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머로우 2021년 4월호 | SPECIALp.72-77을읽고
이종열 님의 자전 인터뷰를 읽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오로지 한 사람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바로 나의 아빠.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은 네모 반듯한 표가 무수히 그려진 종이를 나눠주며 부모님께 묻고 답변을 적어오라 하셨다. '이런 걸 왜 묻지?'라는 의심도 갖지 않던 착한 나는 그것이 숙제 비슷한 거라 생각했고, 굳이 부모님께 묻고 내가 적을 필요가 있나 싶어 엄마에게 "이거 써줘" 라며 종이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놀이터에 놀러 나가기 바빴다.
그렇게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놀고 집에 돌아와 밥 냄새를 맡으러 부엌의 엄마 옆에 다가가면 "식탁 위에 가져가~"라고 했다. 그러면 나는 잽싸게 항목이 다 채워져 있는지만 확인한 후(특히 싸인) 반을 곱게 접어 가방에 넣었다. 밥을 하다 물에 젖은 손으로 적었는지 종이가 약간 울어있으면 "아! 젖었잖아!"라고 짜증을 내면서.
다음 날, 학교에 종이를 제출할 때서야 '엄마가 숙제를 잘했는지'를 살펴보았다. 일종의 가구 조사 같은 것이었는데 아버지의 직업, 어머니의 직업, 가계 평균 소득('가게'를 잘못 썼다며 킥킥거렸던), 자가 소유 여부('자가용'에서 '용'이 빠졌다며 킥킥거렸던) 등을 묻는 항목이었다. 지금은 학교에서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묻지도 않지만 그때는 담임교사가 학생의 환경을 파악하기 위해 당연시되는 선택적 절차였던 것 같다.
아버지의 직업란에는 '자영업' 또는 '피아노 대리점'이라고 쓰여있고 어머니의 직업란에는 '〃(중복 기호)'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아버지, 어머니가 '무슨 일'을 하는지, '가구조사'의 '가구'가 침대, 장롱의 그 가구가 아니라는 걸 인식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쯤부터는 스스로 적어냈다.
'조율'이란 단어는 어렸을 때부터 내게 굉장히 친숙한 단어였다. 중학교에서 5분도 되지 않는 거리에 위치한 부모님의 피아노 가게 유리 전면에는 '조율·운반·수리·매매' 스티커 코팅이 대문짝만 하게 붙어 있었다. 토요일 4교시를 마친 후 점심을 먹으러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빠는 항상 같은 건반을 수 차례 '띵, 띵, 띵' 눌러보며 어딘가 집중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그게 아빠의 주 업무인 '조율'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투머로우 4월호 '조율의 명장, 이종열' 글을 읽으며
난 단 한 번도 아빠가 왜 이 일을 하게 되었을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일을 하는지, 내가 그 당시 대학에 잘 가기 위해 공부를 했던 것처럼 아빠도 조율을 하며 이루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지, 아빠의 업(業)에 관해 궁금해하지 조차 않았단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난 어쩌다가 30년이 다 되도록 아빠에 대해서 궁금해하지 않게 되었을까?
어렸을 때는 궁금하기라도 했었나?
하루에도 수번의 퇴사를 고민한다는 직장인(나)들의 흔한 고민과 견주어 볼 때, 아빠는 정말 끈질기게도 한 길만을 걸어온 사람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지 궁금했다. 아빠란 사람이, 자신의 일을 사랑한 조율사로서의 삶이 궁금해진 것이다.
나도 평생 동안 아빠에게 이런 인터뷰를 해볼 수 있을까?
꼭 글로 남기지 않더라도 녹음이라도 할 수 있다면...
생각만 해도 어색하고 이야기가 산으로 갈게 뻔한 이 의식의 흐름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까 싶었지만 바로 지금이 아니면 아니면 못할 것 같다. 펜을 들어보자. 아빠에게 나는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
(이 글의 연재 여부조차 난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