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난중일기에 곤장 친 기록은 23번 이상입니다. 곤장은 최소 10대부터 최대 100대까지 때렸습니다. 곤장 백대를 맞은 이는 장손이라는 사람인데, 도둑질을 한 죄로 곤장 백대를 맞고, 이마에 먹물로 도둑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었다고 합니다.
2. 이순신은 잘못이 있으면 누구라도 곤장을 쳐서 다스렸습니다. 곤장을 맞은 사람들 중에는 말먹이꾼, 이장의 아내, 어부, 종과 같은 민간인도 있었고, 병졸, 군관과 같은 지위가 낮은 자들 뿐만 아니라, 현감, 우후, 첨사, 만호와 같은 고급장교들과 지휘관들도 가차없이 곤장을 쳤습니다.
3. 이순신은 군령을 어긴 자들을 엄하게 다스렸습니다. 병선을 고치지 않은 자, 탐색을 게을리한 자, 적이 들어왔을 때 보고하지 않은 자, 도망친 자, 제멋대로 방어선을 넘어가서 고기잡이를 한 자, 배를 끌고 나갔다가 암초에 걸려 부서뜨린 자들은 여지없이 곤장을 맞았습니다.
4. 이순신은 부하들을 사랑했지만, 민폐를 끼치거나, 풍기문란한 자들은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동네 개를 잡아먹은 병사, 술병을 훔친 군관, 급료를 이중으로 받은 장수, 술을 먹고 망령을 부린 관료들은 잡아다가 부지런히 곤장을 쳤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곤장 때릴일이 아닌데 병사들에게 곤장을 때린 장교를 불러서 또 곤장을 때립니다. 잘못된 곤장은 곤장으로 바로 잡습니다.
5. 이순신도 항상 이성적일 수만은 없습니다. 원균 부하들을 붙잡아다가 곤장 70대를 때렸습니다. 이때는 명확한 죄목이 적혀있지 않고, 그들의 마음가짐이 매우 의심스러워 때렸다고 스스로 기록을 남겼습니다. 곤장 맞은 자 중에 죽은 자가 있다는 보고를 받고는, 장례를 치르라며 물건을 조금 보냈다는 기록도 남아있습니다.
6. 수만의 삼도수군을 통솔해야하는 이순신에게 곤장 때리는 일은 필요악이었을 겁니다. 신상필벌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누가 리더의 말을 따르겠습니까? 그래서인지 이순신은 난중일기에 곤장을 때린 일을 매우 꼼꼼히 적었습니다. 누구에게 어떤 이유로 몇 대를 때렸는지 적으며, 자신이 원칙에 따라 공명정대하게 일 했는지 뒤돌아 본 것은 아닐까요?
참고: 난중일기 속 곤장 때린 이야기
● 방답진의 병선 군관과 색리들이 병선을 고치지 않았기에 곤장을 때렸다.
● 성 밑에 사는 병졸 박몽세朴夢世는 석수장이인데 선생원에 쓸 돌 뜨는 데로 가서는 동네 개를 잡아먹는 등 민폐를 끼쳤으므로 곤장 80대를 때렸다.
● 아침에 탐색선이 들어왔는데 닷새 만이었다. 매우 잘못되었기에 곤장을 쳐서 보냈다.
● 저녁에 종 허산許山이 술병을 훔치다가 붙잡혀 왔기에 곤장을 쳤다.
● 군령을 내어 행수 군관行首軍官 정홍수鄭弘壽, 도훈도都訓導에게 군령으로 곤장 90대를 때렸다.
● 검모포 만호를 심문하였는데, 만호에게 곤장을 때리고 도훈도를 처형하였다.
● 경상 수사의 군관 고경운高景雲, 도훈도 그리고 대변색待變色, 영리營吏를 붙잡아 왔다. 지휘에 따르지 않고 적의 변란이 긴급하게 들어왔을 때 급히 보고하지 않은 죄로 곤장을 때렸다.
● 늦게 녹도 만호가 도망한 군사 여덟 명을 잡아 왔다. 그 가운데 우두머리 세 명을 처형하고 나머지는 곤장을 때렸다.
● 도양 말먹이꾼 박돌이朴乭伊의 죄를 다스렸다. 도적 세 명 가운데 장손張孫에게는 곤장 1백 대를 때리고 얼굴에 먹물로 도둑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었다.
● 견내량에서 제멋대로 방어선을 넘어가서 고기잡이를 한 사람 24명에게 곤장을 때렸다.
● 광양 현감의 공식 인사를 받은 뒤에 전령 날짜를 넘긴 죄로 곤장을 때렸다.
● 해남 현감과 공사례公私禮를 마친 뒤에 두 번이나 약속한 날짜를 어긴 하동 현감은 곤장 90대를 때리고, 해남 현감은 곤장 10대를 때렸다.
● 흥양 현감이 받아 끌고 간 배가 돌섬에 걸려 부서졌다고 보고하였다. 그래서 대장 최벽崔壁과 십선장十船將, 도훈도를 잡아다가 곤장을 때렸다.
● 광양의 김두검金斗劍 김헌이란 자가 복병으로 나갔을 때 순천과 광양 두 고을 수령으로부터 급료를 이중으로 받은 일 때문에 벌로써 수군으로 나왔는데 칼도 안 차고 활도 안 메고서 무척 거만을 떨었다. 그래서 곤장 70대를 때렸다.
● 추착推捉할 때 나타나지 않은 죄로 당포 만호에게 곤장을 때렸다.
● 늦게 우수사가 보고하기를 “이제 바람도 줄어들었고 계책을 세워야 할 때이므로 부하를 거느리고 급히 본도로 가겠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그 마음가짐이 매우 의심스러워 그의 군관과 도훈도를 붙잡아다가 곤장 70대를 때렸다.
● 늦게 해남 현감 유형柳珩과 임치도 처사 홍견洪堅, 목포 만호 방수경方守慶 등을 약속한 날짜를 어긴 죄로 곤장을 쳤다. 해남 현감만은 새로 부임한 까닭에 곤장을 때리지 않았다.
● 저녁 때 방답 첨사가 화낼 일도 아닌데 화를 내면서 지휘선에서 물 긷는 일을 하는 군사에게 곤장을 때렸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래서 방답의 군관과 이방을 붙잡아들여 군관은 20대, 이방은 50대의 곤장을 때렸다.
● 충청 우후 원유남元裕男에게는 곤장 40대를 때리고 당진 만호도 역시 같은 벌을 받았다.
● 김 조방장이 와서 노천기盧天起가 술을 먹고 망녕을 부리다가 본영 진무 황인수黃仁壽, 성복成卜 등에게 욕을 당하였다고 하므로 곤장 30대를 때렸다.
● 밥을 먹고 나가서 비인 현감 신경징申景澄에게 약속한 날짜에 오지 못한 죄를 물어 곤장 20대를 때리고, 순천의 격군을 감독하는 감관 조명趙銘의 죄에 대해서도 곤장을 쳤다.
● 곡포 권관 장후완蔣後琓이 교서에 절한 뒤에 평산포 만호를 불러서 왜 빨리 진에 도착하지 않았느냐고 문책하였다. 그런데 그 대답이 날짜를 정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50여 일을 물러나 있었다는 것이다. 해괴하기 짝이 없어서 오늘 곤장 30대를 때렸다.
● 왜인 난여문 등이 일러바친 이장耳匠의 아내를 잡아들여 곤장을 때렸다.
● 새벽에 순천의 종 윤복允福이 나타났기에 곧 곤장 50대를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