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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Mar 11. 2024

다 큰 나는 여전히 숨바꼭질를 한다.

어릴 적 숨바꼭질을 할 때면 술래가 절대 찾지 못할 거라 생각한 곳을 찾아 들어갔다. 

인적이 드문 곳. 평소 사람들 발길이 닿지 않는 곳. 구석진 곳. 어두운 곳. 

건물 사이 구석 틈이나, 지하실 계단 아래. 심지어 자동차 아래에 기어들어가 숨기도 했다.


멀리서 "찾는다~"하는 소리가 들려오면 숨까지 헙! 삼켰다.

'설마 들키진 않겠지?'

괜히 숨소리마저 숨기게 되고 술래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발소리가 가까워지면 긴장된 심장박동이 내 귀에까지 들린다. 그럴 리 없지만 두근거리는 소리 때문에 술래한테 들킬까 봐 긴장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주변 소리가 멀어지면 겨우 한숨을 뱉는다. 쿵쾅이던 박동도 점차 사그라든다. 바깥을 향하던 모든 신경은 그제야 나를 살핀다.

어둠이 무서워지기 시작하고, 멀어진 일상의 소음은 단절감을 만든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거란 생각은 으스스하다. 귀신이나 괴물이 나올 것 같다. 지독하게 잘 숨은 탓에 아무도 수하러 오지 않을 것 같다. 


나갈까? 조금 더 기다릴까? 

"못 찾겠다 꾀꼬리~ 신발 벗고 나와라~"

시간이 늘어질듯한 기다림 속에서 술레의 외침이 빛처럼 퍼진다. 불안감을 뒤에 달고 후다닥 뛰쳐나온다. 뒤를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조금이라도 빨리 세상 속으로, 사람들 속으로, 친구들 곁으로 돌아간다.




지금은 많은 시간이 지나 그 시절쯤의 자식들이 생겼다. 아이들과 놀아주기 위해 숨바꼭질을 할 때가 있지만 커튼뒤에 숨거나 침대 뒤 바닥에 웅크리고 숨는 정도다. 


더 이상 옛날 같은 숨바꼭질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다. 

마음. 어른이 되었기에 더욱 숨겨야 하는 것. 

남 눈치 안 보고 할 말 다 내뱉는 성격이 아니라서 습관처럼 문제와 감정은 마음속 독방에 쌓는다. '가장의 무게'란 말까지 한데 묶어 가장 깊고 어두운 곳에 숨겨둔다. 끝이 아니다. 시간/나이라는 것은 그 독방을 더 깊고 어둡게 만든다.


이제 술래는 없다. 그곳이 무서우면 나오면 될 일이다. 그렇데 이제는 그 속보다 바깥이 더 무섭다. 어릴 적보다 더 겁쟁이가 된 거다. 

어른이 되면 용감해지고 더 이상 무섭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는 기다린다. 숨지 말고 나오라는 나 자신의 소리를.


"못 찾겠다 꾀꼬리- 신발 벗고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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