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게 좋더라
하루를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으로 쓴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때, 낮과 밤이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살던 적이 있었다. 낮이어야 할 이유가 없었고, 밤이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저 내가 눈을 뜨는 시간과 눈을 감는 시간이 있을 뿐이었다.
목적도, 방향도 없이 그저 흘려보내는 시간들 속에서 나름의 이유를 찾기 위해 애를 써봤지만 그건 이미 지나간 낭비에 오늘까지 낭비로 쓰는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배우라는 꿈을 가지고 있던 때에도, 포기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던 때에도 내게 다른 길을 가라고 얘기해 주던 친척이 있었다. 서울에서의 생활 마무리 겸, 같이 식사를 할 적에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물음을 내뱉은 적이 있었다.
'제가 지금 꿈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가는 건 누굴 위한 길인 건지 모르겠어요.'
그때 날 향해 웃으며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당연히 너를 위한 거지!'
지금 생각하면 맞는 말이다.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나의 미래가 두려웠으니까,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이 생활을 하루빨리 정산하고 싶은 마음이 컸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당시의 난 나를 위해 꿈을 포기하는 거라는 그 말이 참 듣기 싫었다.
이기적으로 나만을 생각했더라면 포기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지금은 결국엔 나를 위한 것이었다는 친척의 말이 정답이었음을 깨닫는다. 밤이 되면 늘 불안했던 그때와는 달리 적당한 불편감을 가진 채 잠들 수 있게 된 지금이 좋다.
예전엔 밤을 마주했을 때 늘 걱정이든, 불안이든, 우울이든 무언가의 불편함과 함께한다는 그 사실이 끔찍했는데, 살아있는 한 그 불편함을 완전히 없앨 순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지금의 내 상태에 감사함을 느낀다.
아마 각각의 이유로, 우린 늘 불편한 밤을 맞이할 것이다. 사람마다 그 정도와, 깊이는 다르겠지만 저 달이 빛나고 있는 시간만큼은 우리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러울 때니까.
그래서 최근 들어 해가 떠있는 시간대가 좋아졌다. 낮을 잘 보낼수록 밤에 찾아오는 불편감이 줄어든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암막커튼을 설치한 이후로 낮에도 종종 커튼을 내리곤 했었는데, 그때마다 아직 찾아오기엔 이른 약간의 불편감을 느끼곤 했다. 그걸 깨달은 뒤로는 해가 떠있는 시간대엔 최대한 해를 보려 노력하고 있다.
(물론 낮잠을 자거나, 아침에 일어날 땐 암막커튼이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는 요즘이다.)
밝은 게 좋다. 혼자 보는 바다는 밤보다 아침이 좋고,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 채운 낮을 보내고 난 뒤에 찾아오는 하루의 끝무렵이 좋다. 맑은 하늘에 떠있는 구름을 보는 것이 좋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기엔 아직 이른 때라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져서 좋다.
아무래도 난 어두운 것보단, 밝은 게 좋다.
나의 낮이 목적과 그 방향에 향해 있을수록 나의 밤은 평온해진다. 그리고 그제야 이 하루가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으로 가득 채워지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