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작 Oct 23. 2021

에필로그

이야기를 마치며


내 상처가 다른 사람의 상처보다 더 아픈 것은

내가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아팠던 기억은 그래도 나를 강인하게 다시

일어설 힘을 주었다.





아빠의 18번 노래 가사처럼 내 아픈 기억은 아쉽게도 연필이 아니라서 지우개로 지우지는 못하지만

그 위에 다시 가장 마음에 드는 펜을 골라 아주 진하게 덮어 쓸 것이다.

좋은 기억들은 최대한 비슷하게 골라서

내 아기에게 모조리 전달할 생각이다.




00000.

꿈으로 가득찬 설레이는 이가슴에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사랑을 쓰다가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히 지워야 하니까~

사랑은 연필로 쓰으세요~



=>아빠의 노래방 18번이다. 아빠는 이 노래를 부를때 유난히도 입을 크게 벌리셨다. 그러면 언뜻 보면 활짝 웃는 얼굴인 것 처럼 보인다.





0000.

어느 날 아빠와 동생과 셋이서 집 안에서 숨바꼭질을 했다. 아빠를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다. 동생은 나보다 키도 작고 행동도 느려서 아빠를 더욱 못 찾았다. 내가 결국 먼저 아빠를 찾았는데 싱크대에 가로로 누워계셨다. 아빠는 한껏 설레는 얼굴을 하고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쉿' 이라고 얘기했다.






000.

아빠의 동창회 행사에 갔다가 아빠를 잃어버렸다. 한 시간 남짓 헤매다 드디어 아빠를 찾았다. 아빠는 작은 내 손을 꼭 잡았다. 아빠의 손이 따뜻하다 못해 뜨거웠다. 그 날 일기장에는 따뜻한 아빠의 손에서 사랑을 느꼈다고 썼다. 삐뚤한 글씨가 아직도 눈을 감으면 선명하다.







00.

내가 어릴때 환경이 바뀌면 곧잘 구순염이 생기곤 했다. 그러면 엄마는 피곤해서 그런거라고 본인도 자주 그런다고 그럴때는 씻고 귤을 잔뜩 먹고 자라고 토닥여줬다. 정말 엄마 말대로 며칠을 못 가서 나았다.







0.

엄마는 늘 나를 자랑스러워 한다. 내 앞에서는 그저 '잘했다' 한마디만 하시지만 나중에 온갖 주변 사람들로부터 내가 잘 한 이야기를 부풀려서 듣는다.






0.

아기와 함께 외출할 때

웃음과 미소로 환대해주었던 수많은 어른들

문을 잡아주는 사람들

과자나 사탕을 쥐어주는 사장님, 직원들

아기가 밥을 잘 먹는다고 칭찬해주는 사람들

그래도 좋은 기억이 더 많다.





0. 어릴 때 우리집은 부자였고 그 사실을 나를 빼고 모든 친구들은 다 알았다. 다들 우리 집을 부러워했고 집에 있는 장난감과 만화책들에 놀랐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순간에는 어리버리하며 지나가다가 나중에서야 어렴풋이 떠올랐다.

 또한 나는 어릴때 무언가를 물리적으로 못 가진 적이 없었다. 장난감, 책, 옷.

 이런 경험은 현재의 내가 돌고 도는 돈에 크게 집착하지 않게 만들었다.





우리 아기는  부모님 못지 않게 나를 사랑해준다.

태교는 태반이  했다.

음식물도 내가 먹는 찌꺼기만 먹었다.




일단 내가 만들었고 낳았고 책임져야 하니까

인생은 길고 긴 고와 찰나의 행복이니까

그 찰나들을 열심히 모아붙여

최대한 행복한 소풍이 되보도록 할 거다.





한때는 너무 미웠던

지금도 그저 사랑해줄수만은 없는

유전자에 깊숙히 아로새겨진 불안장애를

모두 다 파내지는 못했지만  

잘 달래서 함께 지내봐야지

죽은 가지는 일찍부터 쳐내고

건강한 가지는 더욱 햇볕을 보게 만들고





나의 불안은

불완전한 나의 동력

너무 미워하지만은 말아야지



싸우지 말고  지내보자.




작가의 이전글 아기의 불안장애 새싹 굶어죽이는 방법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