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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이 Dec 13. 2020

임신은 처음이라(2)

Into the unknown : 엄마 준비 신고식

[1편에 이어서 계속]


한동안 몸도 마음도 굴곡 없는 시간들을 보냈다. 이제 비로소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생각하니 포기한 태교여행이 자꾸만 아쉽게 떠올랐다. 해외까지는 무리가 있다지만, 국내는 괜찮을 것 같단 생각에 가을맞이 경주여행을 기획해 다녀왔다.


꽤나 활동적인 여행을 즐기던 우리였는데, 맘맘보와 함께인지라 뭔가 여행의 색깔이 차분하게 변화한 느낌이 들었다. 손잡고 보문호수를 한 바퀴 돌며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도 했고, 딸기 케이크 맛집이라는 카페에 마주 앉아 서로 밀린 이야기들을 풀어내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임신 초기에 겪었던 감정적 동요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꺼내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남편은 그렇게 우리가 바라던 일이 이루어졌는데도 온전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나를, 섬세한 내 감정선을 쉬이 공감해 줄 순 없을 것 같아 다음에 얘기하자 하고 마음에 묻었다.


연인이나 부부라 해서 모든 감정선을 공유하는 것이 매번 꼭 맞지도, 그게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때론 각자가 스스로 견뎌야만 하는 시간들이 있고, 상대가 그 시간 동안 어떤 마음을 품고 있을지 궁금하더라도 먼저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그저 옆에서 기다려주는 미덕도 필요하다 생각한다. 남편은 그런 면에서 아주 훌륭한 미덕을 가진 사람이다. 호들갑 떨지 않고, 생색내지 않고, 감정과잉인 나를 늘 묵묵히 받쳐주고 있는 고마운 내편. 어쩌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내가 잘 알기에 모든 걸 당장에 공유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평안함을 얻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 여행을 기억에 오래 남게 만들어준 이유가 또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스냅사진 촬영 이벤트였다. 미쉐린 같은 모습으로 만삭 사진을 찍을 자신이 없어서, 일부러 경주에서 중삭 스냅(?) 촬영을 신청했다. 촬영 전만 해도 내가 왜 이 귀찮은 일에 스스로 발을 담갔을까 후회했는데, 오래간만에 헤어 메이크업하고 예쁜 옷을 차려입으니 그런 내 모습이 낯설고도 예뻐 참 뜻하지 않은 행복감을 만끽했다.


태동, 태담 등 아이와 하루하루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이 늘다 보니 언제부턴가 자연스레 아이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것이 두꺼운 화장이든, 파마약이든, 하이힐이든 초기엔 아이를 위해 포기할 것이 너무 많다 푸념했는데, 아이에 대한 애착이 두터워질수록 자연스레 마음에서 내키지 않더라. 그리하여 본의 아니게 자연미를 대 방출하는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드니 늘어가는 몸무게와 함께 최고조의 외모 비수기가 찾아왔고, 그것이 내 자존감을 많이도 갉아먹었다. 중기에 일어난 대부분의 감정 동요는 사실 쭈굴한 외모에 따른 자신감 하락 때문이었지 싶다. 남편이 아무리 배 나와도 예쁘다, 민낯도 예쁘다 (선의의) 거짓 서린 말을 해도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았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작정하고 꾸민 그 날의 내 모습이 한동안 쭈굴 했던 내 자아를 고개 들게 만들었달까. 나를 토닥여준, 따뜻한 일요일 오후 세시 같았던 여행이었다.


여운 깊었던 가을을 보내고 다음 계절을 맞았다. 이 계절만 무사히 잘 넘기면 아기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춥지만 그 어느 때보다 희망찼던 겨울이었다. 맘맘보와 함께하는 첫 크리스마스는 유키 구라모토 콘서트로 보냈다. 그 바로 전 해 크리스마스를 싸이 올나잇 콘서트로 보낸 것과 너무 대조적이라 예매를 하면서도 변화한 우리 모습에 뜻 모를 웃음이 났다. 오래간만에 옛 일터(?)인 예술의 전당을 찾아, 학생 때 좋아했던 유키 할아버지의 명곡을 라이브로 재현해 들으니 소소한 감동이 밀려왔다. 시즌에 맞게 크리스마스 노래 메들리를 오케스트라 연주로 들려주기도 했는데, 맘맘보평소보다 더 힘찬 태동으로 그의 기분 좋은 바이브를 전해주어 공연 내내 참 행복했다. 녀석의 기분이 내게 전달되고, 내 기분이 녀석의 기분에 반영되는 그런 신비한 경험들이 날로 늘어갔다. 주말이면 가만히 소파에 앉아 핫초코를 마시며 녀석의 움직임에 따라 들썩거리는 배 모양을 한참이나 지켜보기도 했다. 마치 내게 재잘거리는 듯한 녀석의 모습이 녀석과 앞으로 함께 할 많은 시간들을 꿈꾸게 했다. 그렇게 행복한 한겨울밤의 꿈을 꾸며 또 한 계절을 보냈다.   




#후기 : 더 이상 미룰 시간이 없다! 너를 맞을 준비, 나를 위한 자유시간.


후기는 친정에 와서 보냈다. 친정 근처 병원에서 출산하고 두어 달간 엄마 곁에서 몸조리하면 좋을 것 같단 생각에서였는데, 결과론적으로 잘한 결정이었던 듯싶다. 출산이나 육아에 있어 도움을 많이 받아서라기 보다는 친정에 머무는 기간 동안 결혼 전의 철부지 딸내미로 돌아가 부모님과 소소한 시간들을 많이 공유할 수 있었던 점이 사실 더 좋았다.


임신 후기를 보내며 가장 기억에 남고, 또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은 바로 임산부 요가를 시작한 일이다. 임신 중 운동이 좋다고는 들었지만, 중기까지는 가벼운 산책 외에 특별한 활동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임신 직전 겪었던 해프닝[임신은 처음이라(1) 참조] 때문인지 몸을 쓰는 일에 많이 위축됐었기도 했고, 퇴근 후 운동은 아무래도 무리다 싶어 기약 없이 나중으로 미뤄뒀다. 후기에 접어드니 이제 녀석에게 제법 믿음 비슷한 것이 생겨 운동을 도전해봐도 좋겠다 싶었고, 때마침 출산 휴가의 여유까지 생겨 바로 친정 근처 요가학원에 등록했다.


처음엔 임산부 요가라 해서 가벼이 스트레칭을 하는 수준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학생들이 임산부라는 사실을 잊으신 것 마냥 가열차게 굴려주시는 선생님 덕에 '찐 운동'을 경험할 수 있었다. 매 시간 짐볼, 폼롤러, 젠링 등 다양한 소도구를 이용하여 골반 근육은 강화하고 임신 중 뭉치고 결린 근육들은 시원하게 풀 수 있도록 열혈 지도해주시는 덕에 요가 클래스는 내게 재미와 효용을 함께 안겨주는 최애 시간으로 등극했다.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르겠지만, 운동을 시작하고 난 이후 임신 중 불쑥불쑥 찾아왔던 우울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지만 운동 그 자체보다도 더 좋았던 건, 직장인들이 전쟁 같은 출근을 마친 아침 열시 반, 여유 있게 아침을 차려먹고 요가 클래스로 저벅저벅 걸어가는 내 모습이었다. 회사를 다닐 땐 꿈도 못 꾸었을 사치를 맘맘보덕에 마치 일상처럼 누리는 기분이랄까. 녀석에게 고마워 더 알차게 운동했는지도 모르겠다.


클래스를 마친 이후에도 딱히 스케줄이 없는 임산부들은 따듯한 차를 한잔 마신다는 명목으로 공용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 어떤 사람인지는 알길 없지만, 임산부라는 끈끈한 교집합 속에서 우리는 진심 어린 공감을 주고받는 대화가 가능했다. 각자가 임신 중 겪은 에피소드를 풀어내면 모두가 공감의 추임새를 아끼지 않았고, 출산과 분만 관련 정보를 교류하며 모임에 유익함까지 더했다. 그들 덕인지, 요가 클래스는 언제 돌아봐도 참 유쾌한 기억으로 떠오른다.


꿀 같은 출산휴가의 즐거움에 취해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다가 어느 날 요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아파트 화단에 핀 개나리를 보고 그제야 아차 싶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본격적으로 온오프라인 맘 선배들의 정보를 정리하여 출산 준비품 리스트를 작성했다. 국민 모빌, 국민 젖병, 국민 속싸개 등 출산 용품의 세계는 정말이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수많은 옵션과 드넓은 가격의 스펙트럼 속에 고민과 결정의 연속인 나날들이 이어졌다. 이것은 마치 결혼 준비 과정을 떠올리게 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물품을 사용하는 주체가 아기였기에 그때보다 "좋은" 것을 골라야 한다는 압박감이 좀 더 컸다는 점이다.


매일 아침 눈뜨면, 아직까지 구비되어있지 못한 한 물품들을 체크하여 주문하고 또 주문했다. 우스운 점은 그 물품이 어느 시점에 무슨 용도로 누굴 위해서 사용될지 전혀 모른 채 주문했다는 점이다. 일단 많은 것을 쟁여놔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숙제처럼 소비했다.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 도착한 택배박스들이 매일 탑처럼 쌓여갔다. 아기 세탁기는 하루하루 열일을 거듭했고, 햇빛에 살균 샤워를 마친 손수건, 배냇저고리, 속싸개 등이 차곡히 내 서랍들을 점령했다.


주중엔 이렇게 아기를 맞을 준비에 박차를 가했지만, 주말엔 모든 것을 잊고 남편과의 시간을 보내는데 주력했다. 완전한 셋이 되기 전 둘만의 추억을 더 많이 저장해놓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마치 연애 초기처럼 서울 경기 일대의 모든 데이트 코스들을 섭렵하며 매 데이트를 마지막인 것처럼 즐기고, 매 끼니를 최후의 만찬처럼 먹었다. 한동안 친구와의 모임도 어려울 것 같아 연락이 닿는 지인이란 지인은 다 만났다. 거동이 슬슬 불편해져 가는 몸 때문에 만나서 할 수 있는 거라곤 맛있는 것을 먹으며 수다 떠는 일뿐이라 막달에 살이 가파르게 불었다. 그래도 정말이지 그 시간들에 대한 후회는 1도 없다. 가장 보람차고 뜻깊게 쓴 시간이 아닐까 싶다.


출산 예정일 2주 전 즈음하여, 배 아래쪽이 갑자기 묵직해진 느낌이 들었다. 배가 커져서 누르는 느낌이 아니라 뭔가 이전과 달리 밑이 빠질듯한 생리통 같은 증상이 생겨 예정일보다 빨리 출산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출산 가방을 미리 싸 두고, 네이버 카페를 뒤적거리며 출산 후기라는 후기는 다 찾아 섭렵했다. 고통에 대한 역치가 지극히 낮은 나 같은 사람도 자연분만이 가능한지 확인해 보고 싶었고, 놈의 모범생 기질 탓에 출산 시 팁이 될만한 정보를 모아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둬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였다.


정기 검진에서 선생님께 내 증상을 이야기하고 내진을 받았다. 선생님은 아직 아이가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초산은 보통 예정일을 지나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너무 긴장하지 말라셨다. 그러나 녀석은 과학적(?) 검 결과를 깨고 엄마의 육감대로 그로부터 4일 뒤 세상의 빛을 보았다. 출산일은 아기가 스스로 정하는 것이라는 그 말이 정말 맞나 보다.


예정일보다 열흘이나 빨리 내 품에 들어온 녀석. 그렇게 봄과 함께 그 녀석이 우리에게 찾아왔다.




# 임신기간을 마치며 : 아이 '때문에' 가 아니라 아이를 '위해'

 

엄마가 되기 위한 40주(정확히는 38.4주)간의 신고식을 마쳤다. 태아와 교감을 나눌 수 있어 행복했고, 불쑥불쑥 치미는 출산의 리스크를 상상하며 두려웠고, 몸과 마음의 변화가 야기하는 백만 가지 감정들 탓에 혼란스러웠다.


이 길고도 다사다난했던 임신기간 끝에 내가 배우고 다짐한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 탓은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아름답지만은 않은 이 세상에 아이를 불러들인 것은 온전히 나와 남편의 선택이었고, 아이는 감사하게도 그저 우리의 부름에 응해주었을 뿐이다. 때문에 아이는 언제나 무고하다.


처음 아이를 품었을 땐, 아이 '때문에' 포기해야 할 많은 것들을 떠올리며 때때로 우울하기도, 갑갑하기도 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녀석이 내게 어떠한 선택을 강요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매 순간 나는 내 주체적인 판단으로 아이를 '위해' 옳다고 믿는 것을 선택하고 행했을 뿐이었다.


내 남은 인생에 무수한 선택의 기로에서 내가 택하는 길이 아이 낳기 이전과 같을 순 없겠지만, 또는 때때로 내게 옵션이라는 것이 아예 존재치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아이있는 삶을 택한 결과로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지 아이 탓이 아니라는 것. 이 지당하고도 합당한 사실을 나는 임신기간 동안 내 마음 깊이 새기게 되었다. 그리고 이 마음과 다짐은 후에 출산-육아-복직의 과정에서 내 멘탈을 단단히 부여잡아주는, 지속하여 행복한 육아를 영위할 수 있게 해주는 정신적 바탕이 되었다. 내게 임신기간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바로 이 점이 아닐까.


임신기간의 종료와 함께 이제 드디어 예비 엄마에서 진짜 엄마로 발을 딛는다. Into the unkn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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