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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사공사칠 Jan 17. 2024

가진 것을 잃고 나서야 보이는 것

왼팔이 없으면 오른팔로 싸우라

엊그제 일이다. 1월 말에 잡힌 6번째 시합을 위한 훈련 중 동료의 옆차기에 왼쪽 가슴을 맞았다. 뒤꿈치에 갈비뼈가 찍히는 순간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엎드렸다. 11월 시합 때 상대의 니킥에 맞아 다친 부위였는데 12월 단증 심사 때도 같은 부위를 타격당해 주저앉았었다. 다행히 골절은 없어 약을 먹고 회복 중이었으나 불편함이 가시지 않던 중 같은 부위를 정확히 타격당했다. 내일 더 큰 병원에서 CT를 찍어 봐야 알겠지만, 근육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


주저앉은 그 순간에 이번 시합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만약 상대가 부상을 알아채고 그곳만 노린다면 이번 시합은 매우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더욱이 지난 한 달간 근육 운동과 레프트 훅 (우리말론 돌려지르기)에 초점을 맞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는데 시합 전까지 부상 부위를 포함한 수련을 제대로 못 할 것 같다. 더욱이 내가 자신 있는 앞 손 잽을 찌를 때도 약간의 고통이 따라온다. 모든 게임 플랜이 어그러지는 것 같았다.


어제 수련을 하루 쉬며 회복에 힘썼다. 하지만 나의 머릿속은 불안과 걱정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통증을 관찰하며 가장 자신 있는 무기를 잃은 기분을 맛보았다. 이제 나는 무엇으로 싸워야 하나? 주력 무기를 잃은 상황에서 난 승리할 수 있을까? 위약금을 내고 경기를 취소해야 하나? 부상을 핑계로 도망치는 모습을 보여야 하나? 모든 걱정보다 더 큰 두려움은 잘못된 부위를 맞고 쓰러진 모습을 상상하는 데서 왔다. 시합의 아드레날린도 지켜주지 못할 부상처럼 느껴졌다.


병원을 다녀오는 길에 지난 삶을 돌이켜 보았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 않은 시련이 있었다. 그러나 만 서른의 내가 지금 느끼는 인생이란 것은 시련의 파도로 기어들어 가 몸으로 맞서야만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이야기다. 사선에 서는 격투 시합 경험이 내게 선물한 교훈이었다. 살기를 치열하게 맞서는 자는 살거나 죽는다. 질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는 스스로 부끄럽지 않다. 나는 그 시간에서 배워 피하던 현실 문제를 맞서는 중이다. 빚을 갚고 악습을 부수며 시련에 맞서니 어제보단 떳떳해지고 있다.


삶에 대한 생각은 곧 지금의 고통을 향한 관찰로 이어졌다. 왼쪽 가슴으로 할 수 있는 동작이 사라지니 오른팔이 보였다. 지금껏 나는 오른팔을 소홀히 대했었다. 앞 손 잽과 앞 손 훅에 의지한 나머지 뒷손은 뒷전이었다. 특히 뒷손 훅은 누가 맞겠냐는 생각에 훈련을 게을리했다. 그랬던 그가 이제 내 눈앞에 보인다. 왼쪽 사이드로 돌며 상대를 야금야금 집어삼키던 지난날이 걸어보지 않은 오른쪽 사이드도 보였다.


물론 시합까지 시간은 2주도 남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부상을 간파당해 아픈 부위를 맞고 쓰러질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금 기회를 준 오른팔에 떳떳해지고 싶다. 약 10일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강한 스트레이트와 훅을 장착하고 싶다. 다행히도 내겐 두 다리와 무릎도 있으므로 상황은 그리 심각하지 않으며 나의 실력은 새로운 장을 맞이할 것이다.


안목은 자신을 깊이 묵상할 때 떠오르는 관찰이다. 그리고 진정한 자신은 가진 것을 잃었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 부와 명예를 잃고 나서야 진짜 친구를 만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꽉 쥐던 칼을 내려놓으면 도끼도 보이고 몽둥이도 보인다. 설령 그 모든 것이 사라져도 맨손으로 다툴 수 있는 자가 인간이다. 공든 탑이 무너지는 순간을 맞이하는 자의 눈동자 안에 새롭고 독특한 탑의 이미지가 오롯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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