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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곰 Sep 16. 2023

[코츠월드 여행] 고즈넉한 마을

슬로터(Slaughters)

이번 포스팅이 코츠월드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이다. 이 이후에 코츠월드 근교에 있는 도시로 당일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 도시는 코츠월드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코츠월드 여행기로 포함시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코츠월드의 마지막 장소는 스토온더월드 근처에 있는 아주 작은 마을 슬로터(Slaughters)라는 곳이다. 마을이 워낙 작아서 포스팅이 그렇게 길어질 것 같지는 않다. 그럼 슬로터에서 있었던 우리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마을 이름이 왜 이래? 뭔가 흉흉한 느낌이야."


슬로터라는 마을은 우리가 구글맵에서 찾은 곳이다. 스토온더월드 근처에서 가볼만한 곳을 찾다가 이 마을을 발견했는데, 처음에 우리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마을 이름 때문이었다. 슬로터(Slaughter)라는 단어가 '학살', '도살' 등의 의미로 매우 부정적이면서 잔혹한 뜻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연히 마을 이름을 클릭했고, 사진을 보고 우리는 이곳을 가기로 결정했다. 사실(당연하게도) 이 마을의 이름은 지금 쓰이고 있는 단어의 뜻과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유래했다. 바로 '진흙밭'을 의미하는 고대 영어 단어인 'Slohtre'에서 유래하여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고 하는데, 실제 마을이 진흙밭은 아니다. 코츠월드 여행 사이트에서도 간혹 이곳을 추천하기도 하는데, 우리가 이전에 들렀던 버튼온더워터, 스토온더월드와 같은 마을에 비하면 그렇게 유명한 마을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곳을 들렀다 가기로 선택한 이유는 사진으로 보이는 마을이 너무 아름다우면서도 평화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슬로터 마을은 어퍼 슬로터(Upper Slaughter)와 로우어 슬로터(Lower Slaughter)로 나뉜다. 말 그대로 어퍼 슬로터는 위에 있는 마을이고, 로우어 슬로터는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이곳에 대한 정보를 찾아볼 때 사람들이 로우어 슬로터를 많이 찾는 반면, 어퍼 슬로터까지 가는 사람들을 그렇게 많지 않은 듯했다. 우리도 아래 마을만 둘러보고 갈까 하다가, 그래도 이왕 찾아가는 데 윗마을까지 둘러보기로 결정했다. 로우어 슬로터 마을을 지나 좁은 길을 5분 정도 더 운전해서 올라가면 어퍼 슬로터 마을이 나온다. 마을 가장 깊숙한 곳까지 찾아 들어간 우리는 빈 공간에 차를 대고 마을을 걸어다니기로 했다. 마을이 워낙 작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차 댈 곳을 찾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이 마을은 진짜 조용하네. 너무 좋다. 천천히 거닐다 가자."


우리가 먼저 도착한 어퍼 슬로터 마을은 정말 조용했다. 마을 자체가 워낙 작아서 사는 사람이 많지 않기도 했고, 이곳까지 찾아오는 여행객도 거의 없었다. 마을에서는 작은 개울이 흐르는 물소리와 주변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만 들릴 뿐, 사람들의 대화 소리나 자동차 소리는 거의 듣지 못했다. 이런 자연의 소리가 마을의 분위기를 더욱 고즈넉하게 만들었다. 여행객이 많이 찾는 마을 두 곳에서 사람들에게 한껏 치이고 난 후라, 이 마을에서 느껴지는 조용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우리는 이 곳에서 딱히 볼 게 없었음에도 마을을 천천히 거닐었다. 자연과 함께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되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마을 건물 사이를 지나기도 했고, 작은 개울 옆으로 난 좁은 오솔길을 따라 걷기도 했다. 마을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주택과 교회 한 두개만 있을 뿐, 다른 볼거리는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마을에 정이 갔고, 조금 더 머물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을 느려졌다. 번잡하고 이런저런 소음 가득한 공간에 있다가 자연의 소리만 들리는 곳으로 옮겨오다 보니 마을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더욱 극명하게 느껴졌다. 빠르게 한바퀴 돌면 10~15분이면 충분한 마을을 우리는 약 1시간 정도 머물렀다. 어디 상점에 들어가서 구경한 것도 아니고 그냥 마을을 정처없이 천천히 거닐면서 중간에 벤치에 앉아서 잠시 쉬었을 뿐인데 1시간이란 시간이 훌쩍 흘러버렸다. 마을의 분위기에 한동안 취해 있다가, 우리는 아래 마을인 로우어 슬로터로 가기 위해 다시 차에 올라탔다. 


우리는 차를 타고 아래 마을로 내려왔다. 아래 마을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이나 이 마을을 찾아온 여행객이 더러 있었지만, 마을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해칠 정도는 아니었다. 로우어 슬로터 마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중간에 펍이나 식당도 있었다. 마을 한복판을 흐르는 개울도 윗마을보다는 폭이 더 넓어서 물줄기를 바라보며 잠시 멍한 시간을 보내기도 좋았다. 다른 여느 마을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로우어 슬로터 마을을 천천히 산책하듯이 걸어다녔다. 이곳도 어퍼 슬로터처럼 마을이 크지 않아서 전체 다 둘러보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다만 영국 전통 가옥이 길에 늘어서 있고 그 사이로 잔잔하게 흐르는 개울의 모습이 너무 고즈넉하면서도 아름다워서, 그 풍경을 꽤 오랫동안 감상했다. 


우리는 슬로터 마을에서 힐링하는 시간을 보냈다. 앞서 들렀던 두 마을에서 사람에 치이고 좁은 길을 걸을 때는 오가는 차를 신경쓰면서 다니느라 알게모르게 받았던 스트레스가 조금 있었는데, 이 마을에서 그 스트레스를 모두 해소할 수 있었다. 너무 조용하면서도 자연이 함께 만들어내는 고즈넉한 분위기 덕분에 마음이 평온해졌고, 약간은 복잡했던 우리의 마음속을 차분하게 가라앉힐 수 있었다. 우리는 숙소에 가기 전까지 이 마을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냈다. 카페나 식당에 들어가지도 않고 마을의 분위기에 취해, 그리고 자연과 함께 소통하는 마음으로 마을 이곳저곳을 천천히 누볐다. 코츠월드를 여행할 계획이라면 슬로터 마을을 꼭 한 번 들러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시간의 여유가 부족하다면 로우어 슬로터 마을이라도 들러서 이 마을이 주는 평화롭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끽하기를 바란다.  



이렇게 슬로터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끝으로 코츠월드 여행기는 끝난다. 다녀온 지 1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여행기를 끝내서 다소 아쉽기는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이야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다음 포스팅에서 우리가 어떤 마을을 방문했는지, 어디에 머물렀는지 등 코츠월드 여행을 총 정리하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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