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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푼젤 Sep 26. 2022

술자리 최후의 1인

회식, 어디까지 해봤니? - 1 -


나는 입사 전까지 내가 음주가무에 꽤나 능한 인재(?)라는 것을 미처 몰랐었다. 가무를 즐기는 관종이긴 했으나, 집이 매우 엄격한 탓에 늘 11시 통금을 칼같이 지켜야 했다. 새벽까지 연극 연습을 마치고 자취하는 친구네 집에서 자고 가겠다 하니 아빠가 단숨에 태우러 오셨던 적도 있었고, 축제기간 한창 재밌던 중 엄마의 불호령에 눈물을 흘리며 마을버스를 타러 뛰어 올라간 적도 있었다. 아직도 생생한 이 두 가지 기억이 그나마 내가 졸업할 때까지 통금을 조금이나마 어겨 본 유일한 사례인 것 같다.


11시 통금을 넉넉히 지키기 위해서는 학교 근처에서 늘 9시 반 - 10시 사이에 출발을 해야 했다. 9시 반은 한참 흥이 오를 시간인데, 그 시간에 일어나야 하다 보니 나는 늘 술을 먹다 말아야(?) 했고, 취한 모습으로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는 것도 싫어 거의 술을 마시지 않게 됐다. 내가 애정을 많이 가졌던 모 경영학회에는 유달리 술 좋아하고 흥 넘치는 언니 오빠들이 많았는데, 나는 술을 마시지 않다 보니 매주 있는 학회 뒤풀이 자리에서도 늘 겉도는 느낌이었다. 학회에서 재미로 한 앙케이트 조사에서는 <술자리에서 안주 축내는 사람>이라는 항목에서 압도적인 득표 수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언니 오빠들과 잘 친해지지 못하는 이유가 내가 술을 마시지 않아서는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리고 스물세 살 겨울, 회사에 입사하면서 드디어 내 세상이 열렸다. 내가 그토록 빠른 입사를 원했던 데에는 사실 '자유'에 대한 갈망도 한몫 단단히 했다. '야근'과 '업무의 연장선상으로서의 회식'이라는, 통금 시간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무적의 핑계가 내게 생긴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쌓인 울분을 담아 무시무시한 다짐을 하나 했다.


앞으로 나는 모든 술자리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 최후의 1인이 될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는 다짐이다. 일을 잘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회식자리의 퀸이 되어 나의 대학시절 한(?)을 풀어보겠다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다. 게다가 10년 전의 나는, 마치 그 시절의 유노윤호처럼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입사 전 재미 삼아했던 방송 인터뷰에서 감히 '최연소 파트너'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포부도 크고 욕심도 많았다. 외모가 여성스러운 편이라 더욱이 털털하게 보이고 싶어 했고, 술도 잘 마시고, 일도 잘하는, 뭐 그런 멋진(?) 회계사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운명의 장난처럼, 내가 처음 어싸인(업무 배정)되었던 감사업무의 인차지(팀장) 선생님은 그 당시 본부 내에서 가장 술을 좋아하시고, 또 잘 마시기로 아주 악명이 높은 분이었다. 일주일에 7번 술을 드시고, 주량이 5병쯤 된다는 다소 허황된 소문이 돌기도 할 정도였는데, 일은 또 기가 막히게 잘하셔서 천재라느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는, 그런 분이었다.

나와 같은 본부에 있었던 사람들은 아마 모두 이 글을 읽고 그분을 떠올릴 것이다. 참고로 그분은 몇 해 전 상무님이 되셨고, 여전히 술을 '매우' 즐겨 드신다고 한다ㅎㅎ 


첫 회식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필드 이틀 째였나. 나는 다짐대로 정말 열정을 다해 열심히 마셔댔다. 술을 잘 마시면 쎄 보인다고 착각하던 어린 시절이었으니까. 나 생각보다 잘 마시네? 좀 멋지네? 스스로 감탄하면서. 취해본 적이 없어 내 주량이 어느 정도인지도 잘 모르던 상태였는데, 뭣도 모르고 주는 술을 다 받아마셨다. 거나하게 취한 채로 노래방에 가서 아이유의 노래를 목청껏 불렀다. 그리고 그다음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강한 회귀본능 덕에 다행히 집에는 무사히 돌아온 듯했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눈을 뜬 다음 날, 출근한 지 만으로 한 달도 안 된 신입사원 주제에 회식 좀 했다고 결근을 할 수는 없어 꾸역꾸역 어떻게든 출근을 완료했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펴는 순간 당장이라도 분수토가 쏟아질 것만 같아 화장실로 달려갔다. 한바탕 속을 게워내고 헹궈내기를 반복하다 화장실 바닥에 철퍼덕 앉아 변기통을 끌어안은 채 잠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더러운데, 그 당시엔 더럽고 말고를 따질 겨를도 없었다. 그렇게 1시간가량 변기에 엎어져있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인차지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조퇴를 했다. 너무도 처참한 이것이 나의 첫 회식에 대한 기억 조각들이다. 


당연히 일도 망쳤다. 첫 필드라 안 그래도 모르는 것 투성이었는데, 꼴랑 5일 나가는 필드에서 하루를 엎어져 잠만 잤으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오히려 그것이 첫 필드였다는 사실이었다. 어차피 첫 주엔 자료가 잘 나오지 않아 빈둥대는 시간이 많기도 하거니와, 첫 필드를 나온 막내 회계사가 할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으니까. 어찌 됐건 나는 일과는 별개로 우리 본부 최고의 주당으로 불리는 선생님께 눈도장을 확실히 찍은 셈이었다. 


소문은 빨랐다. 그것이 내 회계사 인생에 어떤 구름을 몰고 올지, 내 인생을 어떤 방향으로 바꿀지 그때는 몰랐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죠. 제가 회계법인 생활을 시작했던 11년 전과 지금은 정말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특히 코로나를 겪으면서 회식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고 해요. 제 추억(?)들과 함께 요즘의 회식문화에 대해서도 다음 편에 덧붙여 써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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