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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라 Dec 23. 2020

잘 자고 잘 먹기도 어려운 일이 됐다

불면증과 소화불량

8개월 차, 그러니까 29주부터 귀신같이 임신 후기 증상들이 나타났다.


첫 번째는 피로감이었다. 배 속에 아기가 있는 거치고 매우 활력이 넘치던 임신 중기와 달리, 후기에 접어들자 틈만 나면 만사가 귀찮고 피곤해졌다. 오늘까지 이 일을 해야 하는데, 생각만 하고 실천을 할 수가 없었다. 만사를 내일의 나에게 맡기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도 매일매일이 지치는 기분이었다.


이게 결국은 체력과 정신력이 없어서 그런 건데, 임신 후기는 고약하게도 불면증을 동반해 체력이 회복될 짬도 주지 않았다. 너무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아 새벽 3시까지 뒤척이다 겨우겨우 눈을 붙였다. 이 와중에도 9시에 출근은 해야 했고, 낮잠을 자면 혹여라도 밤에 못 잘까 싶어 꾸역꾸역 참다 보니 눈 밑은 점점 어두워졌다. 쌓인 피로 때문에 주말이면 정오가 되어서야 겨우 눈을 뜨고, 늦잠으로 망가진 생체리듬을 재정비하는데 다시 일주일이 걸리기 일쑤였다. 이러니 체력이 남아날 리가 없었다.


두 번째는 부쩍 커지는 배로 인한 소화불량이었다. 임신 중기 4달 동안 10센티정도 배가 늘었었는데, 후기에는 한 달 만에 6센티가 늘어났다. 덩달아 부쩍 커진 아가가 위장을 아주 꾸욱 꾸욱 눌러준 탓에, 저녁에 뭘 많이 먹으면 밤까지 소화가 안 돼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심지어 한 번은 오후 2시쯤 햄버거에 감자튀김을 먹고 새벽 1시까지 소화를 못했다. 11시간 동안 소화불량이라니. 위장이 워낙 튼튼해 그간 위장염 한번 겪어본 적 없었던 나였기에 이 일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조금 지나면 나아지겠지, 나아지겠지 하며 가슴을 두들겼는데 택도 없었다. 더부룩함이 가시질 않아 새벽까지 눕지도 못했고, 남편도 옆에서 덩달다 못 자고 계속 등을 두들겨야만 했다. 새벽 1시쯤 길고 긴 소화불량 끝에 침대에 몸을 뉘이면서, 앞으로 이런 밀가루 음식은 먹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그러고 나서 정말 신기하게도 밀가루 음식이 먹히질 않았다. 가끔 면 종류를 먹기는 했지만 평소에 비하면 정말 소량만 먹었고, 임신 중기 내내 달고 살았던 빵들도 사 먹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햄버거의 기억이 몸에도 단단히 각인된 모양이었다. 대신, 임신 전에는 입에도 안 대던 고구마를 엄청 먹어댔다. 우유에 군고구마가 어찌나 꿀맛이던지, 일주일 내내 아침저녁으로 고구마 1개에 우유로 식사를 해결했음에도 내일 먹을 고구마 생각에 설렐 정도였다.


덕분이었는지 몸무게도 생각보다 적게 늘었고, 상위 1% 정도로 크던 태아가 상위 25% 정도 수준으로 내려왔다. 저번 진찰 때 걱정하던 의사 선생님도 이번에 아가 배 둘레가 평균이랑 비슷해졌다며, 관리를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다. 인생사 새옹지마. 소화가 안 된다고 밤새 가슴을 치던 그날 밤 덕분에 몸도 아가도 더 건강해진 셈이었다.


(참고차 적자면, 군고구마는 당분이 많아서 당 조절이 필요하다면 피해야 하는 음식 중 하나다. 다만 나는 임신성 당뇨도 아니고, 어차피 소화불량으로 1개 이상 먹기 어려웠기에 그냥 맘 편히 먹었다.)


하긴, 저녁에 뭘 먹지를 못하니 살이 많이 찔 리가 없었다. 보통 후기에 몸무게가 많이 늘어나는 경우들이 많다는데, 아가가 위장을 눌러준 덕분에 그나마 덜 찌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진찰 이후에는 저녁에 소화가 안 돼 늦은 밤 산책을 나가게 되더라도, 아가가 건강한 엄마를 위해 신호를 주는 거라 정신승리를 하기로 했다. 우리 엄마가 자주 하던 정신승리 방법인데, 나도 엄마가 될 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이제 곧 36주 차에 접어든다. 한 달이 채 안 남았다. 배도 훅훅 커지고 아가도 덩달아 커져 서있기도 앉아있기도 누워있기도 불편하지만, 곧 끝날 거란 생각에 조금 설레기도 한다. 아가야, 엄마 배 눌러도 좋으니 우리 건강하게 지내다 건강하게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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