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충분한 사람이길
이상한 데서 남들보다 무던하고, 이상한 데서 남들보다 예민하다.
나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사서 하고, 굳이 겪지 않아도 될 불안을 겪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날 보는 엄마의 한숨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간다. 엄마는 그런 나에게 늘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넌 참 유별나"
모든 것엔 일어난 이유가 있다는 내 나름대로의 신념은 이런 유별난 성격을 조금은 무던하게 만들어 준다. 정신건강에도 꽤나 좋기도 하고 말이다.
무언가 혹은 어떠한 상황이 나를 저 깊은 동굴로 들어가게 만들기 전에,
'그래 이 또한 일어난 이유가 있겠지' 라며 나의 강한 회피 성향을 애써 무시한 채 억지로라도 현실에 발을 붙이게 한다.
그럼에도 땅굴로 들어갈 때엔 늘 시작과 끝이 나의 자책이다. 모든 것은 나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별 거 아닌 일을 별 거 아닌 일로 생각하면 정말 별 거 아닌 일이 되지만, 별 거 아닌 일을 큰 일로 생각하면 정말 큰일이 되는 것처럼, 내가 나를 별로인 사람이라고 생각할수록 나는 점점 별로인 사람이 되어간다.
늘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지나간 과거와 바꿀 수 없는 것에 시간을 많이 쏟았고,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들이 넘쳤다.
그러나 과거는 그저 나의 성장을 위한 경험이 되어줄 뿐, 나라는 사람을 정의 내리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갈 날을 생각하면, 나를 정의 내리는 건 80년 뒤에 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매 순간 지금도 충분하다고 스스로 말하곤 한다. 맘처럼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그럼에도 노력하고 있다.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이, 앞으로 노력하지 않겠다는 얘기가 아니다. 누구나 오늘을 살면서 수많은 문제에 부딪히고 깨질 텐데 그럴 때마다 매 순간 무너지면 내가 발을 디딜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발 디딜 곳은 내가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우리가 해야 할 노력인 것 같다. 내가 무너지지 않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기에.
누군가는 사랑을 통해, 누군가는 독서를 통해, 누군가는 좋아하는 일을 통해 모두가 각각의 방식으로 각자의 자리를 지켜내고 있다. 온전히 서 있을 수 있는 자리에서 앉을 수 있는 자리까지 넓히고, 누울 수 있는 자리까지 넓히다 보면 결국 인생을 잘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무너지고 또 무너져서, 겨우 내가 서 있을 수밖에 없는 때가 오더라도, 내가 온전히 서있을 수 있음에 충분한 사람이라면 그 또한 무너진 것이 절대 아닐 것이다. 그저, 다시 넓히기까지 사랑을 하고, 책을 읽고, 웃을 시간이 여전히 우리에게 주어진 것일 뿐이다.
난 아직 방법을 찾고 있는 중에 있다. 사랑을 하고, 위로를 받고, 웃는 시간이 늘어나면서도 가끔씩 찾아오는 어둠에 헤어 나오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나를 어둠 속에서 꺼내주는 사람이 존재하고, 내가 디딜 곳을 넓혀주는 이가 존재하기에,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충분하다 말하는 것은 언제나 본인의 기준이다. 아직 충분하다 말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땐 자책보단 방법을 찾고,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예전엔 무너짐이었던 것이, 오늘엔 무너짐이 아닌 게 되어있는 날이 찾아올 거라고 생각한다.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는 온전히 나의 몫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