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녀작가 May 01. 2024

때맞춰 온 복덩이

딸작가

 별 기대감 없이 여느 때처럼 테스트기를 바라봤다. 헉, 두 줄, 임신이었다.

 사실 결혼하고 나서 임신은 내가 마음만 먹으면 되는 건 줄 알았다. 그래서 적당히 신혼생활을 즐기다 천천히 준비하면 되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준비를 시작하니 한 생명을 잉태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예전 신혼집 엘리베이터에는 여러 광고가 송출되었는데 그중 난임병원 광고도 있었다. 그때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해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 

 ‘설마 내가 저기 가는 일이 있겠어?’ 

 그런데 임신 준비를 시작하면서 나도 난임센터를 다니게 되었다. ‘난임’이라는 단어가 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정말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벼랑 끝의 부모들이 찾는 곳이라고만 생각했기에 나에 대한 실망감과 좌절감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가본 난임센터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꼭 시험관 시술이 아니더라도 나처럼 생리주기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다낭성증후군’이 있는 사람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20대에 나는 철이 없게도 ‘다낭성증후군’이 오히려 좋았다. 매달 해야 하는 아프고 불편한 생리를 가끔 건너뛸 때마다 이번 달은 공짜로 넘어간 것 같아 기쁘기까지 했다. 하지만 30대가 되어 임신을 준비하려니 내가 나의 가임기를 계산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처음 한두 달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견뎠다. 그런데 4개월쯤 지나자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호르몬과 대화라도 할 수 있다면 ‘이번 달은 확실하게 할 건지?’, ‘혹시 안 한다면 다음 달에 언제쯤 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결국 남편과의 상의 끝에 지역의 산부인과에 있는 난임센터를 찾았다. 


 센터에 들어서자 꽤 많은 사람이 있었다. 나처럼 임신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구나 싶어 위안을 얻었다. 의사 선생님은 여러 검사와 상담 이후 배란을 촉진하는 약과 주사를 처방해 주셨다. 약은 쉽게 먹을 수 있었지만 주사 공포증이 있는 나에게 스스로 배에 놓아야 하는 배란 주사는 공포 그 자체였다. 처음 간호사 선생님께 방법을 배우던 날 나는 벌벌 떨며 내 배에 주사를 놓고 식은땀을 엄청나게 흘렸다. 긴장이 풀리고는 어지러움이 몰려와 잠시 병원에 누워있어야 할 정도였다. 도저히 이걸 매일 내가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결국 남편이 내 전담 간호사가 되어 아침마다 주사를 놓아주었다. 매일 주사를 맞다 보니 이건 오래 할 게 못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임신이 되었으면 싶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다. 병원의 도움에도 임신이 되지 않자 정말 다음 단계인 시험관까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시간을 단축하려면 그 방법도 나쁘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한국인은 삼세판이라고, 다음 달까지 임신이 되지 않으면 진지하게 남편과 얘기해 봐야지 마음을 먹었다. 


 길을 가면 아기들이 눈에 띄었다. 예쁘다가도 나는 왜 쉽지 않을까? 속이 상하기도 했다. 점점 임신이 하나의 숙제가 되어버린 듯한 느낌에 내가 임신을 정말로 원하는지, 의구심도 들었다. 엄마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거의 반 포기 상태로 지내고 있을 무렵 회사에 친한 동료들과 1박 2일 여행을 가기로 했다. 오래간만에 기분 전환이라 꽤 설레었다. 임신 준비로 참아왔던 술도 오랜만에 실컷 마셔야지 마음먹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테스트기를 했는데, 맙소사 두 줄이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이 떨렸다. 항상 한 줄만 보다가 두 줄인 테스트기를 보니 믿어지지 않았다. 테스트기가 잘못된 건 아닌가 싶어 새로 하나를 더 까서 해보았다. 여전히 선명한 두 줄이었다.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임신했어.” 이 말을 뱉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수화기 너머 남편도 믿을 수 없는지 몇 번을 되물었다. 내가 상상했던 모습만큼 예쁘고 로맨틱한 순간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감격스러웠다. 잠옷 바람에 눈곱도 못 땐 채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거울 속에 나를 보자니 헛웃음도 났지만, 너무 행복했다. 이제 나도 드디어 엄마가 된다니!


 이번이 아니면 정말 진지하게 시험관 시술도 고민하던 나였기에 정말 때맞춰 온 복덩이가 따로 없다. 그래서 태명도 때복이로 지었다. 타이밍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맞춰서 와준 아기가 정말 고맙다. 열 달 동안 건강하게 품어서 만나야겠다고 다짐했다. 


 임신 20주를 막 지나가는 현재의 나는 여전히 엄마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입덧과 매일 사투를 벌이고 있으며 점점 불러오는 배가 꽤 무겁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임신하니 엄마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나 역시도 이런 사랑을 받으며 태어나서 자랐다고 생각하니 부모님께 더 잘해야겠다, 마음먹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 매미 소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