증을 해소시키기 위해선 나는 무얼 줄 수 있지를 먼저 생각한다.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것이 처음부터 돈이라기 보단 돈만큼이나 소중한 파트너십일 수 있고 네트워크(관계) 일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돈을 추구하진 않는다.

그리고 돈보다도 네트워크를 더 선호하는 편이고 돈보다 그걸 쌓기 더 어렵기 때문에 항상 내가 하는 결과물에 대해 만족하면 그때 고민을 해달라고 말하는 편이다.

결국 어떻게 보면 이것도 먼저 주는 것 기버(Giver)이다.
하지만 그 어떤 포트폴리오, 제안서보다도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말, 말보다도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꾸준히 신뢰를 줄 수 있는 기버인 삶으로 사업을 진행하고자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리랜서에서 사업의 길로 들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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