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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믄 Apr 04. 2022

코리빙하우스에서의 코로나 생존기

코로나에 걸렸다. 하루 10시간 이상 붙어있는 팀원들이 우르르 걸려도, 같이 사는 하메들, 심지어 내 룸메마저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백신 0차인 나 혼자 멀쩡해 슈퍼항체 의심을 받던 차였다. 내 면역력으로 인류에 이바지하고 그 대가로 떼부자가 될 생각이었는데, 난데없이 양성 판정을 받아버렸다.


증상이 시작된 건 회사에서 급하게 물류 지원이 필요하다고 해서 물류창고에 다녀온 다음 날이었다. 원래 기관지가 안 좋기도 하고, 하루 종일 먼지를 뒤집어쓰고 일했으니 당연히 목이 아플 법했다. 같이 차를 타고 이동했던 한 명이 자가 키트 두 줄이 떴다는 연락을 해오기 전까진 그렇게 생각했다. 괜히 기분이 쎄해서 하루 재택근무를 했고, 또 하루는 출근을 했고, 프로 직장인답게 금요일이 지나 주말이 되자마자 상태가 빠르게 호전되어 신나게 술을 마셨더랬다. 그리고 다시 월요일, 역시 목이 아픈 게 맞았다.


자가검사 키트 음성. 그래서 우선 출근은 했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목도 아프고, 약간 열나는 것도 같고, 몸이 무겁고... 전형적인 일하기 싫어증이었다. 나는 평소 정말 심각한 월요병을 앓고 있는데, 이 병이 얼마나 심각하냐면 실제로 몸이 아파서 약을 챙겨 먹거나 집으로 빠르게 퇴근해야 할 정도다. 3년 차가 된 지금은 월요일에 아픈 건 그냥 없는 증상인 셈 치고 무시하게 됐지만, 이번은 달랐다. 일하기 싫어증 증세에 현기증이 더해졌다. 신입 병아리들이 재잘재잘 얘기하는데 멍한 기분에 얘기가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얼른 팀 메신저에 '원랜 목만 아팠는데 갑자기 현기증이 나서 ㅠ 신속항원검사받고 올게요!'라고 보낸 뒤 '슬퍼요' 표시를 일곱 개쯤 받아 지하 병원으로 향했다.


필수 직업군들을 제외하곤 나보다 코로나 검사를 많이 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백신 0차인 사람이 백신 패스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주 1~2회는 무조건 긴 면봉을 코에 찔러 넣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도 이 의사 선생님의 검사는 '이건 진짜다!' 싶을 정도의 깊이였다. 찌르는 순간, 이번엔 진짜 양성이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정말 선명한 두 줄과 함께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1일 차 - 월요일]

점심 : 회사에서 먹음

저녁 : 맥도날드 슈비버거

나의 격리 생활의 가장 큰 난관은 음식을 주문하는 것이었다. 내가 사는 코리빙하우스는 한 마디로 원룸형 쉐어하우스다. 방은 화장실, 냉장고까지 갖춰져 있는 원룸이지만 거실이나 주방, 세탁실 등을 공용으로 사용한다. 방 안에는 주방 시설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려면 공용공간으로 나가야 하고, 그 말인즉슨, 이 방에 갇힌 신세가 된 이상 어떠한 음식물 쓰레기도 방 밖으로 반출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부터 내 나름의 '음식물쓰레기 안 만들기 챌린지'가 시작됐다. 우선 저녁은 햄버거를 먹기로 했다. 햄버거라면 포장지도 종이니까 부피를 많이 차지하지 않고, 남기지도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슈비버거를 들고 씹으며 냉장고의 야채칸을 임시 음식물 보관함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음식물 쓰레기통이 아니라 보관함이라고 한 이유는, 냉장고 속에 들어있는 한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 아직 다 먹지 않은 음식이기 때문이다.


[2일 차 - 화요일]

점심 : 카레크림우동

저녁 : 스파이시 참치 포케

비대면 진료를 받았다. 엄청나게 아픈 데다, 목소리도 잘 안 나오고, 후각까지 잃었다는 내 주위 확진자들과 달리 나는 그냥 목만 아팠다. 그래서 첫날에도 약을 받지 않고 돌아온 거였는데, 엄마가 꼭 약을 받아다 먹어야 한다며 성화여서 미리 받아두는 셈 치고 약을 처방받았다. 그냥 미리 받아둔 거니 안 먹어도 된다는 나를 두고 엄마는 또 너는 미접종자라 꼭 약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항상 그렇듯 엄마 말이 맞았다. 약을 먹자마자 몸이 가벼워졌다.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몰랐는데 사실은 아프고 있었던 거였다. 내 몸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다. 정신이 과도하게 육체를 지배해버린 나는 안 아픈 몸엔 일하기 싫어증이라는 병을 주고, 아픈 몸엔 이깟거 아무것도 아니라며 무시해버린 셈이었다. 다시 한번 엄마 말을 잘 듣자고 생각하며 점심, 저녁 꼬박 챙겨 약을 털어 넣었다. 고민 끝에 격리 생활에 가장 적합한 음식은 한 그릇 메뉴라는 결론을 내렸다. 딸려오는 반찬이 많지 않고, 용기도 종이 재질로 되어있으니 쓰레기통에 구겨 넣을 수 있어서 좋았다.


[3일 차 - 수요일]

점심 : 철판볶음밥

저녁 : 반미 샌드위치

해바라기 새싹이 나왔다. 코로나로 격리되기 며칠 전 다이소에 쇼핑을 갔다가 해바라기 기르기 키트를 발견했는데, 대학 시절 기숙사에서 기르던 해바라기가 떠올라서 구매했다. 어두운 갈색 흙들 사이로 빼꼼 삐져나온 초록 새싹을 보면서 이거라도 심어두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손바닥만 한 방에 갇힌 지 이제 겨우 3일 차인데 이 공간에 나 말고 다른 생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위안이 됐다. 아무리 빨리 자라 봐야 아까 그 상태랑 별반 차이도 없을 텐데 자꾸자꾸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리고 신재 언니를 떠올렸다. 선녀방에 살 때 언니가 자꾸 식물들을 사모으며 애지중지하는 게 이해가 안 됐었는데, 언니가 이런 기분이었나 싶었다. 내가 해준 건 그냥 땅 조금 파서 씨앗 심고 물 몇 번 준 것뿐인데, 이렇게 기운차게 딱딱한 씨앗을 뚫고 고개를 내밀어주다니 마냥 내 새끼인 것처럼 기특하고 예뻤다.


[4일 차 - 목요일]

점심 : 까르보나라 리조또

저녁 : 차돌 쌀국수

목이 엄청나게 아프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목은 계속 아팠지만 이건 차원이 달랐다. 인터넷에서 코로나 확진 후기들을 보면 '목에서 칼춤 춘다'는 표현이 자주 보였는데, 이제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3일 차까지 목이 아픈 건 그냥 좀 칼칼한 정도? 이것도 약을 먹으면 고통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코로나에 걸린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는데, 이제는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었다. 매일매일 증상을 써보내라며 카톡을 보내온 엄마에게 상태를 보고하고, 다시 한번 비대면 진료로 더 센 약을 처방받았다. 아무리 내가 아픈 거 잘 모르는 둔한 사람이라지만 이 정도로 아프면 모를 수가 없었다. 약은 물론이고 물 삼키는 것조차 아파서 밥을 먹는 게 무서웠다. 그래도 약을 먹으려면 죽이라도 먹어야지 싶어 대충 비슷한 리조또를 시켰다. 목이 아프니까 잘 먹기 위해서는 넘기기 쉬운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목 아픈 데 제일 쥐약인 건 매운 음식이라는 걸 이 날 알았다. 리조또가 매콤했다.


[5일 차 - 금요일]

점심 : 차돌 쌀국수

저녁 : 부채살 스테이크와 알리오올리오

전날 먹은 차돌 쌀국수가 맛있었다. 평소에 먹던 그런 쌀국수 맛은 아닌데 먹어보면 또 익숙한 맛. 방아잎이 들어있어서 맛이 독특했다. 목이 아파서 눈을 뜬 와중에 이거 외에 다른 음식은 먹고 싶지 않아서, 결국 이틀 연속으로 같은 음식을 먹었다. 갇혀있는 동안 새로 생긴 취미는 배민을 한 바퀴 둘러보며 내가 시켜먹을 수 있는 음식을 선별하는 것이다. 아 맛있겠다, 아 잠깐 이거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오겠는데? 아 맛있겠다, 아 양이 많아서 2인분 수준이라고? 안 되겠는데... 이런 말들을 반복하며 선별해낸 음식점들은 꾹 하트를 눌러둔다. 격리되기 전에도 평일엔 낙이 별로 없었다. 매일 아침 10시에 출근해서 밤 11시 30분 막차를 타고 오니까. 나는 하루 종일 생산적인 일만 하다 온 나를 위해 눈 감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무의미한 일을 한다. 격리 생활을 한다고 다를 건 없었다. 밤 10시 반쯤 노트북을 닫고 침대에 드러누워 재미없는 게임을 하거나, 틱톡을 보거나, 격리 중 시킬 수 있는 메뉴 리스트를 추가해둔다.


[6일 차 - 토요일]

점심 : 샌드위치와 아메리카노

저녁 : 마약콘빵과 올리브치아바타

기분이 지나치게 좋았다. 방을 산책했고, 칼림바를 연주했다. 칼림바는 격리되어있는 동안 쿠팡으로 시켰다. 예전부터 배워보고 싶은 악기였는데 갇혀있는 동안 이거라도 하나 배워서 나가자 싶어 구매해봤다. 칼림바의 운지법은 너무 쉬웠고, 바로 반짝반짝 작은 별과 에델바이스를 마스터해버렸다. 이렇게 행복한 격리 생활을 하다니 나는 격리 체질인 것 같고, 혼자서도 잘 사는 사람이 되자는 서른 살의 결심을 이룬 것 같아 뿌듯했다. 사실 나는 주말이 다가오는데 잡힌 약속이 없으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다른 사람들은 제각각의 하루를 사는데, 나 혼자 도태되어 남겨진 기분에 눈물이 난다. 그런데 격리 6일 차 토요일은 처음으로 불안하지 않은 약속 없는 주말이었다. 나에게 필요한 건 고작 손바닥만 한 방 하나, 내가 관심을 줄 초록 생명체, 그리고 만지자마자 연주를 할 수 있게 된 악기뿐. 제법 성숙한 어른이 된 것만 같아서 내가 생각하는 가장 어른다운 일, 청소를 하고 잤다.


[7일 차 - 일요일]

점심 : 돈까스

저녁 : 남은 돈까스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됐다. 약을 먹지 않아도 더 이상 목이 아프지 않다. 일주일이나 수십 권의 책들과 한 방에 갇혀 있었는데 책 한 권 안 읽은 게 말이 되나 싶어서 책을 집어 들었다. 읽고 싶었던 에세이였는데 재미가 없어서 중간에 덮고,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로 바꿔 읽었다. 그렇게 슬픈 내용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한켠에 엎어두곤 쓰고 있던 안경까지 벗어 엉엉 울었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내가 지금 왜 우는 걸까를 생각했다. 외로웠나? 아픈데 혼자 있어서 나도 모르게 서러웠나? 혼자 갇혀 있으면 당연히 슬픈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왜 우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서 글을 쓰기로 했다. 현실을 사는 나는 밝은 사람이지만 내가 쓰는 글들은 대체로 우울한데, 내가 슬프거나 우울할 때만 글을 쓰기 때문이다. 나같이 둔한 사람은 우울하다는 글을 쓰는 과정에서야 비로소 내가 우울한 이유를 찾아낼 수 있다. 글을 쓰면서 그 이유를 알았지만 굳이 드러내지 않기로 했다. 솔직하지 못한 글은 재미가 없고, 격리 해제를 앞둔 오늘은 재미없는 글을 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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