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꼭 해내야만 하는 중요한 일이 생기면 항상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또 실패하면 어떡하지'
내 기억 속에 있는 경험들은 늘 불안으로 가득했던 것 같다.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 번씩은 거쳐가는 그런 과정들을 나도 똑같이 겪었고, 어떻게 보면 성공하진 못했던 과정들이 내 기억 속에 크게 자리 잡았다.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걱정하는 습관도 여기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내가 해내는 일들을 잘 믿지 못한다. 왜인지 같은 일을 하더라도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성공할 것 같은데, 나만큼은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작은 확신이 있다.
이런 좋지 않은 확신은, 때론 나에 대한 기대감을 낮춰주어 눈앞의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스스로에게 크게 실망하지 않게 된다. 그럴 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남들이 나에게 어떠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을 땐 덜컥 겁이 나곤 한다. '난 그걸 해내지 못하는 사람인데, 결과가 안 좋아서 나한테 실망하면 어쩌지, 내가 해내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등과 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곤 한다. 그게 두려워서 난 항상 남들에게 나에 대한 기대감을 낮추는 말들을 내뱉는다.
가끔은 해내야만 하는 '그 일' 때문이 아니라, 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드는 그 '생각'들이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내가 누군가를 실망시키는 걸 두려워한다는 걸 알게 된 건 연기학원을 다닐 때부터였다.
학원을 다니면서 칭찬을 받는 일이 잦아지던 때가 있었다. 선생님께선 과분할 정도로 내게 칭찬을 해주셨고, 그 칭찬에 힘입어 연습을 더욱 열심히 하곤 했다. 인정받았다는 그 기분이 좋아서, 다음에 할 땐 더 잘해야지 같은 생각들로 늘 가득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선생님께 크게 혼난 적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칭찬이 익숙해졌고, 조금씩 연습이 게을러졌을 때 '이 정도면 충분하지'라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게 연기에서도 보였는지 선생님은 실망한 모습으로 나를 꾸짖으셨다.
그 모습에 후회와 죄책감이 몰려왔고 그 무엇보다 선생님을 실망시켜 드렸다는 사실이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도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거나 결과가 좋지 않을 때, 그 사실보단 그로 인해 누군가가 나에게 실망했을 거라는 그 생각이 가장 두려웠던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잘못된 두려움이다.
내가 정말 두려워해야 하는 건 남들의 시선이 아니라, 내 인생을 위한 결과여야만 했다. 처음엔 나의 결과를 위한 과정들에 누군가는 위로를, 누군가는 동정을 해주겠지만 나의 경험은 그들에게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잊힐 기억일 뿐이다. 그런 이들의 시선에 나라는 사람이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 늘 나 자신을 낮추는 말들을 남에게 하고 다니다 보니, 정말 주변 사람들로부터 기대감 낮은 사람이 되어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내뱉는 말이 곧 나를 설명해 준다는 말의 의미를 그때서야 좀 더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내가 내뱉는 말과 행동이 곧 나를 뜻한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내가 만족하면 그것으로 된 거고, 내가 만족하지 못했다면 다음에 더 잘하면 되는 거고, 남들이 실망했다 하더라도 실망하면 또 어떤가 그게 내 인생에 중요한 건 아니지 않은가.
실패가 많은 순간들이었다 말하긴 해도 돌이켜보면 결국엔 그 모든 것들을 잘 이겨내 지금이 되었다. 어떻게든 시간이 흐르는 대로 삶은 흐르게 되어 있는 것 같다. 수많은 결과들에 좌절하기도 하고, 걱정하기도 하고, 무너져내리기도 하겠지만,
결국엔 그럼에도 잘 살고 있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당신이 지금의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임은 분명하다.
미래의 내가 모든 순간들을 지나온 지금의 나에게 수고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이라면, 충분히 잘 살고 있는 삶이 아닐까 싶다.
실패할까 두려운 마음이 커질 때마다
결국에 중요한 건,
이러나저러나, 과거의 수많은 결과들을 툭툭 털고 잘 이겨내 지금까지 온 내가 있는 것처럼,
지금 걱정하고 있는 일도 결국엔 생각했던 것보다 잘 흘러갈 것이다.
잘 살고 있는 내가 있는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