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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듣다.

by 방랑곰

나와 짝꿍은 도미니카공화국에서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한국에 도착한 날은 2023년의 마지막 날이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한국에 도착하면 새해 카운트다운을 보고 자자고 얘기했는데, 막상 집에 도착한 우리는 피곤함에 그 이야기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눈을 감았다가 뜨니까 2024년이 되어 있었고, 우리는 뒤늦게 새해를 축하했다. 그리고 나와 짝꿍의 인생에 가장 소중하고 고귀한 새해 선물을 받게 된 것에 너무나도 감사했다.


"오늘 병원 열었는데? 초음파 보러 가볼까?"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한국에서 병원을 가고 싶었는데, 이날은 새해 첫날이라 문을 연 병원이 없을 것 같아 포기하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리가 다니던 산부인과를 검색해 봤는데, 새해에도 오전에는 진료를 볼 수 있었다. 기쁜 마음에 우리는 얼른 옷을 갈아입고 병원으로 향했다.


집에서 병원까지 거리는 걸어서 불과 10분 남짓. 그 가까운 거리를 걸어가는데 설렘과 더불어 묘한 떨림이 우리의 몸을 덮쳤다. 병원에서 무슨 이야기를 들을지, 짝꿍 배 속에 있는 작은 점 하나가 장거리 비행을 잘 견뎌주었을지, 그리고 얼마나 커졌을지 모든 것이 궁금했다.


휴일이라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병원에는 기다리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덕분에 빠르게 진료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짝꿍은 진료용 침대에 누워서, 그리고 나는 그 옆에 앉아서 짝꿍의 배 안에 있는 점 하나를 보기 위해 기다렸다. 의사선생님이 초음파를 보여주셨고, 우리가 봤던 점은 아주 조금 커져있었다.


그리고 이날 우리는 그 점이 뛰는 소리를 들었다. 그 점 안에는 열심히 뛰고 있는 심장이 있었고, 그 심장 뛰는 소리가 초음파를 타고 우리 귀로 들어왔다. 화면에는 심장 박동의 그래프가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고, 그에 맞춰서 심장은 일정한 박자로 쉬지않고 꿈틀거리고 있었다.


처음으로 듣는 소리에 우리는 잠시 할 말을 잃었고, 이내 뭉클한 감동이 한가득 밀려왔다. 생애 처음으로 듣는 소리가 주는 감동은 생각보다 훨씬 거대해서 소리를 듣는 순간 작은 점 하나의 존재감이 매우 커졌다. 그리고 그 점 하나를 보며 막연하게 생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소리와 함께 생명의 실체가 비로소 생생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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