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동 띵동. 띵동 띵동.
한창 상당수의 사람들이 출근 준비를 하고 있을 아침이었다. 누군가가 이정호의 아파트 현관 초인종을 사납게 마구 누르고 있었다. 긴 밤을 지새워 신경이 날카롭긴 했지만 원체 쉽게 감정의 동요를 느끼지 않는 이정호였다. 하지만 반복되는 사나운 초인종 소리에 슬슬 짜증과 함께 의구심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정호의 집에 초인종을 눌러 방문하는 사람은 그동안 없었기 때문이다.
이정호는 인터폰 화면을 통해 밖을 살폈다. 웬 여자 하나가 문 앞에 서서는 초인종을 계속해서 누르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었고, 이정호는 기척도 내지 않은 채 인터폰 화면 속의 여자를 노려보았다.
‘누구지? 뭐 하는 여자지?’
포기하고 갈 줄 알았던 여자는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자 문을 마구 두드리고 심지어 발로 쾅쾅 차기 시작했다.
‘이 여자가 미쳤나.’
이정호는 서재로 들어가 현관 밖에 설치해 둔 카메라의 각도를 조절해가며 주변 상황을 확인했다. 이 막무가내의 여자가 소란을 피우니 점점 한 집 두 집씩 현관을 열고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이정호는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해결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로 시선이 집중되어서는 안 된다. 그는 현관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뭡니까?”
짜증스럽게 던진 첫 마디에 긴 갈색 머리의 여자가 그럴 줄 알았다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거 봐, 안에 사람 있었네.”
“그래서 뭐요?”
“이봐요. 나 바로 아래층에 사는 사람인데요. 밤새 그쪽 집에서 쿵쿵대서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알아요? 머리가 울려서 잠을 잘 수가 있어야죠!”
이정호는 여자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그는 집에서도 밖에서도 거의 소리를 내지 않고 생활하는 사람이었다. 말 수도 적지만, 행동하는 데 있어서도 극히 소리와 흔적을 남기는 일을 항상 경계하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쿵쿵대다뇨. 저는 개 한 마리도 안 키우는 사람입니다.”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죠. 아저씨가 쿵쿵대는지, 개가 쿵쿵대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좀 조용해져서 새벽에 잠이 좀 드나 싶었더니 좀 전부터 또 쿵쿵댔잖아!”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여자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이정호는 더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이것 보세요! 우리 집에서 난 소리가 아니라고요!”
“바로 머리 위에서 쿵쿵댔는데 끝까지 아니라고 잡아뗄 거예요?”
이정호는 기가 막혔다. 밤새 방 안의 여자가 혹시 바닥이라도 두드린 걸까 싶은 의문이 잠시 들었지만 분명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좀 전에 확인했을 때도 그 여자는 그냥 침대 위에 기운 없이 누워 있거나 앉아 있거나 할 뿐, 어떤 소리를 내는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 여자가 갇혀 있는 방은 사방과 천장, 바닥을 흡음재로 시공해 놓은 공간이었다.
방 안의 여자에 대해 잠시 생각하는 동안, 눈앞의 여자가 다시 쏘아대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내가 더 이상 참지 못하겠어서 올라온 거예요. 층간 소음 때문에 살인난다더니, 내가 그 마음이 이해가 갈 지경이라고!”
“뭐요? 이 여자가 보자 보자 하니까 정말.”
엄청난 속도로 빠르게 쏘아내는 여자의 성난 말들에 이정호는 정신이 혼미해진 나머지 마주 대거리를 하고야 말았다. 여자의 한 쪽 입꼬리가 씨익 올라가더니 눈을 치켜떴다.
“‘이 여자가?’ ‘이 여자가?’ 날 언제 봤다고 ‘이 여자’래? 당신 나 알아?”
미친 여자다. 그냥 밑도 끝도 없이 싸울 거리를 찾아온 여자다. 뭔가 아침부터 잘못 걸린 기분에 이정호는 더 이상 상황을 이어나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 상대할 가치가 없어서 내가 참는다.”
이정호는 다시 현관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서려 했다. 그러자 긴 갈색 머리 여자는 현관을 붙들고 갑자기 악을 쓰기 시작했다.
“여보오! 여보오오오! 이 아저씨가 그냥 들어가려고 해!”
이정호가 황당한 얼굴로 여자를 바라보는 그때, 어디선가 덩치 좋은 남자 하나가 느릿느릿 걸어왔다. 사이즈가 맞지 않는 것 같은 꽉 끼는 반팔 티셔츠의 소매 아래로, 아마도 전신이 늠름할 것 같은 용의 몸 일부가 솜씨 좋게 새겨져 있었다. 몸의 반은 그림으로 덮었을 것만 같은 남자가 낮게 울리는 음으로 목소리를 냈다.
“형씨, 좋게 좋게 해결하자고 순한 우리 와이프를 올려 보냈더니 기어코 여자 입에서 비명 소리가 나오게 해? 당신이 그러고도 남자야?”
이정호는 이 상황이 너무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아래층에 이렇게 쌍으로 진상인 부부가 살고 있는 줄은 몰랐다.
“저기요. 저희 집에서는 정말 그런 소리가 날 일이 없습니다.”
2대1의 대치 상황이 되고, 구경꾼이 조금씩 늘어나자 이정호는 상황을 빨리 종료시키는 것이 급해졌다. 경찰이라도 오면 곤란해진다. 한층 저자세가 된 이정호의 말투에 용 문신의 남자는 어깨를 한껏 더 높였다.
“그럼 한 번, 들어가 확인이라도 해 봅시다. 그렇게 크게 쿵쿵 소리가 난 거면 무슨 운동기구나 뭔가가 있겠지.”
“그런 것도 없다니까요.”
“형씨, 거 답답하네. 좋습니다. 그럼 경찰 불러서 우리 잘잘못을 따져봅시다. 내가 쿵쿵대는 소리도 다 녹음해놨거든!”
이정호는 경찰을 부른다는 소리에 무척 난감해졌다. 경찰이 지금 상황에 등장해도, 이들이 집에 들어와서 안을 둘러봐도 곤란한 상황이었다. 이미 이웃들은 대여섯 집이 몰려나와 이 상황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정호는 두 사람의 체격을 살폈다. 그리고 흉기로 쓸 만한 집 안의 도구들과 혹시라도 그들을 회유할 만한 수단들을 빠르게 떠올려보았다. 판단이 끝났다.
“들어가시죠.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신다니 그럼 그렇게 하십시다!”
이정호는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이웃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일부러 크게 말했다. 일단 집 안으로 이 부부를 데리고 들어간 다음 위협이든 회유든 해야 할 것 같았다. 집 안에 들어가면 분명 아무 소리도 바깥으로 새어 나오지 않는다. 이정호는 부부를 먼저 들여보내고 현관문을 닫았다.
퍽.
문이 닫히는 순간, 이정호는 뒤에서 가해 오는 강한 충격에 정신을 잃었다. 스르르 쏟아져 내리고 있는 이정호의 몸을 용 문신의 남자가 받아서는 바닥에 내려놓는 것을 보며 긴 갈색 머리 여자가 말했다.
“생각보다 허술한 인간이었네.”
***
방 안의 여자, 김이영은 방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혀 모른 채 어제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여행 가방을 끌고 주차장으로 내려가 택시를 부르려던 중 김이영은 정신을 잃었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정호의 아파트 방 안 침대 위에 손과 발이 묶인 채로 누워 있었다.
방 안은 조도가 낮은 조명으로 인해 조금 어두웠지만 소리를 질러 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빨리 깨닫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이 사람은 도대체 무슨 용도로 집 안에 이런 인테리어를 해둔 거지?’
김이영이 갇혀 있는 방에는 녹음실 등에서 주로 설치하는 흡음재가 벽에 시공되어 있었다. 한쪽 천장의 모서리에는 작은 CCTV 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칠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데다 자신이 내는 작은 소리마저도 다 흡수되어 버리는 것 같은 그 방 안에서 김이영은 아득한 공포를 느꼈다.
‘침착하자. 방법이 있을 거야.’
여행 가방 안에 들었을 휴대폰을 이정호가 발견했을지 걱정이 됐다. 만약 발견하고 꺼뒀다면, 선화가 자신을 찾아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을 수도 있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선화라면 CCTV들을 추적해서라도 확인할 수 있을 거야.’
선화가 자신을 찾아낼 때까지 무사히 버티거나 탈출할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하지만 초조함과 공포가 자꾸만 짓눌러왔다. 이미 너무도 긴 하루를 보낸 상태였다. 최근에 시작한 입덧 때문인지 긴장한 와중에도 속이 너무 불편했다.
“우읍! 우욱!”
빈속에서 기어코 위액이 쏟아져 나왔다. 카메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건지 이정호가 들어왔다. 온통 엉망이 된 침대 위를 보며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속이 안 좋으신가요?”
이 와중에 정중한 존대라니, 김이영은 그게 더 소름끼쳤다.
“아시겠지만 저는 임신 중이고 최근 입덧을 하는 데다 하루 종일 빈속이어서 더 힘이 드네요.”
이정호가 상황을 깨닫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곧 회장님이 도착하실 겁니다. 이 집에서 나가지 않게 하라고 지시하신 것뿐이라, 묶은 것들은 풀어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테니 어서 풀어주세요. 화장실도 가야 해요.”
화장실을 언급하자 이정호가 서둘러 손과 발을 묶은 끈들을 풀었다. 방에서 나와 화장실로 가는 동안 김이영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현관은 특이하게도 중문 안쪽으로 잠금장치가 되어 있었다. 비밀번호를 누르지 않으면 안에서도 나갈 수 없었다. 그 외에는 평범한 구조의 아파트였고, 집 안에는 이정호와 김이영, 이렇게 둘만 있는 것으로 보였다.
‘어떻게 해야 나갈 수 있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며 김이영은 화장실로 향했다. 입 주변이며 옷까지 위액이 묻어 시큼한 냄새와 함께 온통 찝찝했다. 김이영은 일단 입을 헹궈내고 세수를 하고선 멍하니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거울을 바라보고 있던 그날 저녁의 자신이 떠올랐다.
***
“뭐라고요?”
이정호라는 세 글자가 박힌 명함을 내밀던 그는 처음엔 분명 모 연예 기획사의 실장이라고 했었다. 잘나가는 연예인들이 소속되어 있는 이름 있는 연예 기획사여서 사기 같지는 않았다. 심지어 연습생의 건강관리까지 꼼꼼히 관리를 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며 유명한 대학병원에서 종합건강검진까지 받았다. 그리고 어느 날, 김이영은 저녁 늦게 찾아와 그가 보여준 계약서를 보며 기함했다.
“그러니까, 배우로 키워주시려던 게 아니라 저한테 대리모를 시키려고 처음부터 접근하신 거군요.”
기가 막혔다. 명함을 받고, 기획사를 방문하고, 종합검진을 받던 날들에는 그저 자신에게 생각지도 못한 운명 같은 기회가 찾아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예인이 된다는 꿈은 꿔 본 적이 없었지만, 막상 길이 펼쳐진다고 생각하니 잘 해 볼 자신도 있었다.
김이영은 어릴 때부터 영리하고 뭐든 금방 배웠다. 가정 형편 때문에 과외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악착같이 공부해서 최상위권 대학에 입학도 했다. 대학생이 되고 나면 꽃밭이 펼쳐질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가난은 끝없이 김이영의 발목을 잡았다. 그나마 좋은 대학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은 과외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주었다. 그래도 아르바이트는 끝이 없었다. 학교를 마치고 나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버는 돈은 다 밑빠진 독인 집으로 들어갔다. 언제쯤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김이영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길거리에서 따라온 남자가 명함을 내민 것이었다. 처음엔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보여주는 증거들은 분명 그가 유명 연예 기획사 소속의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좋은 마스크를 가지고 있어요. 카메라 테스트를 한 번 받아봤으면 좋겠는데요. 아, 직접 기획사로 방문해 주세요. 필요하다면 동행할 만한 친구를 데려와도 좋습니다.”
카메라 테스트에서도 호평을 받은 김이영은 난생처음 받아보는 플래시 세례도 신기했고, 이어지는 탄성과 칭찬에 기분이 좋았다.
“건강검진까지 마치고 나면 계약서를 가지고 방문하겠습니다. 조만간 뵙죠.”
그렇게 말했던 실장이 열흘 후 방문해 내민 계약서의 내용은 배우 지망생을 위한 계약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대리모가 되어 임신과 출산을 하고 나면 단계 단계마다 그에 맞는 거액의 보상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의 계약이었다. 기가 막히고, 자존심이 무참히 짓밟히는 느낌에 김이영은 무너질 것만 같았다.
“잘 생각해 보세요. 계약서는 여기 두고 가겠습니다. 하지만 계약의 내용이 외부로 유출될 시 관계된 사람들 모두 다칠 수 있다는 걸 기억하세요. 결정할 시간은 사흘 드리겠습니다.”
아무에게도 의논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계약서를 박박 찢어버리지도 못했다. 그러기엔 계약서에 찍혀있는 금액이 너무 컸다. 그 돈이면 집의 빚을 다 갚고도 김이영이 따로 독립해서 살아갈 수 있었다. 졸업 후에는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하고 살아갈 수 있게 보장해 준다는 항목이 명시되어 있었다.
‘두 학기만 휴학하면 되는 거잖아. 조리와 회복도 책임져 준다잖아. 그럼 괜찮은 거 아닐까? 이 돈이면,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어.’
감시를 당하는 기분이라 나가지도 못한 채로 집안에서 사흘을 꼬박 보냈다. 그리고 실장이 다시 방문했다. 잠시 화장실에서 거울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던 김이영은 찬물에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린 후 거실로 나갔다.
“결정하셨습니까?”
김이영은 눈앞의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대답했다.
“네. 할게요.”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났다. 병원에서 수정란 착상에 성공한 이후 몇 주가 지나자 입덧이 시작되었다. 입덧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괴로웠다. 그리고 금방 끝나주지 않았다. 실장은 가급적 외부인을 만나지 않는 것을 권했지만 그러면서도 모체와 태아의 건강을 위해 적당한 산책과 운동을 지속하길 바랐다. 비밀을 지킨다고 약속하고 가장 친한 친구인 선화를 만났다.
“뭐? 이영아, 너 고생하고 힘든 거야 내가 제일 잘 알지만, 그래도 어떻게 남의 아이를 낳아서 주는 일을 택할 수가 있어…….”
말끝을 흐리는 선화였다. 선화도 이영 못지않게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함께 가난을 겪으며 성장했다. 그래서 더 서로를 잘 이해하고, 응원하며 단짝으로 지내올 수 있었다.
“누구한테 의논을 할 수도 없었어. 사실 너한테도 이야기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나온 거야. 누구한테도 말해서는 안 돼. 그럼 너도 위험해져. 알겠지, 선화야?”
위험해진다는 말에 선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럼 지금 이미 위험할 수도 있는 거 아냐?”
“휴대폰은 꺼뒀고, 그 외에는 걱정될 만할 것은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않았어. 이렇게 중요한 일인데 너에게는 알려야 할 것 같아서. 그동안 많이 걱정했지.”
“그럼! 몇 주 내내 연락은 피하고 나중에 연락한다는 답장만 보내서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미안해, 선화야.”
선화가 이영을 안고서 등을 도닥였다. 이영은 혼자 끙끙 앓느라 고단했던 시간들이 위로받는 것 같아 눈물이 쏟아졌다.
“괜찮아. 사안은 무척 심각하지만……, 이미 결정했고 벌어진 일인데 어쩌겠어.”
“나 결정을 바꿨어.”
“뭐라고?”
아까보다 더 크고 동그래진 눈으로 선화가 놀라 물었다.
“나 도망갈 거야. 이 계약에는 단계별로 착수금을 받게 되어있어. 아이가 잘못되거나 하면 다시 준비 기간 없이 다시 임신을 해야 해. 계약할 때는 돈이 급해서 하긴 했는데, 나 너무 무섭고 이 계약이 끔찍해.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이 있어.”
“그게 뭔데?”
“이 아이……. 그 사람들의 아이가 아닐지도 몰라.”
“뭐?”
연달아 충격을 받은 선화의 몸이 살짝 휘청했다. 이영은 선화의 양팔을 붙들었다. 선화가 가까스로 정신을 부여잡고 다시 물었다.
“혹시, 민우 아이야?”
“그걸 잘 모르겠어. 배아를 옮기는 시술을 하고 민우를 잠시 만났었는데……, 기억이 안 나.”
“그 새끼 또 음료에 뭐 탔니? 범죄자 새끼.”
“잘 모르겠어. 다시는 안 그런다고 했었단 말이야. 눈떴을 때는 내 자취방에 나 혼자 있었어. 민우는 그 이후로 연락이 안 돼. 메시지만 하나 달랑 남겨놓고 사라졌어.”
“어떤 메시지인데?”
“군대 간대. 기다리지 말래.”
“아주 똥매너도 끝까지 다채롭게 보여주네, 개새끼.”
이영이 갑자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당황한 선화가 이영을 달랬다.
“미안해, 이영아, 울지 마. 마음도 복잡할 텐데.”
“만약에 이 사실을 그 사람들이 알게 되면, 아이를 지우고 다시 임신을 시킬 거야. 나 못 해. 다시 하고 싶지 않아.”
팽하고 코를 풀고 있는 이영에게 선화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래서, 도망갈 거라고?”
“응. 도망가서 숨어있다가, 아이를 낳고 나서 유전자 검사해 보려고. 내 아이가 아니면 그 사람들 아이일 테니 그때 연락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아.”
“그냥 중단할 생각은 없어?”
“만약에 그 사람들 아이인데 내 마음대로 중단했다가 걸리면 날 가만두지 않을 것 같아.”
“도망가도 찾아내면 어쩌려고 그래.”
“찾아내도 자기들 아이일지 모르는 애를 데리고 있는 나를 어떻게 하진 못하지 않을까?”
선화는 이마를 짚었다. 미간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이거 받아.”
선화가 내민 것은 자신의 휴대폰이었다.
“이걸 왜?”
“내가 바로 다시 한 대 개통할게. 네 휴대폰은 위치 추적당하고 있을 지도 모르잖아. 내가 새로 개통할 핸드폰에서 위치 추적 앱 링크 하나 공유할 테니 이 폰에도 깔아. 그럼 최소 네가 어디 있는지 내가 확인이라도 할 수 있잖아.”
이영은 선화가 내미는 휴대폰을 받아들었다.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고마워, 선화야.”
“내가 돈은 없어도 기술은 좀 있잖아. 네가 어디에 있어도 찾아낼 테니까, 최대한 빨리 짐 싸서 나와. 이 참에 지긋지긋한 너희 집에서도 좀 벗어나자. 일은 안 하면서 너만 쳐다보고 그놈의 돈돈 거리는 식구들한테서 벗어나.”
김이영은 친구 선화가 늘 멋있었지만 평생 중 오늘이 가장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끝없는 가난의 굴레 속에서 쳇바퀴를 돌게 만든 가족들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눈물이 쏙 들어갔다.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이영은 짐을 쌌다. 짐을 싸고 있는 도중에 선화의 새로 개통한 휴대폰으로부터 위치 추적 앱 링크가 도착했다. 선화가 시키는 대로 위치가 공유될 수 있게 앱을 깔아둔 후 속옷으로 잘 감싸서 여행 가방 한쪽 구석에 넣었다. 그리고 짐을 마저 잘 싼 후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왔다. 택시를 부르려고 휴대폰을 열고 있었는데, 그러고는 정신을 잃었다.
***
똑똑.
“아직 멀었습니까? 회장님 도착하셨습니다.”
화장실 문밖에서 이정호가 노크를 하며 말했다. ‘회장님’은 도대체 누구일까. 김이영은 계약부터 임신에 이르는 지금이 오기까지 아직 의뢰자가 누군지 몰랐다. 이정호의 이름으로 된 계약서에 계약을 했고, 의뢰자는 따로 있는 것 같았다. 탈출을 하려다 실패하고 잡혀온 오늘에서야 그 의뢰자, ‘회장님’의 얼굴을 보게 되는 것이다. 김이영은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레 화장실 문을 열고 나갔다. 거실 탁자에서 화장실 쪽으로 몸을 돌리고 앉은 ‘회장님’은 위액을 닦아낸 후 온통 젖은 옷을 입고 있는 김이영의 몰골을 언짢은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도망을 가시려고 했다?”
‘회장님’은 까만 똑단발의 젊은 여자였다. 기껏해야 자기 또래 정도로 보이는 ‘회장님’의 얼굴을 보면서 김이영은 혼란스러웠다.
‘저렇게 젊은데 회장님이라고?’
자신의 처지와는 너무나도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게 분명한 ‘회장님’의 해사한 얼굴은 더 고운 이영의 얼굴을 절로 어둡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아이를 돈을 주고 사고, 누군가는 아이를 만들어 키워 파는구나. 내가 그 누군가 중 한 명이구나.’
자괴감에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당당하고 차분하기 짝이 없는 ‘회장님’의 앞에서 이영은 자꾸만 몸이 움츠러들었다.
“너무 무섭고 답답해서 그랬어요. 죄송합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김이영 씨, 우리는 이 일에 엄청난 시간과 공을 들였어요. 적합한 아이를 건강하게 잘 키워 줄 좋은 대리모를 찾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김이영은 계약 위반으로 인해 자신이 떠안게 될지도 모르는 어마어마한 위약금이 두려웠다. 여태 받은 착수금으로는 집의 빚을 반의반도 갚지 못한다. 그래도 혹시 몰라 지금까지 받은 돈은 통장에 고스란히 모아뒀었다. 돈 들어오는 구멍이 더 보인다 싶으면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가족들이 가장 무서웠다. 어떻게 돈이 생겼는지 알게 된다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임신을 시키려고 들 사람들이 김이영의 가족들이었다. 선화의 말대로 이번 기회에 김이영은 그들에게서 달아나고 싶었다.
머리를 조아리고 계속해서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김이영을 보며 ‘회장님’은 좀 마음이 누그러진 모양이었다. ‘회장님’은 김이영에게 다가와 두 손을 마주 잡았다.
“김이영 씨, 그 아이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아이입니다. 저는 사정이 있어 아이를 더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영 씨를 찾게 된 거예요. 이렇게 부탁합니다. 아이를 제발 소중히 키우고 낳아주세요. 계약서에 명시된 사항들은 그대로 다 이행될 겁니다.”
무려 ‘회장님’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앞에서 그렇게 몸을 낮추고 부탁을 하자 김이영은 왠지 이 일이 그렇게 무서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이어진 말에 바로 사라졌다.
“계약을 위반하는 행위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그리고 김이영 씨의 건강과 아이의 태교를 위해서 출산 전까지는 이 집에서 지내도록 하세요. 필요한 것들은 여기 이 실장님이 다 처리해 주실 겁니다.”
저 아무 소리도 내려앉지 못하는 방 안으로 돌아가라는 말이었다. 김이영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
김이영은 어제까지의 일들을 떠올리며 침대 위에 기운 없이 누워 있었다.
‘선화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냈을까. 나를 찾아냈어도, 과연 여기서 나를 꺼내줄 수 있을까.’
배가 고팠다. 이정호는 ‘회장님’이 가고 난 이후에 살뜰히 차려진 저녁식사를 가져다주고, 영양제까지 챙겨주며 김이영의 뱃속에 든 아이를 미리부터 모셨다.
시간을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아까 아침식사를 주고 갔으니 먹은 것들을 치우러 들어올 것 같은데 아무런 소식이 없어서 궁금했다. 이 집은 어떻게 시공을 해 둔 건지 바깥의 소리도 웬만해서는 들리지 않았다. 끔찍한 고요였다.
그때, 문이 열렸다. 낯익은 얼굴이 눈물을 글썽이며 달려들었다.
“이영아! 괜찮아?”
“선화야!”
선화의 등 너머로 매서운 눈의 긴 갈색 머리 여자와, 더 무서운 인상과 덩치의 남자가 서 있었다. 이영은 덜컥 겁이 났다.
“선화야, 너도 잡혀온 거야? 나 때문에?”
선화가 활짝 웃었다.
“아니야! 아는 언니, 오빠한테 부탁해서 너 구하러 온 거야. 우리 어서 나가자. 저 남자는 알아서 처리해 줄 거야.”
바닥에 쓰러져있는 이정호를 가리키며 선화가 말했다. 어떻게 처리한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지만 김이영은 한시라도 빨리 여기서 벗어나고 싶어서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김이영과 이선화 두 사람은 이정호의 집을 벗어났다.
***
김이영과 이선화는 작은 시골 마을에 내려가서 지냈다. 선화가 그동안 모은 돈과 이영이 받았던 착수금으로 시골의 작은 집을 얻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선화는 친한 선배를 통해 다른 이름으로 일거리를 받으며 돈을 벌었다. 이영은 살림을 하고 태교를 하며 시골 생활을 만족스럽게 누렸다. 이웃들은 젊은 사람들이 시골에 와서 산다고 기특하다며 그들을 반겨주었고, 편의상 이영과 선화는 자신들을 자매라고 소개했다. 시골이었지만 읍내에 나가면 작은 산부인과도 하나 있었다. 몰래 뒷돈을 주고 사정사정하며 의사에게 부탁해서 때가 되면 정기검진도 받았다. 그렇게 평안한 7개월이 지났다.
날이 제법 쌀쌀해진 계절의 밤이었다. 이영은 배가 뭉치는 것 같은 통증이 점점 규칙적으로 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진통인가?’
느낌이 이상해서 화장실에 갔더니 피가 옅게 묻어났다. 병원의 응급 번호로 전화를 했더니 이슬이 비치는 것 같다고, 진통 주기를 체크하면서 이제 병원에 올 준비를 하라고 했다. 이영은 선화를 깨웠다.
“선화야, 일어나.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
눈을 비비며 선화가 부스스 일어났다.
“정말?”
“응. 병원에 전화해서 물어봤어. 이제 슬슬 오래.”
“드디어 아기가 나오는구나. 이영아, 고생했다.”
“이제 시작일 텐데 뭘. 내가 미리 짐 싸놓은 거 저 방에 있어. 챙겨서 가자.”
“그래. 잠시만 기다려.”
선화가 세수를 하고 짐을 꾸리는 동안 이영도 나갈 준비를 했다. 이제 아기를 무사히 낳고 나면 유전자 검사도 하고, 그들의 아이라면 보내주어야 할 것이었다. 이영은 내심 아기가 그들의 아기가 아니기를 바랐다가도, 위약금과 앞으로 살아갈 인생을 생각하면 꼭 그들의 아이이길 바라는 마음이 같이 들었다. 선화가 준비를 끝내고 나왔다.
“가자, 선화야.”
“아니, 조금 기다려.”
“응? 뭘 기다려. 나 진통 이미 시작했어. 조금씩 더 많이 아파와.”
“차가 올 거야.”
“택시 불렀어?”
“아니, 구급차가 올 거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집 앞에 구급차가 멈춰 섰다. 요란한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도착한 구급차에서 동네 산부인과 의사가 내렸다. 이영이 반갑게 인사했다.
“선생님, 여기까지 와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어서 타세요.”
의사가 환하게 웃으며 이영을 안내했다. 선화도 이영이 구급차에 올라 눕고 난 옆자리에 앉았다. 의사가 이영에게 진통과 심박을 체크하는 벨트를 각각 감고 수액을 연결했다. 이영은 진통이 점점 더 짧은 주기로 심해지는 것을 느꼈다. 선화가 이영의 손을 꼬옥 잡았다.
“이영아, 괜찮아?”
“으응. 좀 힘드네.”
선화가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 이영의 이마를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영아, 지금 우리 동네 산부인과로 가는 거 아냐.”
“그러면? 다른 병원 가면 우리 위치가 발각될 거야. 안 되는 거 알잖아.”
“우리 지금 메디윤산부인과로 가고 있어.”
“거긴 내가 시술받은 병원이잖아. 선화야, 거길 왜 가!”
몸을 일으키려는 이영을 선화가 누르며 막았다. 수액 줄에 의사가 주사를 놓았다. 선화가 말했다.
“미안해. 이영아. 다 괜찮을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이영은 빠르게 의식을 잃었다.
***
“그래서, 일이 다 끝나면 이 돈을 받을 수 있는 건가요?”
7개월 전, 계약서를 앞두고 ‘회장님’과 이선화가 마주 앉아 있었다. ‘회장님’이 말했다.
“네. 하민우 씨가 김이영 씨에게 접근하는 방식이 매우 문제적이라 안전한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선화 씨가 적합하다고 판단해서 이렇게 뵙자고 한 거예요.”
“그건 그래요. 그 개새끼는 이영이에게 해로워요.”
“그리고, 김이영 씨를 사랑하시죠?”
“네?”
“김이영 씨에 대해 오랫동안 사전조사를 하면서 이선화 씨에 대해서도 다 조사했습니다. 절친이긴 하지만, 이선화 씨는 김이영 씨를 연인으로 사랑하고 계시던데요.”
“그건……. 이영이가 알아서는 안 돼요.”
“이선화 씨가 원하지 않는데 우리가 굳이 발설할 이유는 없죠. 우리는 그저 김이영 씨와 뱃속의 아이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임신기간을 지낼 수 있기를 원합니다.”
“민우는 어떻게 됐죠?”
“어제 음료에 약을 타는 걸 보고 바로 조치를 취했습니다. 두 분 다 다시 만나게 되실 일은 없을 겁니다. 생기고 있을지도 모르는 아이를 감히 다치게 할 뻔했으니까요.”
이선화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민우의 결말이 어떻게 되든 궁금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수백 번 수천 번 생각해왔다. 민우가 이영이를 안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영이를 걱정하며 민우를 욕했지만, 입으로 뱉은 욕의 수백 배 수천 배에 달하는 증오가 늘 숨어있었다.
‘나만의 이영이인데. 내 단짝이자 내 사랑하는 연인인데. 감히 너 같은 개새끼가 우리 이영이를 안아?’
민우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라면 차라리 속이 시원했다. 이걸로 이영이는 그 쓰레기 같은 새끼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되나요?”
“이건 제가 수족으로 부리는 실장까지 속이고 진행하는 일입니다. 일을 똑바로 못 하는 사람은 수족이어도 자르는 게 제 원칙이라.”
그 말을 하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회장님’의 눈에서 이선화는 ‘일에 착오가 생기면 너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읽었다. 등골이 쭈뼛거렸다.
“실장이 선화 씨의 얼굴을 알고 있으니 사람들을 따로 붙여드릴 거예요. 그 사람들이 어떻게 할지는 알려줄 겁니다. 선화 씨는 모른 척 이영 씨의 탈출을 돕고, 실장이 납치한 이영 씨를 다시 구출해서 임신 기간 내내 정성스레 보호해 주시면 됩니다. 선화 씨에게 손해가 될 일은 하나도 없죠.”
“그러네요. 저는 수락하지 않을 이유가 없네요.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아기는 어떻게 되나요?”
‘회장님’이 조용히 이선화를 응시했다. 너 따위가 그런 것까지 궁금할 이유가 있느냐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이영이를 위해서도 아기의 이야기를 미리 알아두고 싶었다. 그래서 이선화는 지지 않고 ‘회장님’을 마주 똑바로 응시하며 답을 기다렸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는지 ‘회장님’은 표정을 풀고 답을 했다.
“‘디자이너 베이비’라는 말을 아세요?”
“‘디자이너 베이비’라뇨?”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를 치료할 용도로 줄기세포를 얻기 위해서 만든 배아로 아기를 만드는 거죠. 맞춤형 아기라고 할 수 있어요.”
“아…….”
“우리 아이가 많이 아픕니다. 저는 둘째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고요. 그래서 대리모가 필요했어요. 김이영 씨는 젊고, 건강하고, 똑똑하고, 태교도 잘 할 것 같은 좋은 후보여서 선택되었습니다.”
“그럼 이 아기는 그 아이를 위해 만들어진 거네요.”
“그래도 우리의 둘째 아이로 잘 자라게 될 겁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선화는 디자이너 베이비에 대한 이야기는 이영에게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사랑하는 이영에게는 그저 아이가 유복한 아빠 엄마에게 돌아가 잘 살게 되었노라고, 그리고 우리는 계약된 내용대로 돈과 직업을 얻어 우리의 인생을 살자고. 언젠가 네가 나의 마음을 알아준다면 우리의 아이를 낳아 기르자고. 그리고 민우는 군대에 가서 돌아오지 않았노라고. 그렇게 이야기하기로 마음을 먹으며 이선화는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