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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라 Oct 15. 2024

캘리그래피(멋글씨)와의 첫 만남

“보라야, 네가 서기를 하렴. 우리 반 회의록은 앞으로 네가 작성하는 거야. “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사각 노트에 정성스레 글씨를 쌌다. 책에 있는 모양 그대로 글씨를 써오라는, 선생님의, 어찌 보면 초등학교 저학년에겐 다소 가혹한, 주문을 순수한 마음에 곧이 그대로 받들어 쓴 것이다. 정성스레 해 간 숙제는 선생님 눈에 들어왔고, 나는 그렇게 서기가 되어 남은 해 회의록을 어설픈 명조체로 기득 채워나갔다.


완벽하진 않지만 언뜻 활자처럼 보이던 내 기억 속 첫 멋글씨다.


캘리그래피, 우리말로 멋글씨는 아름답게 글씨를 쓰는 기술이라고도 한다. 좁게는 붓으로 쓰는 서예나 만년필로 쓴 고딕 혹은 이탤릭 체에서 넓게는 나뭇가지니 파뿌리로 쓴 글씨까지 그 범위는 다양하다.


캘리그래피라는 개념이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되고 난 후에야 나는 회사 옆자리 디자이너님의 추천을 받아 캘리그래피를 본격적으로 접하게 되었다. 하지만 위에 정의했듯 넓디넓은 캘리그래피라는 개념 속에서 글씨와의 첫 만남을 생각해 보니, 그 운명적인 만남은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 1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글씨 숙제를 하던 순간이었다.


요즘의 초등학생들은 학교에서 캘리그래피를 배운다고 하니, 같은 10살 이어도 글씨에 대한 첫 기억에 나의 것과는 매우 다를 것 같다. 어떤 모습이던 좋다. 모두에게는 각자 글씨와의 운명적인 만남이 분명 존재하리라. 숙제를 잘 해와 서기가 되었던 10살의 보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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