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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Sep 10. 2020

우리에게는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스물한 번째 소란

저와는 다른 생각과 경험을 가진 세대가 생겨나지 않을까요?


인터뷰. 현정-초등성평등연구회 솜, 콜




 스물한 번째 소란은 초등성평등연구회 소속 초등교사 솜과 콜의 이야기이다. 초등성평등연구회는 공교육 현장에서 난무하는 소수자 혐오와 성차별적 관행에 문제의식을 느낀 초등교사들의 모임으로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발족했다. 이들은 정기 모임을 통해 페미니즘 교육 현안에 대해 논하며, 교과서 속 성 불평등 사례 찾기, 젠더적 관점에서 미디어 콘텐츠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기, 성별 간 임금 격차에 대해 알고 게임을 통해 간접 경험해보기 등 다양한 성평등 교육안을 개발하여 교육현장에서 적용하고 있다. 또한 #우리에겐_페미니스트_선생님이_필요합니다 해시태그 운동을 진행한 바 있으며, <학교에 페미니즘을> 등의 도서 집필과 강연을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가며 세상에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을 알리고 있다. 여성 청년 노동자이자, 교육자이자, 행정가이기도 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솜 : 안녕하세요. 2017년부터 초등성평등연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9년 차 초등교사 솜입니다. 페미니즘 공부를 하고 있고,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차별들을 마주하고 이야기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콜 : 안녕하세요. 초등성평등연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초등교사 콜입니다. 전반적인 사회의 차별에 민감한 편입니다. 경계를 그어 범주화하고 정의 내리는 것에는 언제나 권력이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권력 문제를 학교 안에서 풀어보고 싶어서 초등성평등연구회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 초등교사로서 하고 계시는 노동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솜 : 교육자로서 여러 과목의 수업을 하고,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파악하고자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갈등을 파악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규칙을 정하는 교실의 행정가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아침에 출근하면 방역 작업부터 해요. 알코올로 손이 많이 닿는 곳을 닦고, 환기를 시키고 나서 업무 메신저를 체크하면 학생들이 옵니다. 그때부터는 학생들과 함께 하는 생활의 시작이죠. 학생들과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좋아하는 것들을 나누고 소통하며 생활하고자 합니다. 학생들이 하교하고 나면 내일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체크하고 퇴근합니다.


콜 :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이 정확하게 정해져 있지는 않아요. 학교마다 다른데, 8시 30분에 출근해서 4시 40분에 퇴근하는 게 기본이에요. 저는 보통 7시 30분에 출근하고 늦게는 9시 반에 퇴근하기도 합니다. 하는 일은 수업 준비와 행정 업무 등 다양합니다. 교육과정을 연구하는 연구자의 모습도 있고, 학교를 운영하기 위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는 행정가의 모습도 있습니다. 아이들 평가를 정리하고, 교직원 회의를 하고, 연수를 가기도 합니다. 교사마다 방학을 보내는 방법은 다 다른 편이에요. 지금은 방학을 한 지 2주가 되었는데, 캠프를 진행해서 저는 2주 내내 학교에 갔어요. 관리자급이나 부장교사는 학교에 출근하는 날이 많습니다.



-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학기 중에 선생님이 아프다는 이유로 안 오신 날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실제로 사람이 안 아플 리가 없잖아요. 몸이 안 좋을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콜 :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아프면 집에서 쉬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지만 학교에서는 실현되기 쉽지 않아요. 쉬는 걸 이해 못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내가 쉬게 되면 동료 교사들에게 짐을 지워준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특히 목이 아픈 날이 정말 많죠.


솜 : 2학기 중반 즈음이 되면 거의 모든 선생님들이 목소리가 안 나오는 상황이 되죠. (웃음)


콜 : 그럴 땐 PPT로 글을 써서 소통해요. 학생들에게 “선생님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라고 하면서. (웃음)



- 초등교사는 ‘여성이 하기 좋은 직업’이라는 인식이 있잖아요. 여성 청년 노동자로서 실제로 그렇다고 생각하시나요?


콜 :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고, 월급이 밀리지 않으며 해마다 늘고, 사고를 치지 않는다면 (웃음) 그만두기 전까지 계속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회에서 흔히 통용되는 ‘여성이 가지기 좋은 직업’은 ‘결혼한 여성이 가지기에 좋은 직업’이죠, 사실상. 양육과 병행하기에 좋은 직업. 육아휴직 쉽고, 돌아와서 직장이 보장되고, 퇴근이 빠른 편이고, 방학이 있어서 엄마의 역할을 하기 좋은 직업이란 거죠. 그만큼 교직 사회는 결혼이 당연한 사회고, 결혼하지 않으면 덜 자랐다고 보는 분위기가 있어요. 


솜 : 사회 평균적으로 여성에게 주어지는 임금보다는 높은 임금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사회적 인식도 좋은 편이고. 그런데 단점 역시 사회적 인식이에요. 교대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여자 교사는 1등 신붓감이라던데, 좋겠네?” 같은 말들을 숱하게 들어요. 저희를 전문가, 교육자가 아닌 ‘신붓감, 결혼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교직 사회에서도 결혼과 출산을 당연하게 여기고, 압박을 하는 부분이 있어요. 소개팅을 계속 시켜 주고, “젊은 여자 선생님들은 국가를 위해서라도 빨리 결혼하고 애를 낳아야지”라고 50~60대 남성 관리자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걸 직접 듣기도 했어요. 


결혼하지 않은 선생님에게는 ‘노처녀’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사소한 행동, 옷 입는 것까지 결혼하지 않음과 연관을 시키기도 하고요. “저 선생님은, 결혼을 안 해서 저렇게 애처럼 다니는 거지.” 이런 식으로요. 학부모에게 그런 말을 듣는 경우도 많아요. “선생님은 아이가 없어서 모르시겠지만~”이라고 하면서 전문성을 시험하고 무시하는 듯한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세요. 하지만 남자 선생님들은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하더라고요. 여자 교사들과 달리 남자 교사들은 교직 사회에서 굉장히 환영받는 분위기예요. 제가 교대 다닐 때 남자 선배 한 분은 귀한 남자, 줄여서 ‘귀남’이라고 불렸어요. (웃음) 이게 불과 10년 전 이야기예요. 


콜 : 저도 이름 때문에 남자 선생님인 줄 알고 환영받다가, 실제로 얼굴을 보고 실망하시는 걸 본 적이 많아요. 또 교장 선생님이, 부장은 남자 선생님이 해야 한다면서 저보다 경력이 낮은 남자 선생님에게 체육부장을 시키기도 하셨어요. 여초 직군이지만 관리자, 부장교사는 남성 비율이 높죠. 그리고 소수의 남자 선생님이 정말 환영받는 분위기예요. 여자 선생님이 관리자를 하면 독하고 기가 셀 것이라고 하며 ‘마녀’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 여초 직군이라고 해서 성차별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네요.


솜 : 그렇죠. 안전한 공간인지도 의문이에요. 교사가 학부모에게 반말을 듣고 무시받는 일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위협을 받는 일도 적지 않아요. 또 지자체에서는 학교를 공공 개방하겠다고 하잖아요. 이해 못 하는 부분은 아니지만 누군가 출입했을 때 그 사람이 학부모인지, 다른 업무 차 온 사람인지, 어떤 의도를 갖고 온 사람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보니 학교에서 낯선 사람, 특히 남성을 만나면 경계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학생들도 충분히 보호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해요. 


콜 : 교직 사회가, 여성이 차별받지 않는 평등하고 안전한 일터라고 단언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사회에서 나타나는 성차별과 결혼에 대한 압박이 교직 사회에서도 그대로 나타나요. 또 청소년 단체 활동처럼 시간이 많이 들어서 보통 선생님들이 선호하지 않는 업무가 결혼하지 않은 선생님께 가는 경우도 많아요. 기혼자 선생님들은 바쁘다는 거죠. 저희도 나름 바쁜데. (웃음)


솜 : 여초 직군이라 여성 위주의 조직 문화를 이룰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해요. 하지만 성별 고정관념이 심하신 분들도 많고, 제가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보통 신기해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죠. 


콜 : 공부를 열심히 해서 교대에 들어가고, 그 안에서 또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임용에 통과해서,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분들이 대부분이잖아요. 사회의 기준에서 봤을 때 모범적인 사람들. 그러다 보니 거기에서 벗어난, 튀는 사람들을 보는 시선이 좋지 않아요. 고정관념도 심하시고요. 변하고 바꾸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혐오표현을 사용하시는 분들을 마주하면 좌절할 때가 많아요.



- 교직 사회에서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밝히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두 분은 어떤 계기로 초등성평등연구회 활동을 하게 되었나요?


솜 : 여성으로 살아왔다면 차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부터 차별을 느끼는 순간이 많았고, 교사가 되고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이러한 차별들에 구체적인 이름을 불일 수 있게 되었어요.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읽으면서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이렇게 적확한 표현이 없다고 생각했고, 동시에 이게 나만의 경험이 아니라 공통의 경험이며 사회적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운 좋게 주변에 이런 생각을 나눌 친구들이 많았는데, 처음부터 이런 생각이 교실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초등성평등연구회를 만든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도 이런 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요?”라는 말을 하셨을 때, 뭔가 느끼게 됐죠. 그래서 저도 초등성평등연구회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후 교실에서 학생들 사이에서의 미세한 차별이나 권력관계를 볼 수 있게 되었고, 제 교직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어요.


콜 : 어렸을 때, 집안에 남아선호사상이 심했어요. 그때부터 차별에 민감했고 차별에 저항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어릴 때 학교를 다니면서 ‘양성평등’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게 됐어요. 신세계를 경험한 거죠. “와, 이거 내가 매일 하던 생각이잖아?” (웃음) 교사가 되고 나서는 외국에서 1년 동안 산 적이 있는데, ‘이방인 아시아 여성’이라는, 그 사회의 소수자 중의 소수자로서 차별과 혐오를 직접 마주하는 경험을 하게 됐죠.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그리고 어렸을 때의 경험들과 연결 지어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한국에 가면 초등성평등연구회에 들어가서 다양한 차별과 혐오에 저항하고, 평등한 교실을 만들기 위해 활동해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된 계기였어요. 


솜 : 같은 학년 선생님들이 저를 소개할 때, “이 분은 페미니스트야.” 이렇게 소개하시기도 해요. (웃음) 당황스럽지만 인정하죠. 하지만 굳이 갈등을 일으키는 얘기는 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래도 여성이라면 어쩔 수 없이 공감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생리나, 결혼 같은 것들. 그런 부분에서는 공통분모가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 같아요. 


콜 : 대신 말해주면 속 시원해하는 것 같아요. 후배들이 당하는 부당한 일들 있잖아요. 예를 들면 노래방에서 블루스 추게 하고. 그런 일 겪으실 때 “왜 데리고 가냐” 이렇게 말하면 좋아하시고. 저도 어느 정도 연차가 찼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이죠. 이런 일들이 종종 있다 보니 “인권 챙기는 사람”이라고 소문이 났어요. (웃음)



- 요즘 유튜브 등 미디어에서 성별 이분법과 편견에 기반한 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학생들은 이런 콘텐츠에 많은 영향을 받을 텐데, 이런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신가요?


콜 : 미디어에 노출되다 보니 사회의 고정관념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여자 색’, ‘남자 색’ 같은 거나, 여성이 하는 일, 남성이 하는 일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런 편견들이 교사에 의해 강화될 수도 있고 약화될 수도 있기 때문에 다양한 사례들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솜 : 교사 개인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는 사실 조금 의문이에요. 올해에 제가 최선을 다해 교육한다고 해도 내년에 다른 선생님을 만나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고, 가정의 영향을 받아 편견이 강화되기도 하고.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과 다르게 변화가 보일 때가 많아요. 그래서 더 열심히 미디어 속 성차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잘못된 건 잘못되었다고 알려주려고 해요. 온전히 저의 영향만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변화가 보일 때 뿌듯함을 느껴요.



- 초성연에서 ‘교과서 속 성차별 사례 찾기’나 ‘역사 속 여성 위인 찾아 발표하기’ 등 다양한 성평등 교육 방법을 개발하여 수업에 적용하신다고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정해진 교육과정 속에서 새로운 성평등 교육을 시도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솜 : 학교에서는 차별의 존재에 대해 잘 가르치지 않고, 평등에 대해 말하기도 쉽지 않아요. 그래서 관련 교과랑 연계해서 수업을 하죠. 수학 수업에서 그래프 그리기를 설명하며 성별임금격차를 적용한다거나. 요즘은 재구성을 많이 권장하는 편이에요. 교과서 대신 그림책이나 동영상을 활용하여 수업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최소한의 성취기준을 달성해야 하는데, 성평등은 성취기준 항목에 포함이 되지 않아요. 그리고 교육부에서 제시하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도 없어요. 교사가 새로운 방식의 교육을 시도하기 위한 제도적 안전망이 존재하지 않는 거죠. 실제로 민원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어요.


콜 : 학부모뿐만 아니라 주로 관계없는 사람들이 실제로 민원을 많이 넣으세요. ‘성평등’이라는 말만 들어가면 동성애랑 엮으시는. (웃음). 교사들이 처음부터 나태해지는 것은 아니에요. 아이디어를 내서 새로운 교육을 시도하고 싶어 하는 분들도 많아요, 그러면 “너는 왜 이렇게 튀어?”이런 반응들이 돌아오니까 좌절하고, 하라는 대로 하고, 틀에 박힌 교육을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거죠.


솜 : 그러면 또 “내가 가르쳐도 저것보단 낫겠다.”라는 식의 무시를 받기도 해요. 여기서 초등교사와 어린이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드러나는 거죠. 어린아이들은 단순하니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라고 무시하는 시선이죠. 남초 직군이었으면 안 이랬을 거예요.



- 교사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선생님이자, 동시에 같은 학급 공동체의 구성원이기도 하잖아요. 이런 부분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어떤 마음으로 학생들을 대하나요?


콜 : 학생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하겠다고 선언하며 일 년을 시작해요. 서로를 인간으로 대하고 존중하는 것. 이것을 지키려면 교사로서의 권위를 일정 부분 내려놓아야 하죠. “나는 교실의 왕이 아니라, 너희들을 보호하는 안전망”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솜 :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교사도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아요. 그래서 고마울 때 고맙다고, 미안할 때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며 감정을 공유하려고 해요. “선생님이 이 부분에서 실수했어. 미안해. 괜찮아?”라는 말을 의식적으로 하려고 노력하고, 학생들을 ‘작은 사람’,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는 사람’으로 보려고 하는 편이에요. 권위를 내려놓는 게 쉽지 않아요. 중요한 건 권위를 갖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필요할 때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사들이 관리자에게 치이고 민원에 치인다고 해서 교실에서도 약자인 것은 아니니까요.



- 초등교사로 일하면서 뿌듯했던 순간이나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솜 : 수업 시간에 ‘작년과 달라진 나의 모습’을 주제로 글쓰기를 한 적이 있어요. 한 학생이 “예전에 나는 남들이 나의 외모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많은 신경을 썼는데, 올해는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나의 편안함을 즐겼다.”라고 글을 썼어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제가 함께할 수 있었고, 조금이나마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생각에 기쁘고 뿌듯했어요. 또 체육대회에서 계주는 보통 선수를 뽑아서 하잖아요. 마지막 주자는 남자로 하는 관행이 있었어요. 그런데 계주에 모든 어린이들이 참가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마지막 주자를 랜덤으로 뽑아 여학생으로 했는데, 잘 뛰었어요. 작지만 저한테는 하나의 시도였거든요. 아이들과 함께 하니 즐거움이랑 뿌듯함이 배가 되는 것 같았어요. ‘별 문제 없잖아. 더 잘 됐잖아.’라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어요. 


콜 : 2년 동안 여학생 스포츠클럽을 운영한 적이 있어요. 하루 일과 중에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서 다들 아침 일찍 등교해서 연습했고, 대회에 출전해서 크게 지는 바람에 울기도 했어요. 열심히 연습해서 나중에는 시에서 2등을 하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요. 그때 함께한 학생들은 졸업을 했고 저는 전근을 왔어요. 그리고 얼마 전에 만났는데 친구들이 “선생님, 그때 정말 재미있었어요. 옷을 어떻게 입든, 화장을 어떻게 하든 상관없이 같이 운동할 수 있었던 순간들이 너무 좋았어요.”라고 말해 줬어요. 저도 성장하고 그 아이들도 성장한 거죠. 나중에 저와는 다른 경험과 생각을 가진 세대가 생겨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뿌듯했어요. 저도 체육부장을 하면서 운동회 계주 마지막 주자가 남학생이던 걸 여학생으로 바꿨는데, 그런 부분에서 계속 버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업무가 많고 힘들지만, 계속 버티고 있다 보면 언젠가 내가 바꿀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 오늘 인터뷰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 해주시겠어요?


솜 : 사회에서는 ‘교육’이라는 일을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콜 : 교사를 성직자처럼 바라보는 관점, 전문직으로 바라보는 관점, 노동자로 바라보는 관점이 있다고 배우는데, 그만큼 교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교사 생활을 해보니 성직자로서, 전문가로서 행동하기를 요구받지만 노동자로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서 ‘교육 노동’에 대한 관념이 정립된 게 아무것도 없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하죠.


솜 : 페미니즘이라는 게, 연대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교사로서 어떻게 연대하면서 노동권을 지키고 일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많이 해요. 학교 안에 정말 다양한 여성 노동자들이 계시잖아요. 무기계약직, 비정규직, 단기계약, 시간강사, 외부인력, 공무원, 교사 등. 교사들도, 사실은 학교라는 곳이 교사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도 노동의 현장이라는 걸 인식하고, 본인들의 노동권에 대해서도 인식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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