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풍경 속으로 서서히 물들어가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창가에 내려앉은 눈꽃을 지긋이 바라보던 그녀는 찬바람이 두렵지 않다고 내게 말했다. 오로지 그녀의 관심은 하얀 풍경이었다.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모르겠으나, 단지 나는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그곳을 향해 달려가는 그녀의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신비로운 소녀, 그녀의 이름을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언젠가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다시 그녀를 만날 수 있을 거란 예감이 들곤 한다. 에메랄드 빛의 머리카락 색깔을 가진 만큼 그녀는 겨울과 닮았다. 하얀 풍경마저 얼어붙게 하는 무색함.
애써 밖으로 뛰쳐나가는 그녀를 그때 붙잡았더라면 어땠을까?
"온데 안 아픈 데가 없네"
"만날 아프다고 하노"
"네가 내 나이 되면 그런 소리가 절로 나올 기다"
왜 다들 나이가 들면 모두
아프고
늙고
쉽게 서러워지는 걸까?
처음에는 아프다고 관심받고
싶어 하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는 건
그녀의 다리에 핀
푸른 꽃을 발견했을 때부터였다.
할머니 다리를 휘어 감듯이
피부를 장악하는 핏줄 위로
피워 나는 꽃
향기하나 없는 그 꽃은
가슴을 쿡,
휘어 감는다.
당최 꿈이 없어 그런지 꿈꾼 적 없는 내게
급습적으로 찾아온
'꿈'이라는 녀석은 많이 슬프더라
현실에서 본 적 없는 너희들 사이에서
눈총 받으며 쫓겨나야 했던 것보다
왜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냐는 사실이
서러웠던 거야
꿈에서 깬 후 계속 흘러내리던 눈물
꿈속이라서 안도하기보다는
서러워서...
꿈이 사라진 상황에서도,
영문도 모르겠던 상황인데도,
지금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넌,
내 편이 되어 줄거니?
배고프면 들춰보는 냉장고 안을
오늘도 무심히 보다 발견한
구석에 드리워진 어둠의 그림자
하나 꺼내 뚜껑을 들춰보니
하얀 곰팡이가 뚜껑만 한 크기의
솜덩이로 한 지붕을 만들고서
나를 올려보고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