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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녀작가 May 21. 2024

3년째 초보운전

딸작가

 운전면허증을 딴 순간부터 내 차가 갖고 싶었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크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다. 잘 정비된 지하철과 버스 덕분에 어디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오늘 주차하기가 너무 어려워 차를 길어 버려두고 오고 싶었다.”라고 하소연하는 언니들을 볼 때마다 서울에서 자차는 오히려 짐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렇게 내 운전면허는 소위 말하는 장롱면허가 되었다.   

  

 그런데 결혼하고 지방인 순천으로 내려오게 되자 생각이 달라졌다. 지하철은 당연히 없을뿐더러 버스는 귀했다. 15분 이상 기다려야 하는 것은 물론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은 10분 거리인데 이곳저곳 들렀다 가니 30분은 족히 걸렸다. 비효율의 끝판왕이었다. 그러니 어디를 가고 싶으면 항상 남편이 태워다 주길 기다려야 하거나 택시비를 내며 다녀야 했다. 돈은 돈대로 아깝고 남편과 스케줄이 맞지 않으면 약속을 취소하거나 미뤄야 하는 상황이 싫었다. 외로운 타지살이에 내 맘대로 움직일 수도 없다고 생각하니 숨이 턱 막혀왔다. 그래서 내 차를 사야겠다 결심했다.      


 하지만 당시 내 지갑 사정은 여의찮았다. 결혼 준비로 모아두었던 돈을 거의 쓴 데다 직장을 그만둔 상태라 벌이도 없었다.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잘 만하면 중고 경차 한 대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계획을 호기롭게 남편에게 알려주었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남편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당장 차를 타고 출근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굳이 지금 무리하게 서두를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더욱이 차는 사는 것이 다가 아니라 유지비며 기름값이며 계속 돈이 들어갈 텐데 그것에 대한 계획은 준비가 되었냐고 되물었다. 남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내가 마치 철없는 어린애가 된 기분이었다.

  

 타지 생활에 우울감이 가득한 나에게 남편의 실망스러운 반응은 나를 더 서운하게 했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동차 이야기로 남편과 얼마나 자주 말다툼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별 진전이 없자 나는 계획을 바꿔 협상과 조르기 시작했다. 특히나 남편은 중고차에 대한 경험이 없어 거부감이 있는 듯했다. 돈을 더 모은 뒤 새 차를 사는 것을 권했기에 나는 돈을 빌려준다면 새 차를 사고 성악 수업을 좀 더 늘려서 갚아 나가겠다고 했다. 긴긴 설득의 날들이 계속되었고 결국 남편은 내 말에 넘어와 주었다. 나는 설득 내내 차가 생기면 일거리가 많이 들어올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말이 사실이 되길 바라면서 기쁘게 첫 차를 구매했다.


 그렇게 내 첫 차가 생겼다. 차가 다칠세라 여기저기에 보호 시트를 사서 붙이고 매일 같이 닦아주었다. 차를 가진다는 것은 만능 다리가 하나 더 생긴 듯한 기분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곳을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짜릿했다. 주차장에 세워놓고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새로 생긴 다리는 쉽게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장롱면허가 실전 면허 되기까지는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여기저기 부딪히고 긁히고 내 차는 그야말로 수난 시대였다. 그래도 다행히 경험이 쌓일수록 운전실력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늘 초행길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특히 고속도로를 탈 때면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된다. 이제 운전에 자신감이 붙었으니 초보운전 스티커를 떼야지, 생각하는 순간에는 꼭 사고가 난다. 지난번에는 비좁은 지하 주차장을 나오다 오른쪽 문짝 두 개를 완전히 박살 내 버렸다. 그 뒤로 나는 초보운전 스티커를 떼지 못한다. 차를 사자마자 붙여 두었던 스티커를 3년째 못 떼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지만 말이다. 그 스티커를 마치 나를 지켜주는 부적이라 생각하고 여전히 초보운전의 마음으로 다닌다. 나는 3년째 초보운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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