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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처럼 녹슨 철돗길 앞에서

서리 돋는 가을밤에. . .

by Rudolf


서리 돋는 가을밤에는


고향을 따나오던 아득한 그날저녁

석양빛 역광받아 어머이 서신모습

듬성한 흰머리칼이 바람따라 날리다


은빛깔 은실처럼 듬성한 은실머리

그모습 눈부시어 눈감고 돌아서나

울어미 가녀린몸피 눈속에서 어리다


창밖에 서리내려 은색빛 아른일제

문득이 가슴철렁 들창문 열어젖혀

어머이 새하얀머리 보고저고 살피다


철돗길 녹슨철로 황톳빛 눌러붙고

황무지 먼먼너머 석양빛 가라앉자

황금색 넓은들판에 서러움이 가득다


창호에 새하얗게 서릿발 어리서리

어머이 역광받은 성성한 은색머리

허벌판 늦갈바람에 은실되어 날리다


고향땅 먼먼기억 가슴만 아려오고

어머이 내어머이 그저녁 그자리에

아직도 홀로서신채 내눈속에 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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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사셨으면 저 창밖의 서리처럼 머리가 하얗게 쇠셨을까……. 눈은 오지 않고 강추위만 겨울바람에 실려 들판을 가로지를 때 허벌판 너머 웅웅 울어대는 바람소리가 홑창호 틈새로 방 안으로 파고들어 내 가슴 갈기갈기 찢으며 윗목을 돌아 가슴 아린 추억 속으로 나를 몰고 가는구나. 옛 바로 그날 황무지 벌판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녹슨 기찻길 황톳빛이 눌러붙은 핏빛처럼 내 눈 속을 파고들 때 갑자기 설움설움이 북받쳐 하늘 한복판을 향해 고함치며 무작정 내달리던 기억…….


황경새재 너머 황폐한 땅에 온갖 고생 하며 밭뙈기 일구셨던 어머이. 고향을 따나오던 오랜 옛적 같은 그날, 석양 역광에 비친 어머이의 듬성듬성한 흰머리가 눈부시어 뒤돌아서 울었소. 울 어머이 지금껏 사셨으면 저 창밖의 서리처럼 머리가 하얗게 쇠셨을까…….


세월이 흐르고 흐르니 내 빈곤한 가슴에는 원인 모를 아픔만 남았다. 모아둔 것은 재산이 아니라 회한뿐이어서 삶의 빈곤이 바짓가랑이 사이로 파고들어 한기를 몰고서 전신으로 퍼진다. 저어 먼 들판 그곳에 무엇이 있을까? 저 너머 휑한 들판 그곳에 내 어린 추억이 남아 있는 것일까…….


어느 해 겨울 초입, 황무지 들판에 서서 잘게 흩날리는 눈발을 맞노라니 회색빛 하늘에는 색 바랜 석양과 벌판 위로 한없이 달려가는 매운바람만 공허 속에 존재하는구나. 이러한 순간 태초나 태말이나 아무려면 어떠랴마는 내게는 갑자기 태말이 운명처럼 떠오른다. 그리하여 나는 태말 하늘 아래를 걷는 나그네처럼 지친 다리를 쉬지 못하고 바람을 거스르며 간신히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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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폐한 어머이 무덤 앞에서


삶나이 수십너머 추억만 넘쳐넘고

마음속 까닭모를 아픔만 돌고돌제

회한이 가슴속에서 가시처럼 돋누나


저어먼 들판너머 아스란 추억들이

검붉은 서녘하늘 서럽게 물들일제

아스라 내맘무너져 고개돌려 외면타


가을해 서산너머 기우뚱 잠겨들제

색바랜 추억들이 겹겹이 내려내려

황무지 짙은그림자 설움처럼 덮누나


잔별들 하나둘씩 가을밤 수놓을제

먼하늘 소식물고 은하수 길게뻗어

어머이 홀로잠드신 무덤가로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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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작가가 아닌 다른 이의 추억을 임차해서 쓴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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