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형 형사 Jan 29. 2021

누가 먼저 쓰러지느냐

국민에게 사랑받는 경찰을 꿈꾸다...

 

누가 먼저 쓰러지느냐
 
"○○○에게서 문자가 왔었어요. 자기가 나를 불었으니까, 곧 형사들이 들이닥칠지 모르니 피하라구요"

몇 년 전 일반인들에게 필로폰을 판매한 마약 판매책을 1년이 넘도록 쫓았었습니다.

마약을 투약한 남자는 초범이었는데 제게 조사를 받을 때 선처를 바라면서 자신에게 마약을 건네준 판매책의 이름을 진술했습니다.
 

 
점조직으로 철저히 상하관계를 숨긴 채 활동하는 마약조직의 밀행성을 감안할 때 상선인 판매책의 이름이 투약인에게 그리 쉽게 나온 건 이례적이었습니다.

문제는 저에게 얘기를 하기 전에 판매책에게 오늘 경찰서에 가서 다 불 테니 도피하라고 먼저 알려주었다는 데 있었습니다. 투약자에게 왜 판매책에게 알려주었냐고 물어보니, 보복이 두려워서 자기도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판매책은 연락을 받은 날부터 은신처를 옮기고 타고 다니던 차를 시작으로 휴대폰, 신용카드 등등 사그리 다 바뀐 게 며칠 지나지 않아서 확인되었습니다. 그와 형 동생 하는 지인은 판매책이 '내가 경찰 머리 위에서 노는 사람이야, 그 짜식들은 절대 나 못 잡아'라는 말을 종종 했다고 했습니다.
 

 

탐문수사

 

 
수사착수 순간부터 저는 판매책이 누군지를 알고 추적을 시작하고, 판매책은 제가 자신을 쫓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도피를 시작한 케이스였습니다.

하지만 둘의 시작이 같다는 것은 추적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의미였고, 저에게는 상당히 불리한 상황이었습니다.

막연히 내가 저지른 범죄가 경찰에 발각되었을 가능성이 있어서 경찰이 나를 쫓을 수도 있다는 것과, 발각된 것이 확실하고 어느 경찰서의 어느 부서에서 나를 쫓고 있다는 것을 알고 도피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서,

판매책은 다른 부서도 아닌 강력팀에서 자신을 쫓고 있는 것을 알고 아예 작정을 하고 도피를 했기 때문입니다.
 

 
마약 사건뿐 아니라 폭력 죄종의 여러 사건으로 교도소를 들락날락거린 판매책은 어떻게 하면 경찰의 추적을 피하는지 저에게 보란 듯이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내가 너보다 한수 위야, 숨는 데는 자신 있거든, 그러니 한번 찾아봐'라고 하는 조롱처럼 느껴졌습니다.

다각도로... 정말 다방면으로 녀석이 흘린 단서를 찾으려고 온갖 노력을 했지만, 쉽사리 꼬리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녀석을 쫓았을 때가 악몽을 가장 많이 꿨었던 거 같고, 아내는 "당신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거 보니까, 그 아저씨 진짜 프로네"라고 하면서 아내는 지금도 그 판매책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6개월간의 끈질긴 추적 끝에 녀석이 제3금융권... 그러니까 캐피탈보다 이율이 더 센 소규모의 대부업체에 대출금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대부업체 건달들을 통해 녀석의 애인의 집을 찾아낼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프로였는지 저희가 녀석의 애인 집 주변에서 잠복에 들어갔을 때, 그렇게 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귀신처럼 저희의 잠복을 눈치채고는... 이번에는 애인까지도 버리고 다시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저희가 반년의 공을 들여 힘들게 찾은 추적 단서는 단 한순간에 소실되었고, 5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당직근무 때마다 계속해서 사건이 들어오기 때문에 녀석의 사건에만 집중할 처지가 못되었을뿐더러, 1명의 범인을 쫒는데 반년이 넘어가자 저희 수사팀도 지쳐가기 시작했습니다.
 


수사기간이 1년이 넘어가자 같은 팀 동료들마저도, 모두가 힘드니까 이제 그만 수사를 중단하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떻겠냐고 얘기를 할 정도였습니다.

저는 선배님들에게는 누가 될까 봐, 일단은 그렇게 하겠다고 얘기를 해놓고... 반대로는 추적에 더욱 열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18개월 하고도 며칠이 지난날... 저도 생전 처음 듣는 북한에서 가장 가까운 동네라는, 38선 바로 아래 동네의 어느 허름한 원룸텔에서 녀석을 체포할 수 있었습니다.

구속을 코앞에 둔 판매책은 제게 조사를 받을 때, 신문 3회인 마지막 조사가 끝나갈 때즘에 "젊으신 분이... 형사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동안 힘들게 해서 미안합니다"라며 씁쓸한 내심의 한마디를 건넸습니다.

 

 

죽을힘을 다해 도피 중인 단 1명의 피의자를, 죽을 힘들 다해 추적한 1년 반 동안의 기록을 얼마 후에 '추적수사기법'으로 정리하여 전국의 수사관들과 공유를 하였습니다.

  

  

형사기동대 차량안에서

 

 

제가 영화 '용의자X'의 시나리오를 감수했었다고 얘기를 해 드렸는데요. 영화를 보시면 '민범 형사'역의 조진웅 배우님께서 범인의 중요 단서를 발견한 후에 후배 형사에게 이렇게 하는 대사가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나와 범인 둘 중에, 누가 먼저 쓰러지느냐... 그 싸움이거든"






국민에게 사랑받는 경찰을 꿈꾸다^^



이전 10화 용의자X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