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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라 Apr 04. 2022

아기를 낳고 깨달은 것들 10가지

1. 아기들은 다 비슷하게 생긴 줄 알았다. 엄마가 되기 전의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아기를 낳고 보니 오밀조밀 그 작은 얼굴들이 하나도 비슷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심지어는 같이 임신했던 친구랑 초음파 사진을 비교하며, 어찌 초음파 사진부터 이렇게 다르냐며 웃었다. 재밌는 건, 임신 전의 나였으면 분명 이해하지 못했을 차이였다는 것이다.


2. 아기들은 성격이랄 게 없을 줄 알았다. 그래서 애들은 다 우리 딸 같은 줄 알았는데, 막상 비교해 보니 우리 애 같은 아기는 한 명도 없었다. 비슷한 분유에 비슷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는데도 서로 어찌나 다른지.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게 엄청나게 많다는 걸 하루하루 실감하는 나날이었다. 놀라운 유전자의 힘이다.


3. 닮지 않길 바라는 부분을 닮으면 실망할 줄 알았다. 나는 최소한 내 다크서클과 두꺼운 하체는 닮지 않길 바랐는데, 이를 어째, 우리 딸은 그 두 개를 닮고 말았다. 너무 미안하고 실망스러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전혀 반대의 기분이 들었다. 나의 가장 큰 콤플렉스를 빼닮은 딸이 너무 예쁜 탓에, 나의 콤플렉스에도 한결 관대해졌다.


4. 내가 애를 별로 안 좋아하면 어쩌나 했는데 진짜 괜한 걱정이었다. 내 새끼에 대한 애정은 단순히 '아기'를 좋아하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다. 나를 닮으면 나랑 닮아서, 안 닮으면 안 닮아서 예쁘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예쁘고, 눈 뜨고 일어나면 더 예쁘다.


5. 복직 시기는 선택인 줄 알았다. 아기가 너무 예쁘고 좋아서 회사에 늦게 복직하는 줄 알았다. 근데 아기가 너무 예뻐도 회사 압박 때문에 일찍 복직하기도 하고, 복직을 하고 싶어도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아기가 클 때까지 키우기도 한다. 그냥 어린이집에 보내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막상 키워보니 어린이집에 일찍 보내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고, 보내더라도 당장 복직은 쉽지 않긴 하겠더라. 복직 시기는 생각보다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아서 그걸로 일이나 자녀에 대한 열정을 왈가왈부할 수는 없겠다 싶었다.


7. 소아성애는 취향이 아니고 범죄다. 원래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지만, 아기를 낳으니 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소아에게 성욕을 품는 걸 단순히 변태로 취급한다는 건 너무 관대한 조치다. 성폭행을 하지 않았더라도 관련 매체를 보며 소아성애를 소비하는 시장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면, 범죄자 취급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8. 엄마가 되어보니 우리나라의 낮은 출생률이 너무 당연한 숫자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으로서 아기 낳고 직장 생활하는 건 참 쉽지 않다. 결혼 전에는 언제 결혼할지 몰라서, 결혼 후에는 언제 아기를 낳을지 몰라서, 아기를 낳은 후에는 아기가 우선일 테니까, 여성을 꺼리는 직장들이 여전히 많다. 실제로 나도 임신을 이유로 파트 이동을 당했고, 복직한 후에는 복직한 지 얼마 안 되었다며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떠맡다가, 결국 강제 발령까지 났다. 물론 임신과 출산이 모든 원인은 아니겠지만, 이게 원인 중 하나인 건 분명했다. 내가 아이를 낳고 이런 수모를 당하는 걸 내 후배가 봤다면, 그녀도 분명 아기 낳기가 싫어질 게 틀림없다.


9. 여성에게 육아와 가사의 책임을 지우는 건 결국 모두가 지는 게임이다. 지금은 육아휴직을 내더라도 여자가 내는 게 당연한 분위기고, 사회에서도 엄마와 아빠에게 기대하는 바가 아예 다르다. 엄마는 육아도 집안일도 잘 해내야 하고, 요즘 같은 맞벌이 시기엔 일도 잘해야 하지만, 아빠들은 일이나 열심히 하고 아기에게 하루 10분의 시간이라도 온전히 투자하란 충고를 듣는다. 이 구조에서 대체 누가 행복한가? 엄마는 하루를 견디기가 버겁고 아빠는 가정에서 소외되기 일쑤다. 이 둘 사이에서 자라는 아이가 어찌 행복할까? 여성이 모든 짐을 떠안아 나머지가 행복해진다는 건 일종의 환상이고 미신이고 신화다. 결국은 모두가 불행해지는 이런 방법 말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10. 엄마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 옳은 엄마라는 건 없고, 만약에 있다면 그건 행복한 엄마다. 그리고 행복한 엄마는 아기를 위해 무조건 희생하고 감내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살필 때 비로소 있을 수 있다. 행복한 엄마를 위해 필요한 건 엄마의 굳센 의지가 아니다. 엄마가 본인의 행복을 챙길 수 있도록, 그럴 짬이 나도록 가족 구성원의 도움과 사회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지금 만약 행복하지 않은 엄마가 있다면 마음껏 남 탓을 하며 자기 마음을 챙겼으면 좋겠다. 이미 온 세상이 엄마들에게 짐을 지우는데, 우리까지 우리에게 짐을 지우지 말자. 이정도면 충분하다고, 이미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격려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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