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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Feb 29. 2024

내 단짝 할머니는 연락도 없이,

엊그제부터 흐린 얼굴로 내려다보는 하늘 덕에 비소식이 실감 나는 오후. 집안이 따뜻하다고 느낀 건 오래간만이었다. 며칠 전 쇼핑몰 사이트에서 야상 점퍼나 봄옷이 검색어 뜰 때도 크게 못 느꼈는데, 이젠 봄이 오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아... 이 오는구나.' 


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미세먼지나 황사에 되려 겁부터 먹는 겁쟁이나 마찬가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이 오면 마음 한 구석이 설레었었다. 그건 꽃을 좋아하는 할머니와 같이 따스한 봄 내음을 만끽하러 다니기 좋은 봄이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들뜨기 충분했다.


"할머니~ 이제 날씨 따뜻해지면 맛있는 것도 먹고 예쁜 꽃구경하러 나들이 가요!"


그날이 있기 전까지는 봄이라는 계절은 항상 나를 기다리게 하고 설레게 했는데, 이젠 봄이 오는 게 마냥 기쁘고 설레지만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관심사 여행 커뮤니티 동호회 사람들은 새해 초부터 봄의 소식을 기다리며 아주 신나고 즐거운 여행 일기를 적고 공유하고 있다. 


'나도 봄이 올 적엔 저렇게 설레고 즐거워했는데...' 


돌아온 봄의 소식에 행복해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이질적이고 담담하게 봄을 받아들이게 된 현재의 내 모습이 다소 낯설었다. 


춥고 외롭고 웅크려지는 겨울을 지나 봄이 오면 모두 다 행복할 거라고... 그럼 좋은 거라고... 만개한 꽃을 보는 건 행복한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한평생을 살았던 내가 아름다운 봄이 왜 그리 슬퍼 보이는 것인지,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더 슬프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아주 잔잔하게 받아들이는 중이다.  


꽃봉오리가 터질 무렵에는 도저히 다시 글을 보고 적을 자신이 없어 봄비 소식을 맞자마자 그날의 기억을 되살려 적어본다.  


할머니가 쓰러지셨던 작년 3월. 벚꽃을 보러 가기로 약속했던 봄날의 어느 날 저녁이었다. 


© lucas_davies, 출처 Unsplash


할머니와 늘 통화하던 저녁 시간에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나와의 통화 때문에 할머니는 핸드폰을 늘 곁에 두시는 편이었다. 


하지만 가끔 말썽이 많던 핸드폰 때문에 해약도 못하고서 보험처럼 남겨뒀던 집전화에도 여러 번 전화했지만 수신음만 들려왔다. 


할머니는 끝끝내 전화연결이 되지 않았고 당장 찾아갈 수 없어서 그때 다니시던 주간센터 센터장님께 집에 한번 가봐 달라고 부탁드렸었다. 


불안한 예감은 틀림없었고, 할머니가 쓰러져 있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할머니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 3곳의 응급실을 2시간 정도 배회하며 제대로 된 검사나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센터장님을 통해 들었었다.


15분 내 대학병원이 있었지만 자리가 없었다는 이유로 할머니는 2시간 정도의 시간을 소요하며 두 군데의 병원으로 도로 위에서 골든타임을 소모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분통이 터진다... 


나의 연락이 시발점이 되어 가족들에게 전해진 할머니의 응급상황으로 응급실에 방문해서 본 할머니의 반응은 너무나 태연했고 예전처럼 잠시 지나가는 바람정도의 사건으로 여겼을 정도로 할머니는 반갑게 알아보고 반겼다고 한다. 


하지만 그날 이후부터 할머니는 확연하게 상태가 급속도로 안 좋아지신 것 같다. 뇌검사에 이어 수술까지 잡혀, 중증환자로 아무도 면회할 수 없었던 2주간의 시간. 지금 생각보다 너무 무섭고 슬프고 괴로웠던 날들이었다. 


우리가 너무나 그리워할 할머니의 예전 모습은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가족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식물인간과 마친가 지였던 중증환자에서 편마비의 모습으로 이제는 그 누구의 보살핌이 없다면 그대로 삶을 마감할 지도로 모를 신체를 가지게 됐고, 우리의 눈에는 말 못 하는 아기나 마찬가지로 10개월간의 침묵의 대화로 단지 감정을 읽는 눈빛을 주고받을 뿐이었다. 


어쩌면 지금 몸은 어른이지만 아기 같은 할머니를 만나게 되면서 곁에 있음에 감사하면서도 누구에겐 절망적이고 누구에겐 포기, 누구에겐 아직 희망일지도 모를 그런 감정의 변화를 느끼며 매일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렇게 글을 적고 있는 순간도 수심밑으로 내려앉는 듯이 매우 가슴이 답답하며 괴롭지만... 


이렇게라도 적어두지 않는다면 할머니를 기억하고 떠올리기 더 힘들어질 시간도, 또, 할머니를 보고 싶을 때 찾아갈 공간도 줄어들 것 같아서 힘겹게 한 자 한 글씩 남겨보고 있다. 


할머니가 언제까지 건강하게 내 곁에 계실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게 오산이었고 오만이었다. 영원이라는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영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공식이 할머니에겐 적용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었던 것 같다. 이날의 충격 때문인지 내 삶의 첫 슬픔을 안겨줬던 돌아가신 어머니의 이별이 오버랩처럼 떠올랐다. 


이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걸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를 통해 가장 큰 위로를 받으며 잊고 살았던 것 같다. 할머니는 내겐 그렇게 큰 위로를 줬던 존재였기 때문에 다시는 어머니처럼 잃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괴롭고 고통스러울지 모를 시간을 억지로 이어가는 게 아닐까?


할머니와의 병동생활을 할 때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볼 때면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할머니 오늘 하루는 좀 어떠셨어요?
봄바람이라도 아직 춥네요... 
할머니는 따뜻하게 지내고 계시면 좋겠어요. 
땀띠 날 수 있으니까 너무 덥지도 않게 딱, 알맞은 온도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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