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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사공사칠 Jan 11. 2024

다시 시작한 수감 생활

훈련소가 알려준 소리 듣는 법, 그리고 새로운 나를 마주하는 법

모든 대한민국 남성은 군대에 간다. 나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카투사 복무가 결정되고 약 1년여 간의 시간이 주어져 치열하게 놀고 하고 싶은 일도 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입대 전 날이었다.


논산 훈련소로 가기 전 새벽에 옛날 통닭 두 마리를 사왔다. 가족들과 함께 먹고 싶었으나 새벽 세 시에 누가 깨어 있을 리 없다. 나 빼고 모두의 시간은 평상시와 같이 흐르는 것 같아 서운했다. 혼자 닭다리를 뜯기 시작했다. 몇시간 뒤면 당분간 못 먹을 음식이므로 최선을 다해 먹었다. 급하게 먹은 나머지 치킨을 토했다. 나중에서야 들은 이야기지만 그 날 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마지막 만찬을 즐기는 소리를 숨죽여 듣고 있었다고 한다.


재빨리 이루어진 수감 생활은 나름 나쁘지 않았다. 군입대 전까지 여러 앨범 제작에 시달렸던 탓에 오히려 부담감을 떨칠 수 있어 좋았다. 때 되면 밥 주고 운동도 시켜주니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 전우들과의 관계도 좋아 지금까지도 관계를 이어 나간다. 훈련소 생활은 장점으로 가득했다. 단 하나 유일한 괴로움은 음악을 못 듣는다는 것이었다.


21살의 내게 음악을 못 듣는다는 것은 사형 선고와 마찬가지였다. 참다 못해 이대로 귀가 멀어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바깥에서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안에서 소리를 떠올려야 했다. 손에는 작은 훈련병 노트와 보급받은 펜이 있었다. 노트와 펜을 악기 삼아 떠오르는 소리를 적어 내려갔다.


훈련소에는 여러 종류의 새가 있었다. 어떤 종류인지는 몰랐으나 그들이 내는 소리가 전부 다 다르고 독특하게 들렸다. 처음에는 이 소리를 음으로 옮겼다. 이내 새로운 소리를 머릿 속으로 떠올리고 음을 적다보니 아이디어가 생겼다. 수양록을 쓰라고 주어진 개인 정비 시간에 노트 한 귀퉁이에 곡을 적어 내려갔다. 오선이 익숙치 않아 음표와 글자가 뒤섞인, 나만의 악보를 만들어 나갔다.


새소리로 곡을 만들기 시작하니 다른 소리들도 마음에 떠올랐다. 매일 아침 구보를 하며 부르는 군가에 귀가 갔다. 전투에 나서기 전의 당당함과 떠나 온 곳에 대한 그리움이 뒤섞여 있었다. 어리숙하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그 느낌을 노트에 표현했다. 훈련소 안의 고독이 짙어질수록 상상은 커져만 갔고 머릿속엔 여러 종류의 교향곡이 울리고 있었다.


5주 간의 훈련 기간이 끝나고 카투사 훈련소로 이동하기 전 반나절 정도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어머니께 꼭 헤드폰을 가져와 주실 것을 부탁했다. 군에 오기 전 만들었던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완성하지 못한 습작이었다. 훈련소 안에서의 옥중(?) 수련 덕분인지 새로운 시선의 아이디어가 마구 떠올랐다. 이곳에 오기 전에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작법을 적용했다. 고독 속에서 귀를 열고 소리를 받아 들이니 그들이 내 마음을 뒤흔들고 손에게 명령했다. 5주 간 쌓아 올린 수련이 단초가 되어 새로운 음악가로 거듭났다.


나는,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갇힌다. 갇힌 인간이 처음에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는 신을 원망하고 무기력의 벽에 부딪힌다. 그러나 손발이 묶여 아무 것도 못하는 나날을 살다 보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 수감 생활은 늘 고독하지만 신은 늘, 그 때, 사다리를 내려준다. 밑바닥을 본 인간을 긍휼히 여겨 야곱이 오른 그 사다리를 내려 준다. 사다리를 오르면 출소가 아닌 더 깊은 감옥이 기다리고 있다. 그곳을 내려갈 때마다 나는 새로운 자신과 마주한다.


야곱의 사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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