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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곰돌이 Nov 18. 2024

너희가 외설을 아느냐

-장정일,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너희가 외설을 아느냐


-장정일,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IMF 이전 90년대 한국은 단군 이래 가장 물질적으로 풍요로웠던 시대였다. 고속 성장이라는 세례 아래, 고전적인 윤리 의식도 함께 붕괴하며 서구 자본주의의 생활이 자리 잡는다. 당시 소설, 시, 영화는 이러한 시대상을 총체적으로 반영한다. 시에서는 유하의 시가, 소설에서는 윤대녕과 장정일이 90년대 물질문명의 진보한, 혹은 타락한 초상이라 할 수 있다. 윤대녕이 시적인 문체로, 댄디의 허무감을 포착했다면, 장정일은 ‘포스트모던’이란 은어로 불린 아방가르드한 방법을 통해 소설을 전개한다. 장정일은 서평가, 시인, 소설가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데, 소설가 장정일의 특색을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이다. 

‘그가 퇴근할 즈음 시계는 열 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했을 때 아홉 시 뉴스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그가 집에서 저녁을 먹고 비디오를 한 편 보고 났을 때 방 안의 시계는 여덟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소설의 문체는 ‘이따구’로 전개한다. 내용은 더욱 환장할 노릇이다. 고등학교 2학년인 처제에게 한눈에 반해 현재 아내와 결혼하고, 아직도 처제에 대한 순정을 가진 회사원의 방황기라 할 수 있다. 처제와 통화한 후 회사에서 수음을 하고, 처제와 처제의 친구와 함께 난교를 상상하기도 한다. 주인공에게 체제는 성녀와 같은 성스러운 이미지라, 처제와의 순정을 위해 처제가 서울에 있을 때는 아내와 성관계를 갖지 않으려고 할 정도다. 재즈처럼 흐느적거리는 문장과 함께 펼쳐지는 추잡한 이야기는 일명 재즈 포르노그래피 소설로 불린다. 넓은 의미에서도, 좁은 의미에서도 포르노그래피라고 부를 수 있는데 포르노가 나쁘다는 편견을 깨줄 만한 건강한 불쾌한 소설이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에 나온 소설임에도 형식으로도, 내용으로도 파격으로 다가온다. 가장 파격적인 것은 윤리가 아닐까 싶다. 장정일은 나중에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음란물 판정을 받고 구속당할 정도로 급진적인 외설성을 소설의 주요 색채로 가져가는데, 이 소설 역시 성윤리에 대한 과격한 돌진이 돋보인다. 즉, 기존 성 윤리와 금기를 비웃는 듯 수음하는 소설이다. 물론, 페미니즘 관점에서 보면 ‘남성성의 과잉’, ‘성적 대상화 어쩌구 저쩌구’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 동지들에게 미안하지만, 그것이 장정일의 마력이다. 성적 대상화, 음침한 몽상 등을 불쾌하게 재현하면서 성적 억압과 물질문명의 타락을 비웃는다. 장정일의 리얼리즘이란 현실의 불쾌한 반영이며, 포스트모더니즘이란 기류에 숨어 자본주의 체제를 대상화하며 수음한다. 인간의 추잡한 극한을 보여주는 소설, 우리 시대의 타락을 담아낸 재즈 같은 소설에 흘러가고 싶다.

 




IMF 이전 90년대 한국은 단군 이래 가장 물질적으로 풍요로웠던 시대였다. 고속 성장이라는 세례 아래, 고전적인 윤리 의식도 함께 붕괴하며 서구 자본주의의 생활이 자리 잡는다. 당시 소설, 시, 영화는 이러한 시대상을 총체적으로 반영한다. 시에서는 유하의 시가, 소설에서는 윤대녕과 장정일이 90년대 물질문명의 진보한, 혹은 타락한 초상이라 할 수 있다. 윤대녕이 시적인 문체로, 댄디의 허무감을 포착했다면, 장정일은 ‘포스트모던’이란 은어로 불린 아방가르드한 방법을 통해 소설을 전개한다. 장정일은 서평가, 시인, 소설가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데, 소설가 장정일의 특색을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이다. 


‘그가 퇴근할 즈음 시계는 열 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했을 때 아홉 시 뉴스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그가 집에서 저녁을 먹고 비디오를 한 편 보고 났을 때 방 안의 시계는 여덟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소설의 문체는 ‘이따구’로 전개한다. 내용은 더욱 환장할 노릇이다. 고등학교 2학년인 처제에게 한눈에 반해 현재 아내와 결혼하고, 아직도 처제에 대한 순정을 가진 회사원의 방황기라 할 수 있다. 처제와 통화한 후 회사에서 수음을 하고, 처제와 처제의 친구와 함께 난교를 상상하기도 한다. 주인공에게 체제는 성녀와 같은 성스러운 이미지라, 처제와의 순정을 위해 처제가 서울에 있을 때는 아내와 성관계를 갖지 않으려고 할 정도다. 재즈처럼 흐느적거리는 문장과 함께 펼쳐지는 추잡한 이야기는 일명 재즈 포르노그래피 소설로 불린다. 넓은 의미에서도, 좁은 의미에서도 포르노그래피라고 부를 수 있는데 포르노가 나쁘다는 편견을 깨줄 만한 건강한 불쾌한 소설이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에 나온 소설임에도 형식으로도, 내용으로도 파격으로 다가온다. 가장 파격적인 것은 윤리가 아닐까 싶다. 장정일은 나중에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음란물 판정을 받고 구속당할 정도로 급진적인 외설성을 소설의 주요 색채로 가져가는데, 이 소설 역시 성윤리에 대한 과격한 돌진이 돋보인다. 즉, 기존 성 윤리와 금기를 비웃는 듯 수음하는 소설이다. 물론, 페미니즘 관점에서 보면 ‘남성성의 과잉’, ‘성적 대상화 어쩌구 저쩌구’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 동지들에게 미안하지만, 그것이 장정일의 마력이다. 성적 대상화, 음침한 몽상 등을 불쾌하게 재현하면서 성적 억압과 물질문명의 타락을 비웃는다. 장정일의 리얼리즘이란 현실의 불쾌한 반영이며, 포스트모더니즘이란 기류에 숨어 자본주의 체제를 대상화하며 수음한다. 인간의 추잡한 극한을 보여주는 소설, 우리 시대의 타락을 담아낸 재즈 같은 소설에 흘러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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