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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 Oct 24. 2021

안녕하세요, 지금 바로 상담 되나요?

내 상담 선생님은 브라질리언 왁싱 선생님


 아쉽게도 거의 대부분의 상담기관은   당일 방문은 어렵다. 미리 예약을 해놓아야 하고 시간과 요일도  마음대로 정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상담을 예약할때는 바로  마음이다. 지금 바로 누군가가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면 분노나 우울 그리고 불안이 나를 다시  지배하게 될까봐 무서워졌다.



 

 심리상담센터를 처음 방문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오륙년 전이었다. 좋은 상담 선생님을 만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친절하고 따뜻하다 싶으면 너무 내 이야기를 듣기만 하다 회기당 십만원도 넘는 한시간이 끝나버렸다. 처음이라 그러겠지 하고 5-6회기를 가도 몇 번의 질문 말고는 딱히 해결해주시는 건 없었다. 회기가 지날수록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나 시계만 보게 됐다. 불안증이 또 도질 것 같았다. 상담 시간이 끝날까봐 이야기를 재구성하는데 에너지가 너무 많이 쓰였다. 또 다른 선생님은 해결책을 시원시원하게 주는 선생님이어서 좋았다. 그러나 성추행을 당한 경험을 털어놓다가 왜 그자리에서 싫다고 하지 않았느냐, 강력한 거부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느냐면서 나를 나무랐다. 심지어 상담 전체를 나에게 억지로 동의를 얻어 녹음을 하는 바람에 점점 입을 닫게 되었다.

 한편 해결책도 주시면서 적당히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는 선생님은 또 너무 "그정도면 괜찮은 남편 아닌가요?" "그 정도 안하는 사람도 많아요. 감사하는 마음도 가지세요." 하면서 나를 가르치려 들었다. 물론 가르침을 받고자 상담센터를 방문한 것은 맞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역시 몇 회기 가지 못하고 발걸음이 자연스레 끊겼다.





 하지만 그렇게 여기저기서 진행한 상담은 조용하지만 꾸준히 도움이 되고 있었다. 먼저 가장 컸던 건 내 이야기를 가감없이 솔직하게 털어놓을 누군가가 늘 같은 자리에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위안이 됐다. 내가 돈을 지불했으니 일단은 이 사람은 무조건 내 이야기를 우호적으로 들어줄거란 근거있는 믿음은 내가 내 감정과 상황을 객관적으로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정해진 시간동안에는 방해받지 않고 내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도 안정을 찾는데 의외로 도움이 됐다. 그리고 내가 힘들때 느껴지는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라는 조언도 유용했다. 화가 나면 화가 나는 그대로 나를 인정해주라고 하셨다. 그 감정을 그대로 관찰하라고 했다. 감정은 감정이니 흘러가면 또 다른 감정이 온다고 하셨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감정이 단어 하나로 응축되면서 감정의 근본적인 뿌리를 찾아가게 되었다.




 여러 상담 선생님을 거치면서 단 한번도 울지 않은적은 없었다. 어떤 때는 어린 내가 측은해서 스스로에 대한 연민의 울음이었고 어떨 때는 내 마음을 몰라주는 사람이 야속한 마음에 흘리는 슬픔의 눈물이었다. 또 어느 날은 모진 말을 한 사람에 대해 화를 내지 못해 분해서 나오는 눈물이기도 했다. 울고 나온다고 해서 무조건 후련하지는 않았다. 도리어 거울에 비친 빨개진 내 눈과 잔뜩 부은 눈꺼풀을 보고 오늘도 내 인생은 여전히 녹록치 않다는 생각이 들어 기운이 빠졌다.  




 거주지를 계속적으로 옮기면서 가장 최근까지 상담했던 S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S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너무 듣기만 하지도, 그렇다고 나를 너무 가르치려 들지도 않았다. 선생님 본인의 생각을 적절하게 섞여서 얘기해주었다. 어떨 때는 내 편을 들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내가 했던 행동이 과했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신뢰가 쌓이고 나서는 이런 말이 불쾌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꼭 필요한 질문을 해주셔서 나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 생각에 대한 답을 다음 회기때 이야기하면 그것이 또 다음 상담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S선생님과 처음 만나서 했던 심리평가 결과는 참혹했을 것이다. 고소 사건도 있었고 자살사고도 있었고 약물치료도 필요하다고 해석했다. 특이했던 건 결과지를 나에게 직접 주지 않겠다고 꽤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만약 결과가 다른 기관에 넘기기 위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그 결과를 기관으로 직접 팩스로 보내줄수는 있지만 내가 직접 보는것은 권하지 않는다고 거듭 말씀하셨다. 약물치료를 권해야 하는 수준이기는 하지만 조금만 더 상담치료를 함께 해보자고 하셨다.


 

 어느 날은 내가 경계선적 인격장애라는 의심을 잔뜩 하고 상담실을 찾았다. 유튜브는 물론이거니와 각종 블로그의 글들을 참고하여 거의 확신하고 갔다.



선생님, 저 경계선적 인격장애라서 결과 안 보여주신거죠? 이거 고쳐지긴 하는건가요? “


 선생님은 아니라고 딱 잘라 말했다. 오히려 내가 기대했던 답변이었는데 그럼 나는 왜 이렇게 늘 힘드냐며 도리어 억울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답정너가 없을까 싶기도 하는데 그날도 선생님은 내가 경계선적 인격장애가 아닌 이유를 조목 조목 얘기했고 그래도 내가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자 dsm-4 가져와서 보여줄까요? 하고 장난스레 나를 설득했다.



 상담을 꾸준히 가지는 않았다. 내가 필요하면 예약했다가 다시 또 취소하는 일도 잦았다. 분노와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 상담을 예약했다가 엉뚱한 곳에서 분노발작이 터져 상담을 못가게 되는 일도 있었다. 그렇지만 점점 회기가 넘어가면서 나는 점점 선생님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브라질리언 왁싱.


 




어느 날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제 브라질리언 왁성 선생님과도 같아요. 제 모든 치부를 들으셨잖아요. 선생님을 만나면 마음이 시원해져요. 그리고 제가 배울점이 참 많아서 좋아요.


 선생님은 내 모든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참 힘들었겠다고 여러 번 말씀해주셨다. 내가 힘들었던 마음이 엄살이 아니었던게 타인에 의해서도 인정이 된 것 같아서, 그리고 내가 나약한 인간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그 부분이 크게 힘이 되었던 것 같다. 아기도 키우고 죽지 못하니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행복하고 즐거워질 수 있을지 방법도 너무 다 잘 아는데 하기가 싫었다. 선생님은 하기 싫으면 억지로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 도태되는 것 같아도 지금이 재충전할 시기라고 나를 칭찬했다. 이제까지 버틴 것도 대단하다고 인정해주었다.

 아마도 나는 이런 인정과 칭찬이 정말 필요했다.


 최근에 새로 이사 온 지역의 상담센터에 최근에 방문했다. (내가 가장 힘들 때)평가했던 결과지를 보시고 새로운 선생님은 너무 놀라셔서 한동안 말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수 분이 지난 후 내가 지겹도록 듣는 그 말을 또 하셨다.


"이제까지 정말 힘드셨겠어요....."



'아 이래서 나한테 그때 평가지를 보여주지 않으셨구나.....'


 평가를 하고 공식적으로 1년 6개월이 지나 평가결과를 들었다. 예민하고 까칠한 성향은 섬세하고 부드러운 성향과도 연관지을 수 있다고 하셨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굉장히 다르지만 성향과 기질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받아들이기로 한 업그레이드 된 버전의 새로운 내가 구버전의 나를 토닥였다.



 이제까지 했던 상담의 결과가 차곡차곡 쌓여서 결국엔 불안장애를 딱히 파내지 않아도, 완벽하게 완쾌(?)되지 않아도 더불어 잘 살아갈 추진력을 받았다. 파내려고 노력하다 보면 결국 나를 부정하게 되었다. 나의 부정은 곧 부모님과 가족의 부정으로 이어갔다. 나에 대한 자학은 익숙했다. 하지만 부모님까지 부정하는건 굉장히 복잡하고 아픈 일이었다. 부모님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예민함이 잘 다듬어져 날카로움과 영민함으로 빛나고 있었다.


 물려받은 예민함과 섬세함 덕분에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읽고 공감도 잘 한다. 상대방이 많이 설명하지 않고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쉬이 마음이 읽힌다. 따라서 나는 타인에게 상처주지 않는 것이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이것은 그 어떤 것보다 큰 장점이 될 수 있었다.

 같은 자극이어도 받아들이는 농도와 사람이 다르면 결과값은 천차만별이 될 수 있는것이 대화와 소통의 맹점이었다. 같은 정보를 받아도 해석 촉수가 훨씬 두텁고 많아서 이해의 폭이 넓은 것이 내가 이제껏 여러사람을 성공적으로 상담해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사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나의 긍정에너지를 끌어올리는 데 이 클리쉐가 지대한 공헌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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