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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녀작가 Apr 02. 2024

곰탕

엄마작가

 국물이 뽀얗다. 오랜 시간 우려내는 중이다. 간간이 불을 약하게 하고는 기름을 걷어낸다. 이번엔 양이 많아 두 솥에 나누어 끓이고 있다. 처음엔 딸을 위해 우족만 사려고 했다. 막상 뼈를 보니 어깨와 목이 아파서 물리치료를 받는 아들이 생각났다. 이왕 하는 김에 많이 해서 아들딸 모두 먹이고 싶었다. 집에 도착하니 두 손이 부들거렸다. 손을 달랠 틈도 없이 바로 큰 통에 뼈를 담았다. 딸아이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곰탕이 생각났다. 예전에 어머니가 해준 것처럼 나도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딸아이를 가졌을 때 나는 입덧이 심했다. 시댁에서 살던 나는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가졌다. 시댁이라는 새로운 곳에 적응하기도 전에 아이를 가진 것이다. 새로 만난 식구도 낯설고 집도 낯설었다.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지내는 내가 문득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입덧은 나날이 더 심해졌다. 갑자기 모든 것에서 비릿한 냄새가 났다. 수돗물에서도 물비린내가 나고 설거지한 그릇에서도 냄새가 났다. 비린내를 맡고 나면 바로 구역질과 구토를 했다. 어떤 날은 눈 뜨면 바로 시작하여 잠들 때까지 그랬다. 그 와중에 나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음식물을 올릴 때마다 코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들어간 이물질을 빼내는 일은 정말 싫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힘들게 빼내고 나면 또 구역질이 났다. 뫼비우스띠처럼 계속 반복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코끝이 시큼하고 따갑다.


 그런데 밖에서 먹는 음식은 괜찮았다. 시댁이 아닌 식당이나 엄마가 해주는 음식은 잘 먹고 구역질도 나오질 않았다. 문제는 끼니때마다 식당에 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 큰언니 집이 옆 동네라서 출근하다시피 들락거렸다. 언니가 해주는 음식은 다 맛있었다. 어릴 때부터 먹던 익숙한 맛이고 속도 편했다. 언니 집에만 가면 입덧 걱정 없이 밥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 좋았다.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는 언니 집이 시댁보다 마음이 편했다.


 그런 나와는 달리 어머니는 편치가 않았나 보다. 사돈집에서 밥을 얻어먹는 며느리가 마음 쓰였는지 퇴근할 때마다 손에 뭔가를 들고 왔다. 식당에서 주방장을 할 정도로 음식솜씨가 좋은 어머니는 늦은 밤, 집에 오면 나를 위해 또 음식을 만들곤 했다. 속이 편안해진다는 안동식혜까지 해줬지만, 소용이 없었다. 애쓰는 어머니께 죄송해서 더 불편해졌다. 특히 붉은 색깔의 안동식혜는 입맛에 맞지 않았다. 포항이 고향인 나는 안동식혜가 있는지도 몰랐다, 배와 생강이 들어가서 새콤달콤한 안동식혜가 내 눈에는 생선과 무가 들어간 밥식혜로 보였다. 그것도 물에 말아놓은 이상한 밥식혜로 보여 먹을 수가 없었다. 보기만 해도 생선비린내가 나는 것 같았다. 안동식혜를 보고 머뭇거리는 내게 어머니는 마셔보라고 했다. 코를 막고 억지로 마셔보았다. 그다음에 일어난 일은 말하고 싶지 않다.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안동식혜는 먹지를 못한다. 아마 나였다면 서운해서라도 음식을 더는 하지 않을 것 같은데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다.


 하루는 양손에 큰 장바구니를 들고 어머니가 대문을 들어섰다. 방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부엌에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내가 부엌문을 열려고 하자 다급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바람처럼 날아왔다. 부엌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는 말이 나를 방으로 밀어냈다. 또 나를 위해 음식을 하는 것 같아 방에 있어도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아침이 되자 어머니는 밤새 끓인 것을 먹어보라고 했다. 국물이 뽀얀 곰탕이었다. 잠도 설치면서 끓여준 음식이라는 것을 알기에 어머니 앞에서 민망한 모습을 보여줄까 봐 걱정되었다. 긴장하면서 국물을 입에 댔다. 심심한 것 같아 소금을 조금 더 넣고 한술 더 떠먹었다. 뜨거운 국물과 함께 따뜻한 기운이 미끄럼을 타듯 아래로 내려갔다. 속이 따듯해지면서 편안했다. 신기하게 입덧도 하지 않았다.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나서 어머니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며느리를 위해 졸음을 털어내며 곰탕을 끓인 어머니, 아침이 되자마자 다시 곰탕을 끓였을 어머니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그렇게 끓여준 곰탕은 삼시 세끼 먹어도 맛있었다. 맑은 국물 덕분에 입덧도 사라지고 마음도 편해졌다. 곰탕을 다 먹을 때쯤 되자 시댁 식구들도 편해지고 집도 익숙해졌다.

 

 우족이 들어간 곰탕 덕분인지 딸아이 다리가 코끼리 다리처럼 튼튼해서 보는 사람마다 한 마디씩 했다. 임신했을 때 뭘 먹었냐고. 우족을 넣은 곰탕을 먹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임신했을 때 곰탕을 먹은 친구들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먹고 낳은 아이들이 하나같이 코끼리 다리라서 말한 나도 따라 한 친구도 깜짝 놀랐다.


 곰탕을 먹고 낳은 딸이 지금 아이를 가진 것이다. 딸도 나처럼 입덧이 심할 수가 있기에 마음이 바빠진다.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줄 따듯한 곰탕을 빨리 끓여서 갖다주고 싶다. 딸을 위해 곰탕을 끓여보니 어머니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딸도 아닌 며느리를 위해 밤낮으로 끓인 어머니의 마음을. 그때 어머니가 우려낸 것은 곰탕이 아닌 사랑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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