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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 은 Jun 23. 2024

비가 오는 날,

우산 쓰고 걷는 길

그날도 어김없이 알바를 하러 가던 날이었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졌고, 우산을 쓰는 것이 아무 소용없다고 느껴지는 날씨였다. 비바람을 뚫고 도착한 곳이 콩국수집이라니 참담한 심정이었다. 


2개월 정도 짧게 일했던 콩국수집은 유명한 곳이었고, 쏟아지는 비를 뚫고 도착한 나를 맞이한 건 주차장에 꽉 들어선 차들이었다. 당장이라도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으나 깊게 들이내 쉰 숨을 용기 삼아 눈 질끈 감고 식당으로 들어섰다.


바닥은 미끄러웠고, '분주히 움직이는 직원들'이란 문장에 곧 나도 포함되었다. 정신없이 울리는 호출벨 소리에 이리 뛰고 저리 뛰다 보면 비가 오고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그저 퇴근 시간이 다가오기만을 빌게 된다. 


그러나 막상 마감할 시간이 다가오고 창 밖으로 어두워진 하늘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허무함도 늘 들었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를 타면 오늘도 분주히 움직인 사람들의 흔적이 가득 담긴 빗물 가득한 발자국들이 그 안을 가득 메꾸고 있다. 때론 그 별 거 아닌 흔적들이 괜한 위로가 되기도 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대충 접어 버스 바닥에 던지곤 창밖만 바라본다. 시답잖은 생각들을 하다 보면 어느새 내려야 할 곳이 되어 젖은 우산을 주섬주섬 챙겨본다. 혹여라도 미끄러질세라 조심스레 발을 딛고 버스에서 내린다. 


집으로 걸어가면서도 내 펼쳐진 우산 위로 떨어지는 조각난 빗줄기들은 멈출 생각이 없다. 그럼 난 또, 빗속에 파묻힌 긴 한숨을 내뱉곤 한다. 또다시 반복될 내일의 몫까지 합쳐서,


여전히 비가 오는 날엔 밖을 잘 나가지 않는다. 우산을 쓰고 돌아다니는 건 귀찮고, 옷이 젖는 것도, 찝찝함도 습함도 싫다. 비가 오는 날 좋은 건 집 안에서 듣는 빗소리밖에 없었다.


그러나 때론 세차게 내리는 비가 소중한 사람과의 시간을 더욱 온전한 것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온종일 내리는 비가 주는 찝찝함보단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가 내겐 더 중요했고, 쏟아지는 빗줄기에 가려진 풍경보다 그 사람과 맞닿는 시선이 내게 더 소중했기에 날씨는 더 이상 내게 있어서 무관해졌다.


날씨는 흘러가는 시간을 채워주는 것들 중 하나인 것 같다. 비가 오는 덕분에 볼 수 있는 풍경이 있었고, 맑은 하늘 덕분에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이미 오늘은 시작되었고, 무언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없는 상황이라면, 내가 바라볼 수 없는 것보다, 지금 바라볼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오늘을 더욱 잘 보내는 일이 아닐까 싶다.


날씨는 실제로 기분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에도 행복하세요! 같은 말은 감히 내뱉을 수 없겠지만 때론 비가 와준 덕분에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는 사실은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때론 날씨가 나의 오늘에 영향을 끼치겠지만 생각해 보면 날씨와는 무관하게 나의 오늘에 영향을 끼친 수많은 것들은 늘 존재했을 것이다. 맑은 날에도, 선선한 가을날에도, 눈이 오는 날에도, 더운 날에도, 비가 오는 날에도 말이다. 


그러니 가끔, 아주 가끔은 날씨로 인해 포기할만한 일을 한 번쯤은 하러 나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중에 어쩌면 젖게 되는 신발로 후회가 밀려올 수도 있다. 

그럼에도 고개를 들어 바라본 곳엔 생각지도 못한 풍경이 펼쳐져 있을지도 모른다.



날씨가 전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할 순 없겠지만,


때론 날씨가 어떻든 아무래도 상관없는 날도 존재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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