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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 Oct 18. 2021

카카오톡 탈퇴를 매일 고민합니다






 타인의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기도 전에 미리 내가 상대를 웃겨버리는 전략도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재미있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단시간에 앞에 앉은 사람을 웃기기 어려우면 자학개그라도 아쉬운 대로 지껄였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은 실소라도 한다. 나는 유머까지도 대인관계 불안에 대한 예방책으로 활용했다.







면접 가서 개그만 치고 오다.

 언어치료학에서는 성인 말더듬이 가장 까다롭고 완전히 치료되기 어려운 것으로 분류된다. 초기 아동 말더듬은 비교적 아동이 말을 더듬고 있다는 것을 타인이 알아채기 쉽고 그만큼 치료 의지도 강하다(부모의 의지라서). 하지만 아동기의 제때 치료되지 않으면 성인이 되면서 말더듬이 더욱 고착화되는데 이 때 이를 교묘하게 숨기는 스킬도 동반으로 좋아져서 언뜻 누가 보기에는 말을 더듬는다고 할 수가 없을 정도가 된다. 다른 사람이 보면 조금 특이하게 말을 한다는 인상 등으로 잠깐은 가릴 수도 있을거다. 하지만 전문가가 문장을 분석해보면 유효한 정보값을 지니고 있는 실재적인 어휘의 비율보다 본인의 문장발화가 자연스러운 것 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수식어구, 영어로 치면 filler words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부자연스러운 부수적인 행동도 긴밀한 습관으로 이미 자리잡은 경우도 많다. 따라서 자연스레 본인의 유창성 정도를 문제삼는 일이 줄어들고 결국에는 말더듬을 근본적으로 치료받게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첫걸음인 치료실 방문이 어렵게 되는 경우도 꽤 있다고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머릿속의 불안장애를 가진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리라고 한다면 움츠러든 어깨와 팔자로 내려간 눈썹을 가진 의기소침한 사람 혹은 어둡고 사회성이 적은 히키코모리 같은 사람들을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요새 들어 공황장애나 불안장애를 호소하는 많은 연예인들이 그러하듯 오히려 불안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타인의 앞에서는 더더욱 활발하고 밝고 심지어 더 재미있고 개그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나도 어릴때부터 이렇게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내 모습을 숨기기 위해서였을까, 밖에서는 늘 당당하고 당차다는 이야기를 늘 들어왔고 심지어 개그케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강의를 곧잘 하며 발표 공포증과는 거리가 꽤 먼 인생을 살아왔다. 긴장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 긴장은 누구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발표나 면접 등의 인터뷰를 하면서 몰입하다보면 분위기메이커를 자처하고 늘 많은 면접장님들을 웃게 만들었다. 한복미인대회 선발대회 같은 뜬금없는 대회도 나가보고, 그런 곳에 나가면 인기상은 늘 내 차지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면접장을 나서고 나면 내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까마득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의 불안과 긴장을 유머로 회피하고 처절하게 막았다. 어찌 보면 유머나 위트는 답변이나 상황을 부드럽게 유예하는 유용한 도구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의 약한모습, 불안해하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해가 거듭날수록 내 연기는 중등도 말더듬 환자처럼 더욱 더 섬세하고 치밀해졌다.



 그렇게 정신없이 마친 면접은 반은 붙었고 반은 떨어졌다. 오히려 면접에서 떨어진 경우에는 거의 내정자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면접장에서도 얼어붙은 분위기에 대해 불안함을 없애기 위해 거의 무의식적으로 개그를 치고 있는 것이 내 고질적인 습관이 되어버린것도 수많은 면접장을 거치고 난 후 비로소 인식하게 되었다. 이런 사실을 알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워낙에 웃기고 위트있는 사람이라 그런 심각한 자리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즐거움을 줄 줄 아는 사람이라고 착각하며 살았다.










공감메크로 그게 나야 나

 앞에서 잠깐 이야기했지만 내가 이런 강박도 있고 안전불안증도 있어서 집에만 있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우울감에 빠져 사는 것 같지만 실재로는 그와 정 반대로 지내왔다. 대학교때는 다이어리가 온갖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느라 꽉 차서 약속을 잡으려면 최소 2-3주 전에는 잡아야했다. 대학원때 역시 여기저기 놀러 다니고 영화제작 동아리까지 들어서 영화도 만들고 다녔다. 직장생활 할때도 열심히 연애하고 sns를 하면서 관종력을 키워갔고 결혼 한 후에는 블로그를 시작하고 상담도 하고 유튜브도 했다. 그래서 케이블에서 하는 방송프로에 좋아했던 방송인과 한 시간동안 함께 패널로 출연한 적도 있다. 내 주위에는 늘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주변 친척이나 어른들은 우리 부모님께 나에 대한 칭찬을 많이 하신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은 사실 철저히 나의 계획으로 만들어진 나의 부캐(부 캐릭터)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친하던 안 친하던 상관없이 거의 동물적인 감각으로 칭찬할 거리를 찾는다. 매우 구체적으로 말이다. 칭찬거리를 찾지 못하면 혼자서 좌불안석이 된다. 그렇게 한 두 번의 칭찬이 오고가면 분위기는 훨씬 부드러워진다. 여기까지는 좋다. 하지만 그것이 습관이 되었고 억지로 짜내는 것이 메크로처럼 진짜 나는 넋을 잃은 사이에 어느 새 진행되버리고 만다.  내가 만든 “꽤 괜찮은 사람” 이라는 프레임과 각본을 충실히 따르는 케릭터로 아주 적극적으로 탈바꿈한다. 나는 사실 지금 피곤하고 힘들어서 다른 사람의 TMI가 궁금하지 않지만 늘 화자는 청자의 반짝이는 눈과 적절한 추임새를 원한다는 것을 매우 강하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집중하는 척을 한다. 심지어 연기도 매우 잘 한다. 실재로도 (내가 추임새를 넣고 표정을 지을 적재적소가 어디인지를 찾기 위해) 집중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가장 원하는 답이 무엇일지 생각하고 그 답을 한다. (내가 상대방이라면 이렇게 이야기해주면 좋아하겠지) 그러면 상대는 나를 굉장히 본인과 잘 통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한다. 그리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또 나를 찾는다. 언제부터인가 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 앞에서 하는 행동이 진짜 내가 아닌데 그럼 이 사람은 진짜 나를 좋아하는 것이 맞나? 이렇게 생각이 든 후로부터는 사람을 순수하고 가감 없이 대하는 게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카카오공화국에 사는 것이 괴롭습니다

 나는 빨간 1을 안 없애고서는 못 배기는 사람이다.

카카오톡의 빨간 1이 없어지면 불안이 시작된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카카오톡이 굉장히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딱히 카카오톡이라는 특정 회사에 대한 불만은 아니다. 텔레그램, 카카오톡, 문자메시지, 아이메시지 등등의 직접 만나지 않고 문자로 소통하는 방식이 불편하고 별로다. 당연히 SNS댓글도 포함이지만 이건 좀 낫다. 실시간으로 대화를 이어나가야 한다는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도 나는 불안과 전혀 상관없는 태도라고 생각했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상당부분 연결고리가 존재했었다. 일단 상대의 목소리와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비언어적인 의사소통을 결정하는 요소를 전달할 수 있는 건 오직 이모티콘이다. 서로의 감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게다가 만나서 대화하면서 캐치할 수 있는 가공되지 않은 솔직함을 담은 지연반응을 읽을 수 없으니 정확한 의사소통(더 정확히 말하면 상대의 의중을 읽는 것)에 방해가 된다. 특히 내가 그러는 것 처럼 상대방에게서 빨리 답장이나 이모티콘을 받지 않게 되는 경우 더욱 더 초조해진다. 이 사람이 나에게 우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마지막 만남으로부터 그들 독자적으로 업데이트된 사항이 있을 수 있고(물론 이건 그 사람 사정이지만), 그것을 문자로 알기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너 나 만나고 혹시 그때

나랑 이야기한거랑 다르게

나한테 기분 나쁜 게 (별도로)

생겼니?”






라고 물어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아. 그리고 물어봐서 답이라도 들으면 다행이지 차단 당하기 딱 좋은 각 아닌가. 그래서 카카오톡으로 대화하는 것을 피하는 편이다. 상대의 감정을 읽으려 노력하는 에너지가 너무 많이 쓰이며 괴롭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서 고민하다가 메시지를 보냈는데 바로 답이 올까봐 전송 버튼을 누르고 얼른 그 방을 나온다. 바로 1이 없어지거나 답이 오면 또 답장을 해야 할 것 같아서다. 이런 사정을 아주 자세히 설명한 적은 없다. 하지만 고맙게도 나는 현재 육아중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대화에서 사라져도 나중에 변명할 수 있다. (이럴때는 내가 육아맘인 것이 너무 좋다) 그리고 이런 내 행동을 깊이 이해해 주는 사람과만 깊은 정서적인 교감을 할 수 있다.

 

 카카오톡 단체방은 더하다. 단체방에 들어가서 가장 길게 유지한 것이 8개월 정도다. 이때도 제발 나가지 말고 가만히 잘 있어보자고 이번엔 버텨보자고 나 자신에게 굳세게 다짐한 최장기간이 이 정도다. 왜 불편한지 생각해봤다.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이었다. 내가 불편해하는 특정인이 새로운 주제를 던지거나 대화를 주도하고 있을 때 약간의 불편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뒤이어 그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반응하거나 친해보이는 사람도 불편해졌다. 그리고 뒤이어 내가 던지거나 반응한 말에 또 반응이 없어지면 그것도 불편했다. 개인과의 일대일 대화 카카오톡은 그 사람만 어떻게 핑계대서 피하면 됐는데 단체방은 피할 곳도 숨을 곳도 없었다. 게다가 몇십명이 보고 있는 곳에서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없이 껄끄러웠다. 내 이야기를 어떻게 가공해서 어떻게 나쁘게 퍼지게 만들지 너무 무서웠다. 이런 결론을 내리기까지 단체 카카오톡 방을 한 40-50개 정도 지나온 것 같다. 직접 만나면 좋은데 코로나 때문에 만날 일이 없어서 단체 모임을 자연스럽게 하지 않게 됐고 지금 그렇게 활발하지 않은 소규모 단톡방을 세 개 정도 유지 중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내린 단톡방에서 제대로 살아남는 법은 그냥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것이다. 듣기만 하고 오프라인 모임에는 자주 참석하면 그래도 중간은 가는 것 같다.










이제는 환청도 들리는 것 같다

 환청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뒤에 이야기할 ‘그 사건’ 이후로는 아기를 데리고 외출하면 모두가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핀잔을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쇼핑몰에 가면 길이 아주 넓음에도 불구하고 유아차를 몰고 가다 방향을 전환하려고 치면 생각보다 아주 많은 공간이 필요하다. 그러면 아주 당연하게도 나와 반대방향에서 오는 사람들의 진로를 막게 된다.



고의는 정말 아니다. :(




근데 길이 만약 좁다면 나의 방향전환 신호가 시야에 들어와서 서로 다 이해하고 지나치는데 오히려 애매하게 넓으면 괜찮다고 생각하고 전방을 잘 주시하지 않는다(나도 유아차 없이 걸을 땐 그렇다). 그러면 마스크 안쪽으로 “아이씨” “아이” 하는 부정적인 감탄사가 들리는 것 같다. 어느 날 하루종일 그런 소리가 들린 적이 다섯 번이 넘는 날, 내가 정말 정신착란이 생겼는지 의심이 되더라. 같이 걷던 반려인은 그런 말을 전혀 듣지 못 했다고 했다. 하지만 사람은 전혀 반대 성향을 가진 사람에게 이끌리기 마련이다. 나의 반려인은 아주 큰 소리도 잘 못 듣는 아주아주 둔하고 아주아주 긍정적인 사람이다.  



 아기가 없어도 이런 소리는 간혹 들린다. 그날은 내가 좀 짧은 원피스를 입고 나갔었는데 모녀가 나에게 들릴 듯 말 듯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에 “너무 짧다” 하고 지나쳤다. 그날은 환청은 아니었고 나름대로 명확하게 잘 들렸다. 뭐라고 물어볼까, 너무 짧으니 다음엔 입지 말까요, 아니면 방금 저한테 하신 소리세요? 아니면 네? 뭐라고요? 저기요 다 들려요. 이런 문장들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다시 뒤 돌았을 때 두 사람은 이미 100미터 후방을 훨씬 지나치고 있었다.


 이렇게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짧은 반응 조차 굉장히 신경이 많이 쓰이기 시작해서 불행중 다행인지 대중교통은 거의 이용하지 않고 자동차로만 이동한지 꽤 되었다. 아무리 코로나라고 하지만 장도 봐야하고 사람이 많은 곳을 아예 안 갈수는 없는 노릇이라 이럴 때마다 누굴 탓해야 할지 원망스럽다. 아니, 누굴 탓해 그냥 예민한 나 자신의 특징이며 기질이라고 생각하라고 나의 상담 선생님께서 말씀주셨다. 어쩌면 완벽하게 고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미지출처

1. 영화 '엑스마키나'의 인공지능 '에이바'의 모습

2. https://plus.hankyung.com/apps/newsinside.view?aid=201710139010A&category=AA010&sns=y

3. https://blog.daum.net/nhicblog/4208

4.

5. https://www.mindgil.com/news/articleView.html?idxno=69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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