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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공사칠 Jun 20. 2024

스무살, 도망쳐 온 갤러리에서

당신은 자신의 시련을 현명하게 견디십니까?

    나는 나의 시련을 현명하게 견디는가? 시련을 현명하게 견딘다는 것은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절대로 쉽지 않다. 진심으로 나를 힘들고 괴롭게 했던 사건을 겪으면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 들이기가 쉽지 않다. 온갖 감정이 올라오면서 미움, 시기 등 마주하기 힘든 감정도 보고 평소에 안 하던 이상한 행동도 한다.


     어쩌면 내게 있어 시련을 현명하게 견딘다는 것은 뱃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희노애락을 관찰하는데서 시작한다. 그것은 마치 부글 부글 끓는 감정의 화산 같아서 스스로를 던지기 보다는 피하고만 싶다. 시련을 견디기 보다는 시련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고 싶다. 그러나 결국 돌고 돌아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앞으로 일어날 미지의 시간을 견디기 밖에 없었다. 이것 또한 지나 가리라 다양한 방식으로 견딜 수 밖에 없었다.


     오늘 내가 들여다보고 싶은 시간은 20살 때의 기억이다. 나의 20대는 아버지의 파란만장했던 50대와 궤를 함께 한다. 대기업의 유능한 인사였던 그는 50을 바라보는 49살에 회사에서 쫓겨났다. 아직도 고등학교 3학년 입시가 끝난 후 아버지께서 나와 술 한 잔을 기울이시며 자기가 요즈음 회사의 20년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시스템 개혁에 얼마나 열중하는지 설파하신 기억이 난다. 그 열심 때문에 아버지는 회사를 나오셔야만 했다. 열심이 과했나보다.


     그가 자기에게 다가온 시련을 견디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약 몇 개월 정도 그는 자기에게 다가올 불운을 마주하기보다는 부정을 택했다. 내 나이 스물에 기억나는 아버지의 모습은 침대에 등을 돌려 누운 채 라디오만 듣고 계시던 모습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의 속은 얼마나 타들어갔을까? 그러나 당시의 나는 아버지의 고통을 이해하기엔 어렸기에 그럴싸한 위로 한 마디 건네지 못하고 그와 갈등했다.


    아버지로 인한 나의 시련은 경제적 어려움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나는 나의 10대 시절 거대한 산과 같았던 그의 무너짐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그의 말투와 행동 속에는 자신감과 자기 확신이 넘쳤었고 나는 그의 아우라를 닮고 싶었다. “사나이는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목적과 이상을 가지고 그 이상에 한 발짝이라도 가까이 접근할 수 있도록 부단한 노력을 해야만 한다”라고 말하던 사카모토 료마의 모습 같았다. 그런데 목적과 이상이 좌절될 때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로부터 배우지 못했다. 그의 무너짐을 보는 나의 속은 여러 감정으로 요동쳤다. 그에게 배신을 당한 것 같았다.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하던 당신의 아우라는 어디에 있는가? 진심으로 그 때는, 숨이 붙어 있다면 그가 철근이라도 나르러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 채 나의 실망을 감추기 위해 마음 속으로 그를 집 밖으로 내몰고 있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고 했던가? 그 때부터 나는 스스로를 집 밖으로 내몰았다. 아버지를 바라볼 때마다 싹트는 속상함, 분노 등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기 위해 시간을 쓸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대학에 가기 전 인사동에 위치한 전통 찻집에 정시보다 2시간 일찍 출근해 미리 일을 시작했다.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니었는데 상관 없었다. 그 땐 집 안을 무겁게 채운 공기가 싫어서 어떻게든 집 밖으로 나와야만 했다. 그를 바라보면서 지녔던 속상함을 풀기 위해 일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일찍 집을 나서 일터로 향하던 어느 날부터 좀 더 일찍 길을 나서 광화문과 인사동의 갤러리들을 훑기 시작했다. 평소 미술에 관심은 많았으나 두 발을 움직여 갤러리를 뒤질 정도의 열정은 아니었다. 이제는 집이 편치 않으니 그곳들을 집으로 삼아야했다. 그렇게 출근 전 한 두 시간 동안 그림을 보고 또 보았다. 어제 봤던 그림을 오늘도 보고 내일도 보는 기묘한 경험을 했다. 그것들로부터 어떤 위로나 영감을 받았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희미하게 기억나는 느낌이 하나 있는데 그게 참 이상하다. 아버지가 돌린 등으로 인해 그렇게 마음이 괴로운대도 이런 식의 시간 떼우기가 나의 하루를 응원했다. 시간은 결국 흐르니 좀만 견디라고 응원하는 것 같았다. 이 글을 적는 지금도 그 당시, 시간이 나를 응원하는 듯한 느낌을 자세하게 설명할 수 없어 답답하다.


     시간은 어떠한 식으로든 흐른다. 시련의 시간도 예외는 아니다. 다른 시간에 비해 좀 괴롭고 울적하기는 하나 시련의 시간 또한 태초 이래로 흐름을 멈춘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갈등하던 시간도 흘렀고 선도 모르고 색도 모르는 내가 갤러리에 걸린 그림을 뚫어지게 보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렀다. 지금 돌이켜보니 힘든 때를 견디기 위해 내가 택한 이상한 방법은 다른 각도로 나를 훈련시켰다.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어도 갤러리에서 그림을 감상할 수 없는 사람이 있는데 반해 아버지와의 갈등은 내게 그림을 보는 눈을 연습시켰다. 이해되지 않는 그림은 다시 보면 이전보다는 잘 볼 수 있다는 깨달음도 기억난다. 무엇보다도 그림을 탐미하던 시간들은 내게 중요한 자세를 가르쳤다. 흐르는 시간 위에서 잠시 멈추기. 시련의 시간을 견디고자 방문한 갤러리에서 나는 시간을 잠시 멈추는 방법을 알았다. 본 것을 계속 보고 있으면 시간은 잠시 멈춘다. 보면 볼수록 멈춘다. 그 자세가 몸에 배어 지금도 나는 시간을 멈추고 싶을 때 가만히 무언가를 보거나 듣는다. 그리고 견딘다. 그럼 신기하게도 스무살 갤러리 안에서 처럼 시간이 멈춘다.


     스무 살에 닥친 시련이 나를 내몬 곳에서 나는 시련의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발견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시련을 멈추는 법을 알았다. 시련이 갤러리에 내걸린 작품이라면 나는 그것을 뚫어지게 보면 된다. 아마 그 때처럼 시간이 멈출 것이다. 그리고 시련이 내게 대답할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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