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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에게 밥 주다가. . .

by Rudolf


민우는 어느 날 저녁식사를 마치고 산책을 나갔다가 고양이 한 마리와 마주쳤다. 아파트 외부의 산책로에서 가끔 만나는 고양이인데, 네 다리 아래쪽과 가슴 부위에 있는 하트 모양의 흰 털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새까만 색이다. 아, 눈은 갈색이지.

민우는 고양이에게 주기 위해 늘 고양이 캔 하나를 들고 다닌다. 그렇다고 민우가 고양이 마니아(?)는 아니다. 물론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특히) 겨울철에 고양이들이 먹이도 제대로 없이 추위에 떨며 보내는 것이 안타까워 가끔 고양이 캔을 사서 들고 다니다가 고양이가 나타나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캔 뚜껑을 따고 고양이가 잘 먹게 놔두는 정도다. 사람들이 개는 풍족하게 먹이면서 안기도 하고 유모차에 태워 다니고 하는 것에 비해, 고양이는 너무 푸대접(?)하는 것이 안타까워 그렇게 하고 있을 뿐이다. 어느 뉴스에서 보니 겨울철에 들고양이들은 반 수 이상 죽는다고 한다. 추위와 굶주림과 질병으로. 반면에 반려(애완)견들은 사람 못지 않게 풍족하고 따뜻하게 겨울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 어딘지 부조리(?)하게 느껴진 것이다.

그러던 차에 어느 날 저녁, 민우는 한 아주머니가 큼직한 유모차에 앙증맞은 강아지 두 마리를 싣고 산책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유모차가 민우 옆으로 지나가는 순간 두 마리 개가 민우에게 마구 짖어대는 것이다.

민우가 그 개들에게 해코지라도 했냔 말이냐? 왜 그렇게 짖어대며 커다란 이빨에 잇몸까지 드러내며 사납게 구는 거냐고? 게다가 개 주인은 개를 말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무심하게 민우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민우는 그 순간 마음이 상해 개들을 잠시 노려보았다.

그랬더니 갑자기 개 주인인 여인이 민우에게 타박을 한다.

"우리 개한테 왜 그래요?"

???

민우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개가 민우를 보고 짖었지, 민우가 개한테 짖은 게 아니잖나.

민우는 순간 마음 속에서 불끈하는 게 있기는 했지만, 괜스레 좋지 않은 일에 휩쓸릴 것 같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 갔다. 게다가 상대방은 여인이지 아니한가. 하지만 그런 중에도 강아지는 계속 사납게 짖어대고 있었다. 민우는 은근히 겁도 나고 해서 유모차에서 멀찍이 떨어져 몸을 피하듯이 옆으로 돌려 걸어갔다.

"이것 봐요! 왜 우리 개 못살게 구는 거예요?"

. . . . . .

뭐래?

민우는 그 순간 좀 당황해서 제대로 대꾸도 하지 못한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냥 걸어갔다.



그리고 나서 며칠 뒤, 또다시 그 개와 마주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여자의 남편인 듯한 거구의 남자가 함께하고 있었다.

민우는 어딘지 불편한 마음에 그 개의 일행과 좀 떨어지듯이 해서 멀찍이 거리를 두고 지나쳤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소리가 나는 것이다. 민우를 부르는 소리.

"나 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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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날 민우는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그 거구가 민우 앞을 가로막으며 손가락으로 민우 눈앞의 허공을 마구 찌르면서 으르렁거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민우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멍한 눈으로 상대방의 커다란 몸짓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 거구는 민우가 자기 여인을 다짜고짜 위협했다느니, 자기 개한테 막말을 하면서 욕을 했다느니, 자기 개와 마주칠 때마다 일부러 자극했다느니 하면서 없는 일을 만들어내며 사납게 행동을 하는 것이다.

비쩍 마른 민우로서는 우선 그 사내의 우람한 체구에 밀려 뭐라고 대응할 수가 없었다. 혹 한마디라도 대거리했다가는 멱살이라도 잡힐 것만 같았던 것이다. (참고로 말하면, 그 사내는 팔뚝이 민우의 허벅지만 했고, 상체는 옷 속으로도 역삼각형이 뚜렷해 보였으며, 게다가 키는 아마 190cm 이상이 되는 것 같았다. 한마디로 거구인 것이다. 게다가 얼굴은 얼마나 험상궂은지. . . )

거의 혼이 나갈 정도로 혼찌검(?)을 당한 뒤 처참한 마음으로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글자 그대로 육이오 때 눈보라 몰아치는 흥남부두였다. 어찌 반세기도 전의 그 처참한 흥남부두의 서러움을 알랴만은 그날 그때의 그 심정은 황량한 시베리아 벌판에서 북풍한설 맞는 피난민 처지와 다를 게 없다고 여겨진 것이다.

복수! 복수! 복수!

마음속에서는 이미 원산폭격과 히로시마 원폭 이상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지만, 현실은 무지무지 황당하고 처량했다. 이 설움을 어찌 복수할꼬?

민우는 한동안 그 일을 잊으려고 무지 애썼다. 그거이 말처럼 그렇게 간단하게 잊혀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달리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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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일이 일어나고서 근 1년이 지났을 때였다. 그동안에 민우는 다시는 그 산책길로 다니지 않았다. 그러한 민우의 심정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어느 날 민우가 동네 초등학교 교문 앞으로 딸애가 하교하는 것을 맞이하려 가는데 아이들이 교문 밖으로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민우는 그날 마침 일이 있어서 회사에 나가지 않고 집에 있었다.) 알록달록 각종 색깔의 옷과 가방을 들고 메고 하며 아이들이 정신없이 떠들며 떼를 지어 걸어온다. 아이들은 모두 예쁘다. 생기발랄 그 자체. 마치 큰 파도가 밀려왔다가 저쪽으로 와르르 밀려가듯 올망졸망 새카만 머리들이 정신없이 재잘거리며 흘러간다.

학부형들이 일부 나와서 아이들을 기다리다가 우르르 몰려나오는 꼬마들 무리 속에서 자기 피붙이를 발견하고는 손도 흔들고 이름을 부르기도 하며 아이들에게 다가간다. 그 순간 부모들의 눈빛은 조약돌 속에서 보석을 발견한 양 눈부시게 반짝인다. 그런 다음 부모들에게 뛰어서 돌진하는 아이들, 보조가방 빙빙 돌리며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들, 그리고 두 팔을 앞으로 내밀고 아이를 받아드는 엄마들. . .

민우는 딸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 몇 달 지나서 처음으로 아내와 함께 아이를 마중하러 나간 것이다. 그동안에는 아내 혼자서 딸애를 맞으러 갔었다.

민우는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꼬마들 인파 속으로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딸애를 찾고 있었다. 그때 마침 저쪽에서 교문을 막 나서며 요리조리 고개를 돌리며 부모를 찾는 한 귀여운 소녀가 눈에 띄었다.

그러다가 그 애는 마침 민우를 발견했는지 다른 아이들 사이를 마구 헤치며 달려온다. 아빠~ 하고 소리치면서.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 .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져온다 해도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자식의 모습에, 천사가 울고 갈 정도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한 어머니, 젊은 여인. 즉 민우의 아내.

그리고 그 순간 마치 난장이 나라에 온 거인처럼 우뚝 솟아 있는, 묵직한 얼굴에 보람 찬 미소를 지은 채 저쪽에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거구의 사내.

그와 동시에 때마침 한 꼬마가 쪼르르 달려와 엄마, 즉 민우의 아내 품에 안기더니 뒤를 돌아다보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그 우람한 사내에게 손을 흔든다.

그런 뒤에 민우의 아내는 고개를 돌려서 그 거구에게 꾸벅 인사를 하는 것이다. 아주아주 인자한 얼굴에 선한 눈빛이 가득한 남자에게.

"저분이 바로 우리 애 담임선생님이에요."

민우는 순간 잔뜩 긴장한 채 뻣뻣한 태도가 되어 상대방을 쳐다보았다.

그렇다. 그 사람은 민우 아이의 담임이자, 위에 등장한 그 유모차 강아지의 주인, 즉 지난 겨울 민우가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다닐 때 만났던 바로 그 여인의 남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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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담임은 그 우람한 몸집으로 성큼성큼 민우 쪽으로 다가왔다. 얼굴 이쪽에서 저쪽까지 쫘악 찢어지도록 환한 미소를 크게 지으며. 그리고는 민우와 그 옆에 있는 민우의 아내, 그리고 민우의 아이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꾸벅 인사를 한다.

그 뒤 그 세 사람은 한 덩어리가 되어 뜻도 없는 말을 주고받았다. 사실 무슨 말을 했는지 민우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저 멍한 상태에서 발이 공중으로 부웅 뜬 것 같은 느낌만 있었을 뿐이다.


[이 글은 잘 모르는 다른 이의 아주아주 쬐끄만 경험담을 이따만큼 확대 재생산한 것으로, 여기에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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