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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한 잠 Jun 14. 2024

오늘도 차 안에서 우리는...

비상등을 켜고 우측차선으로 바짝 붙는다.

아이가 나올 때까지 차를 세우고 있을 만한 자리를 찾기 위해 속도를 늦춘다.

버스정류장이 있어 정차하는 버스와 타고 내리는 승객들에 방해되지 않는 적당한 곳에 차를 세워야 한다.

버스정류장을 조금 지나면 사거리라서 우회전하는 차량들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하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이곳은 학원건물 앞 도로이다.

하루종일 무거운 가방과 함께 했을 아이들의 더 무거운 발걸음을 대신해 주기 위해, 적응이 되어버려 더 안타까운 딱딱하게 굳은 어깨가 할 일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몰려든 부모님들의 차량이 가득한 곳.

몰려든 차량에서 깜빡거리는 비상등의 분주함이 배고프고 지쳤을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부모님들의 조바심 같게만 느껴지는 곳이다.


오늘은 적당한 자리가 없다.

이런 날은 건물을 끼고 한 바퀴 돌고 다시 오거나, 그래도 없을 때는 아이가 나올 때까지 건물 주변을 계속 맴돌고 있어야 한다. 앞뒤차와 공간을 애매하게 두고 정차해 있는 차를 보며 혼자 슬쩍 짜증도 내보고 건물을 따라 한 바퀴 돌고 오니 학원건물 출입문 바로 앞자리가 비어있었다.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다.

항상 그렇듯 아이가 책가방을 앞으로 메고 손에는 간식을 들고 있다.

조수석에 타자마자

"엄마, 자~"

하고 딸이 내민 손에는 어떤 날은 젤리가 어떤 날은 초콜릿과자가 있었다.

오늘은 웬일로 마카롱, 아니 뚱카롱이다.

거금 3,800원을 주고 샀다고 한다. 마카롱 2개가 나란히 들어있는 투명케이스를 열며 딸아이는 흥분했다.

"요거 2개 들어있는데 3,800원이 말이 돼, 엄마? 이거 너무 한 거 아냐?"

어지간히 먹고 싶었나 보다 싶었다. 비싸다고 이렇게 흥분하면서도 사 온 걸 보면 말이다.

망설이며 샀을 뚱카롱을 덥석 건네받기가 나역시 망설여졌다.

"비싸고 2개밖에 없는데 엄마 주는 거야?"

"한 개씩 먹으면 되겠다 싶어 샀지."

뚱카롱 1개를 받아 들었다.

엄마는 괜찮으니 집에 가서 동생이랑 나누어 먹는 게 어떨까 하는 말이 나오려는 걸 다시 집어넣었다.

맛있는 음식은 동생이랑 나누어 먹으면서 사이좋은 자매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어머니보다 아이가 주는 간식을 맛있게 먹으면서 함께 즐거워해 줄 엄마가 더 필요한 순간이라는 걸 퍼뜩 깨달았기 때문이다.

간식을 먹으며 아이는 또 쉴 새 없이 말을 했다.

집에 가는 10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차 안에서 아이는 수다스러워졌다.

뚱카롱의 가격이 여전히 불만인가 보다. 좋아하는 젤리도 가격이 올랐다며 걱정과 불만이 여간 아니다.


나와 남편은 집에서도 밖에서도 말이 없었다.

두 딸 역시 우리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남편은 소파나 침대에서 스마트 폰으로 뉴스를 보고 나 역시 말없이 집안일만 했다.

두 딸들 역시 방에 틀어박혀 있다가 저녁을 먹고 나면 다시 그들의 방으로 회귀했다.

큰 말썽 없고, 말 잘 듣는 평범한 아이들이라 그러려니 했다.

게다가 사춘기다.

나와 남편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흰머리가 늘어나고 건망증이 심해지는 것이 당연하듯이 사춘기 아이들이

자기 방 문과 함께 입이 닫히는 것 또한 당연하다 여겼다. 그래서 우리는 크게 간섭하지 않았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을 "존중한다"라는 나름의 명분을 내세워 집에서 편하게 쉬고 싶은 욕심을 채운것도 사실이다.그리고 대화하는 에너지조차 힘겹다는  사실을 굳이 자각하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남편과 내가 아주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저녁식사는 가족이 함께 하기 위해 노력했고, 식사를 하는 짧은 시간 만이라도 대화를 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썼다.

아이들에게 궁금한 것을 질문하기도 하고 각자 직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소소하게 꺼내 놓기도 했다.

질문들은 비슷비슷했다. 학교 생활은 어때, 친구들하고 사이는 어때, 학원은 어때 등의 질문을 이어갔고, 아이들의 대답 또한 별다를 게 없었다.

"(학교생활은) 똑같아."

"(친구들은) 그냥 그렇지."

"(학원수업은) 나쁘지 않아."

구체적이진 않아도 다양한 말을 해주길 바랐던 나의 기대에 미치진 못했지만, 예아니오 같은 단답형 대답과 별반 다를 바 없었지만, 그래도 다 괜찮으니 그럴 거라 생각했다.


가끔씩 아이들이 학교생활 고민, 친구고민 등의 이야기를 꺼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남편과 나는 열심히 듣고, 상황을 분석하고 해법이 될 만한 적당한 방법들을 고민 끝에 알려주고는 했었다. 하지만 늘 결론은,

"아, 몰라~! 엄마아빠랑은 말이 안 통해."였다.

그리고 아이들은 한동안 입을 닫았다.

주제가 있었고, 각자의 의견교환이 있었고, 적절한 해답까지 제시가 되었는데 무엇이 잘못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 집은 다른 주제가 생길 때까지 또다시 조용해졌다.

내가 생각하는 부모와 자식 간의 이상적인 대화는 이런 것이었다.

각자에게 필요한 주제로 의견교환을 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입장과 환경을 이해하게 되는 것, 그리고 적절한 해답과 대안이 제시되고 모두가 만족하는 바람직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

이만큼 더 좋은 대화는 없을 것이다.


이런 나의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는 학원수업이 끝난 큰딸을 데리고 오는 차 안에서 자잘한 수다를 떨면서 부터이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의 직장으로 이직을 하게 되면서 저녁에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 충분했던 나는 항상 아이를 태우러 갔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우리는 점점 수다쟁이들이 되어갔고, 그렇게 떠들고 웃으면서 더 많이 알게 되고 그만큼 더 이해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차에 탄 아이가 "아, 머리 아파."라고 하면 나의 대답은 "집에 약 있어. 악 먹고 푹 자."였다.

처음에는 아이가 가만히 듣고만 있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나에게 대답을 정해주었다.

"엄마, 이럴 때는 왜 아프냐고 먼저 물어보고 머리 아파서 어떡하냐, 오늘 많이 힘들었나 보네. 이렇게 대답해 줘."

직설적이고 공감능력이 부족한 나는 그런 대답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이런 생각을 얘기하다 보면 서로의 다름에 신기해하며 깔깔대고 웃었다.

우리는 아재개그도 하고, 시답잖은 농담도 하며 별것도 아닌 주제로 장난 섞인 토론도 하고 함께 떠들고 함께 웃었다.


젤리를 좋아하는 큰 딸이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젤리는 도마뱀 모양을 한 새콤한 맛의 젤리이다.(먹어보니 내 취향은 아니었다..)

동전노래방을 싫어하며 가끔씩 학교 마치고 집으로 바로 가기 싫은 날은 학교근처 공원연못에서 물고기를 한참 구경하다가 바로 학원으로 간다고 한다.

가입한 밴드부에 보컬이 탈퇴했고, 남학생 한명이 자꾸 놀리고 괴롭혀서 짜증난다는 말에 신경을 곤두세웠지만 계속 들어보니 어울려 같이 노는 절친 중 한명이었다.지금까지 알지 못하던 사실들을 몇달 동안 웃고 떠드는 10분이 안되는 차안에서 함께 하면서 알게되었다. 그리고 아이는 학원공부에 대한 고민을 아주 진지하게 털어놓았다.

"나쁘지 않다."라고 얘기해 오던 아이의 학원생활에 대해 우리 가족들은 여러가지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고, 결국 아이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한 내용으로 수업을 진행하던 독서학원이 입시학원으로 바뀌면서 교과공부 수업위주로 커리큘럼이 바뀌고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했다. 차라리 독서학원에 갈 시간에, 읽고 싶은 책을 읽는게 낫겠다는 아이의 뜻에 따랐다. 수학학원에만 가면 너무 잠이 와서 도저히 집중이 안되니 집에서 혼자 수학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아이의 뜻 또한 따라주었다.

내가 이상적이라 생각했던 대화와 그 분위기 에서는 절대 나오지 않던 이야기들, 핵심없이 주변만 맴돌던 중요한 이야기들이 농담과 아재개그, 유치함에서 터져나오는 웃음을 주고 받으면서 나오게 되었다.


지금까지 왜 그걸 깨닫지 못했을까?

어른인 나 또한 여러친구 무리들 중, 만났다하면 고민이야기나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친구보다 아무생각없이 웃고 수다로 떠들던 친구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와 함께 웃는 친구에게 내가 웃을 수 없었던 일들을 이야기 하고,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친구에게 내가 긴장 속에 살았던 일들을 털어놓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이의 수다를 들어주는 사이 어느덧 집에 도착했다.

우리 두 모녀는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타기전, 서로의 입주변을 확인해 주고 옷에 떨어진 뚱카롱의 흔적을 털어주었다. 우리 둘만 먹은 뚱카롱은 집에 있는 둘째에게 절대로 비밀 이라는 다짐과 약속을 되새기는 중요한 절차였다.

그리고 집 앞 편의점으로 가서 둘째와 함께 먹을 초코과자 하나를 샀다.

이렇게 집에 가면 둘째까지 가세한 또다른 수다가 시작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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