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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dolf Aug 02. 2023

밤하늘 아래, 어두운 땅 위. . .

- 그리고 정신 사나운 이상한 글…….

1     


도심 한가운데, 한 인간이 서 있었다. 밤. 자정이 훨씬 지나 차량통행은 줄어들었지만, 그 대신 제한속도를 무시하고 무지막지하게 달리는 자동차들 때문에 거리는 오히려 폭주 차량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음으로 가득했다. 게다가 여기저기에서 마구 울려대는 요란한 클랙슨 소리.

    이곳은 신도시 공사가 한창인 화장시 바로 옆의 구시가지. 하지만 그 거리는 이 인근에서는 가장 붐비는 곳인데다 고개만 넘으면 곧바로 고속도로로 빠지기 때문에 늘 사람과 차량으로 북적이는 지역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곳이 일종의 해방구 같은 곳이어서 해만 저물면 어디에선가 놈팡이 좀팽이 암팡이들이 마구 몰려든다는 것이다. 한때는 이 일대를 조폭들이 장악했었다고 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말았다. 아무도 그 원인을 정확히 말하지는 못하지만, 들리는 말에 의하면 한 남자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한 남자? 누구? 글쎄, 바로 그 남자 때문에 이 글이 시작되었으니까 잠시 기다리시면 저절로 알게 되지 않을지…….

    어떻든 한밤중에 자동차들이 마구마구 달려가는 도로 한복판에서 마치 밤 도시의 수호자라도 되는 듯이 서 있는 남자. 사방에서 요란한 자동차 굉음과 경적이 울려 퍼지는데도 남자는 꿈쩍도 않고 서 있다. 게다가 남자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두 손은 바지주머니에 넣은 채.

    하늘은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서 별이나 달은 보이지 않았다. 검은 하늘. 도심의 불빛들로 인해 시커멓게 내려앉은 구름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검은 구름 사이에서는 간간이 번쩍이며 번개가 치면서 우르릉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남자 주위는 마치 무채색을 칠해 놓은 듯 도시의 밤 한가운데에서도 어딘지 불투명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남자가 검은 선글라스라도 끼고 있었으면 영화장면처럼 느껴졌을 텐데, 새카만 양복에 흰 와이셔츠, 그리고 검은 넥타이까지는 흔히 기대하는 암흑세계의 영화 주인공답긴 했어도 어딘지 현실세계와는 동떨어진 듯 이질감이 감도는 모습이었다. 혹 하늘에서 빛의 기둥이라도 쏟아져 내린다면 오히려 더 어울릴 듯한 초현실의 SF적인 장면.  

    그때 갑자기 어디에선가 오토바이가 급하게 달려오는 소리가 났다. 그것도 한두 대가 아니고 떼로 질주해 오는 굉음. 그렇잖아도 시끄러운 밤거리 밤하늘을 온통 난장판을 만들어 버리듯 요란한 소음. 마치 어둠의 장막 하늘을 찢어버릴 듯한 기세.

    오토바이 무리들이 남자 쪽으로 달려오더니 그 주위를 빙빙 돈다. 주변을 지나는 자동차들이 더욱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리며 미끄러지듯 오토바이들을 피해 달려간다. 그리고 또다시 요란한 경적소리. 여기저기에서 그에 동참하듯 귀를 찢는 경적이 마구마구 울려퍼진다. 그러나 오토바이들은 그에 상관없이 계속 남자 주변을 돌고 있었다.

    남자가 하늘을 쳐다보던 고개를 내리고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자 오토바이 남자들이 갑자기 환성을 지르는 것이다. 요란한 오토바이 트럼펫 경적소리와 함께.

    잠시 뒤 남자는 오토바이 한 대의 뒤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오토바이들은 모두 시끄러운 경적소리와 엔진소리를 울리며 고속도로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부앙, 부앙, 부아아아앙~!      



2     


오토바이 떼는 고속도로에 올라 왕복 8차선을 몽땅 점령한 채 서쪽으로 내달렸다. 고속도로에서 달려오고 달려가던 차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가면서. 그래서 이번에도 여기저기에서 경적 소리가 요란하고, 급브레이크 밟는 찢어지는 듯한 소리는 물론이고 차창 열고 고함치는 욕설 등이 뒤엉키며 고속도로의 하늘을 울리고 있었다.

    이들 폭주족들은 주변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밤하늘을 굉음으로 찢어놓으며 그냥 내달렸다. 유쾌 통쾌 상쾌 번쾌 멍쾌를 맛보면서.

    이들이 돌진해 감에 따라 밤은 압박을 받아 더욱 더 짙어지면서 완전 암흑으로 변해 가는 한편, 이들을 마주 보고 달려오는 차량들의 비명과 같은 급정거와 찢어지는 클랙슨 소리는 마치 베토벤 운명교향곡의 피날레처럼 ‘빠라바라밤 우둥둥둥 짜자장 쭈앙~!’ 하고 합주하며 울려퍼지는 것이다. 30분도 넘게 연주되는 그 웅장한 운명교향곡. 그와 동시에 ‘pocht das Schicksal an die Pforte (운명이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영혼까지 울려대는 초입 부분의 그 장엄한 서곡이 오버랩되며 함께 밤하늘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별 하나 없는 새카만 하늘 장막이 덮인 음산한 밤을.

    이들 폭주 오토바이들은 화들짝 놀란 한 톨게이트를 쏜살같이 지나 지방도로 들어서서 네 줄로 나란히 달려가기 시작했다. 역시 이번에도 왕복 4차선 도로를 완벽하게 장악하고서. 그리고 잠시 뒤 포장도로에서 벗어나 거친 들판으로 향하더니 암흑 속에서 불뚝 솟아오른 듯 나타난 시커멓고 웅장한 돌산을 향해 내달렸다. 그러자 곧이어 느닷없이 입을 벌리고 있는 ‘아가리’가 나타났다. 그 단어밖에는 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은 시커멓고 음산한 동굴 입구, 즉 죽음의 아가리 같은 어둠 속으로 거침없이 달려 들어가는 것이었다.        


3     

 

다음날 새벽, 그 바위 아가리에서는 아직 새벽빛이 여미기도 전에 오토바이들이 굉음을 울리며 연속으로 튀어나왔다. 이들은 이번에는 일렬로 늘어서서 새벽이슬 머금은 벌판을 지나 지방도로 들어가서 다시 고속도로 속으로 질주해 들어갔다. 그리고 동쪽으로 동쪽으로, 똥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인간들이 퍼질러 싸놓은 똥 속으로.

    사실 이들은 평범한 폭주족이 아니었다. 도시고 시골이고 숲이고 가릴 것 없이 오토바이로 내달리지만 이들은 어떤 것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는 중이었다. 아가리. 그렇다. 바로 아가리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아가리쿠스 아가리울루스 아가리티 아가리움. 이름이 좀 길지만 그깟 것 어떠랴. 아가리 사형제를 한꺼번에 말한 것이니까. 이들 네 아가리는 한 몸뚱이를 지니고 있으며 머리만 달랐다. 즉 한 몸뚱이에 네 아가리가 달린 것이다. 이들의 이름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이러하다.

    거짓, 사기, 기만, 음모.      



4     


그러니까 한 20년 전쯤 되려나. 한 정치인과 또 한 종교인, 그리고 한 사업가와 또 한 법조인, 즉 판사가 있었다. 한 도시에. 게다가 한 아파트에. 그 당시에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었던 맨해튼 스타일의 최첨단 아파트. 펜트하우스라 불리는 그 아파트 꼭대기의 네 가구에 각각 살고 있는 그들은 출신 학교나 지역, 성격 등은 모두가 상이하게 달랐으나 나이만은 똑같았다. 그 덕에 펜트4형제라고 스스로들을 부르며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20여 년 뒤 그 네 사람은 모두 한 국가의 거인이 되었다. 거짓, 사기, 기만, 음모의 거인.

    ‘정치인’은 여야를 통틀어서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가 되었으며, ‘종교인’은 신도 몇 백만 명이 넘는 교단의 최고지도자, ‘사업가’는 세계 굴지의 기업집단과 몇몇 재벌급 언론사를 거느리는 재계와 언론계의 거물, 그리고 ‘법조인’은 법원과 검찰과 경찰조직을 모두 장악하고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막후의 실력자, 즉 겉으로는 나서지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한 국가의 모든 사법시스템을 좌지우지하는 인물인 것이다.   

    그렇지만 예상했던 대로 이들은 모두 부패의 대명사라 할 정도로 썩고 썩고 또 썩은, 그러면서도 아주 악독하고 음흉하고 음모술수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악인들이었다. 악당 중의 악당. 악 중의 악.

    하지만 이들의 힘이 너무 강해 아무도 맞설 수 없었다. 그들의 실체를 뻔히 알면서도 그러한 사실을 언론은 물론 국회나 학계 등 공개적인 장소에서는 아무도 언급조차 할 수 없었다. 국가의 모든 부와 권력과 명예는 그들이 모두 차지하고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리고 또다시 20여 년이 지난 지금의 현실에서 그 네 거물은 막 뒤로 퇴장한 듯이 보이지만, 실상은 그들이 부리는 또 다른 악당, 즉 그들의 자녀들을 앞세우고 자신들은 막 뒤에 은거하면서 조종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 네 은거자들이 앞에서 언급한 아가리쿠스 아가리울루스 아가리티 아가리움이었다. 거짓, 사기, 기만, 음모의 황제들.



그러나 이들 어둠의 지배자들은 한 가지 사실 때문에 늘 불안해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부패를 서로서로 견제하기 위해, 즉 서로에게 상대방이 배신하지 못하도록 담보처럼 만들어놓은 족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는 모든 일들을 서류와 영상으로 만들어 한 곳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사실 네 사람은 이것을 모두 없앤 뒤 자신을 제외한 세 사람을 한꺼번에 제거하기 위해 나름대로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서로가 잘 알면서도 상대방이 그것을 어디에 감춰두었는지 몰라서 서로서로 눈치만 보면서 뒤로는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그 네 사람은 자신들의 운명을 좌우할 비장의 무기를 같은 곳에 은닉해 두고 있었다. 서로서로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만. 그리고 그 장소는 바로……, 기이하게도 하늘이었다. 하늘…….      하늘? 하늘 어디?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를황……. 천지사방 막힌 데 없고 가이없이 퍼져 있는 하늘 어디에다 감추었단 말인가? 검고 검은 밤하늘이 아니고 그냥 하늘이라고? 그럼 하늘에는 무엇이 있는데? 태양과 구름, 그리고 밤에는 별과 별과 별들…….

    혹 밤하늘은 아닐까? 자정이 넘어가는 그 순간의 밤하늘. 아니면 두꺼운 먹구름이 가로막고 있는 밤하늘은 아니겠지? 혹 밤비 내리는 밤? 먼먼 추억의 여인을 찾아 떠나야 하는, 그래서 유행가 가사가 생각나는 비 오는 밤거리의 눈물 흘리는 그 밤하늘 같은 것 말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어떤 밤일까? 대낮일까? 아침일까? 저녁일까……?



5     


오토바이 폭주족들은 달리고 달렸다. 동쪽, 동쪽, 동쪽으로. 이번에는 차량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일렬로 달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고속도로 저 앞에서 교통경찰 차량들이 옆으로 일렬로 늘어서서 막고 있었던 것이다. 전조등을 상향등으로 올려서 서치라이트처럼 환하게 밝히고 경광등을 번쩍번쩍 켜고서. 그리고 그 앞에는 기동순찰대 오토바이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오토바이 폭주족은 그런 것에는 전혀 괘념치 않았다. 고속도로 옆의 가드레일을 넘어 잡석과 잡풀로 뒤덮인 비탈로 내리달리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오토바이 뒤와 옆으로 잡석들이 마구 튀어올랐고 오토바이들은 경주마처럼 펄떡펄떡 퉁겨오르면서도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나가는 것이 어둠 속에서도 보였다. 비탈 아래는 수로였다. 그러나 오토바이들은 그리로 돌진해 들어갔다. 하지만 수심이 아주 얕았는지 오토바이 바퀴가 반 정도밖에 빠지지 않은 상태에서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려나갔다.

    고속도로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경찰들은 아무도 따라갈 엄두를 내지 않는 것 같았다. 그저 어리벙벙한 모습으로 마치 서커스 광경을 지켜보듯 멍한 표정만 짓고 있는 것이었다.

    오토바이 폭주족들은 수로를 건너 황무지 같은 시커먼 들판을 뽀얀 먼지 일으키며 마구마구 달려나갔다. 그러더니 이내 건너편 낮은 산의 숲 속으로 들어가 사라져 버렸다.       



6     


오토바이 폭주족들이 도착한 곳은 어느 해변이었다. 동해안. 시속 200km 이상으로 산길 들길 포장도로 등을 마구 달린 끝에 도달한 곳이다. 그리고 저 멀리에서는 지금 막 태양 바다 위로 불쑥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폭주족들은 갑자기 어수선해졌다. 오토바이들이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면서 무엇인가를 찾는 것 같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저 멀리 어두운 수평선 위로는 붉은 해가 순식간에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때 한 오토바이에서 외침이 터져나왔다.

    “바로 저기다!”

    모든 오토바이가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와 동시에 ‘우와!’ 하면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그 순간 시커먼 바위투성이 한 곳에서 밝은 빛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오토바이들은 요란하게 경적을 울리는 동시에 환성을 지르면서 요란하게 박수도 치는 것이었다.

    오토바이에서 내려 남자들이 달려간 것은 이번에도 커다란 아가리 같은 동굴이었다. 사람 키 높이보다 약간 큰 시커먼 아가리. 그러나 그 아가리에서는 빛이, 찬란한 빛이 힘차게 뻗어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커다란 서치라이트 같은 빛이. 동굴 저 안쪽 깊숙이에는 떠오르는 태양빛을 강하게 반사하는 거울 같은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남자들은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알루미늄합금 오목렌즈처럼 한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반사거울 같은 것에서 쏟아져 나오는 새벽의 황금빛으로 인해 남자들은 모두 선글라스 안경을 쓰고 동굴 깊숙이 천천히 들어갔다. 거친 자갈 바닥을 거침없이 성큼성큼 걸어서.

    100여 미터나 일직선으로 뻗은 동굴 끝, 오목 알루미늄 렌즈가 있는 곳까지 가서 위를 올려다보니 그 위로 넓은 암석 천장이 나타났다. 그리고 남자들이 랜턴을 들고 천장을 비추자 그 한가운데에서 맨홀 뚜껑 같은 커다란 금속이 보였다.  

    그러는 중에 이 글 처음에 등장한 검은 양복 사내가 천천히 동굴 속으로 들어와 그 금속판 아래에 섰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어 위로 쓱 들어올린다. 만년필 같은 것이었는데, 남자가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누르자 그 끝에서 새파란 빛이 뻗어나가며 천장의 금속판 한가운데를 비추었다. 그 순간 윙하는 소리가 약하게 들리더니 천장의 금속판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천장에 구멍이 나면서 그곳에서 신비한 빛의 기둥이 일직선으로 내리꽂혔다. 커다란 아름드리 원통형의 빛.

    그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그 빛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남자는 천천히 그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남자가 완전히 빛 속에 들어갔을 때…….

    남자는 사라졌다.

    그리고 그 주위의 사람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그냥 자신들 앞에 있는 빛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빛은 점차 희미해져 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빛은 완전히 사라지고, 남자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의 오토바이 폭주족들은 하나둘 천천히 돌아서더니 동굴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모두 동굴 밖으로 나갔을 때는 해가 완전히 바다 위로 둥실 떠올라 있어서 천지는 환한 빛으로 덮여 있었다. 온 천지가 광명처럼 빛나는 채.

    그리고 폭주족들은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일부는 바다를 향해서, 또 일부는 거친 바위 해변 어딘가로 동서남북 모두 흩어진 채 우당탕탕 달려가는 것이었다.

    하늘에서는 태양이 그전보다 더 밝히 빛나는 듯 온 세상을 광명과 광명으로 뒤덮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빛 속에서 사라진 남자가 이 글 처음에 어두운 하늘 아래 서 있었던 바로 그 장소, 그 도시에서 가장 혼잡한 거리의 출근길 도로 한복판에 아무것도 입지 않고 홀라당 벗은 채 짠 하고 나타난 것이다.

    그러자 역시 이번에도 여기저기에서 요란한 클랙슨 소리, 욕설, 마침 그 근처를 지나던 경찰 순찰차에서 울려퍼지는 사이렌 소리 등이 마구 뒤섞인 채 뜨거운 여름 아침의 도로를 수놓았다. 이렇듯 요란한 자동차 경적과 사람들 욕설, 경찰차의 경광등 등이 땅에서 어지러이 뒤엉켜 있는 사이, 새파란 하늘에서는 무엇인가 떨어지고 있었다. 마치 비행기에서 뿌린 삐라처럼.

    살랑살랑 아침 바람을 타고 내려오는 종이들…….

    종이들이 아침 햇빛을 받아 반짝이기도 하고, 일부는 이리 뒤집히기도 하고 저리 날아가기도 하면서 살랑살랑 떨어지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곧바로 출근길 도로는 새하얀 종이로 뒤덮이고 말았다.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또한 보도에서는 두 손을 하늘로 뻗어 종이들을 잡거나 땅에 떨어진 것들을 주워올려 두 눈 가까이로 가져갔다.

    그 종이들에는 글자가 빽빽이 적혀 있었는데, 그 내용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선적이고 추악한 네 사람이 그동안 저지른 일들을 그 증거물 사진과 함께 세세히 밝힌 것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벌거벗은 남자가 어디론가 마구 뛰어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종이에서 눈을 들어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남자는 사람들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두 손으로 아랫도리 중요한 부분만 가린 채 무작정 달려가는 것이었다. 일정한 방향도 없이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이리저리 비틀거리듯이.

    그때 어느 누군가가 소리쳤다.

    “저 사람, 어젯밤 여기 한복판에 서 있었던 그 남자 아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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