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운전 역사
아들이 아빠와 단둘이 긴 여행을 떠났다. 오늘부터 당분간 난 자유다. 기다렸다는 듯이 친정으로 진정한 휴가를 만끽하려 친정피크닉을 왔다. 시내주행에 최적화된 나의 애마 모닝을 끌고 고속도로까지 가기가 부담스러워서 남편차를 몰고 초 긴장하며 친정에 도착했다. 내차도 아니고 남편 대형차를 몰고 오며 어찌나 긴장했던지 도착할 즈음 나의 승모근이 승천 직전이었다.
운전은 나에게 행동반경확대의 자유를 줬지만 긴장도 함께 줘서 항상 어렵다. 운전대만 잡으면 밤낮이고 쏘고 다니는 친구들이 마냥 부럽다. 처음 운전을 시작했을 때는 주행 중에 줄을 잘 못서서 버스뒤에 따라붙다가 버스가 정차하면 같이 서기를 반복했다. 보통은 옆차선으로 추월해서 버스를 앞지르기하는데 그걸 못해서 버스와 함께 서고 함께 출발했던 것이다. 옆에서 아들이 대체 언제 가냐고 그만 양보하라고 채근한 적이 있다. '아들아 내가 양보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냐. 무서워서 그래.'
사실 면허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바로 땄다. 트럭 몰 일도 없는데 왜 1종면허를 따려고 했는지 지금 생각해 봐도 알 수 없지만 1종면허로 응시했다. 주변에서 운전면허 필기는 공부 안 해도 따는 거라고 그러길래 문제집도 안 사고 그냥 시험 봤더니 보기 좋게 떨어졌다. 2종으로 시험 봤으면 합격했었는데 1종이라 떨어진 것이다. 뭐가 되었든 불합격. 흑흑. 아빠께서 늦깎이 운전대를 잡으시려고 운전면허 필기 떨어졌을 때 엄청 놀렸는데 집에 가서 떨어졌다는 말을 하기가 창피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빠가 어찌나 놀려대던지 마흔이 넘은 지금도 놀린다. 위로 넘기는 기다란 운전면허필기시험 문제집을 사고 공부를 하고 100점 맞았다. 세상에 그냥 얻어지는 게 하나도 없다!
다음 난관은 실기다. 필기야 그렇다 치고 실기는 한 번에 붙자! 아빠한테 자랑하자! 열심히 수업을 받았다. 트럭으로 T자 완료. 주차완료. 대체 왜 트럭으로 할 생각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지만 열심히 했다. 난 성실하니까.
"아빠, 나 오늘 실기 시험이야. 한 번에 턱 붙고 올게요."
웬걸.... 너무 긴장해서 출발도 못해보고 떨어졌다. 기어를 2단으로 차례로 올려야 하는데 3단에 넣고 출발하려고 하니 출발조차 안되었다. 그렇게 얼레벌레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30초가 지나고 '불합격입니다. 운전자 나오세요'
울기 직전이다. 와.... 시동도 못 걸고 떨어진 것보다 아빠가 떨어졌다고 얼마나 놀려댈지 상상하니 집에 가기가 싫었다.
"딸 어떻게 되었어?"
"붙었어 묻지 마 아빠."
"진짜야? 이상한데. 너 떨어졌지?"
"아냐. 몇 번 더 나오래."
"떨어졌네. 하하하하 필기랑 실기랑 차별 안 하고 다 한 번씩 떨어지는 거야?"
친아빠 맞나 싶다.
"고만 놀려. 아빠. 이게 다 1종이라서 그래. 그냥 2종으로 응시할걸. 잉"
"아빠 친구 운전면허시험장에 있는데 물어봐야겠다."
긴장해서 출발도 못하고 떨어지는 사람들이 많다고 다음에 잘하라고 했다고 하신다. 아... 안 들려 안 들려.
다행히 두 번째 시험 보고 100점으로 실기완료 했다.
다음은 도로주행이다. 실전 도로주행은 정말 너무너무너무 무서웠다.
그렇다. 난 운전감이 똥통이다. 이때부터 이렇게 쫄보였으니 지금 운전하고 다니는 게 기적이지.
도로주행차는 보조석에 브레이크가 있어서 위급한 상황에서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다. 내가 버벅대니 여러 번 브레이크를 밟으셨다. 진땀 나고 손 떨리고 무서워서 그만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 꾹 참았다. 도로주행까지 떨어지면 아빠가 포복절도하실 거다. 그건 안된다.
"저 정말 죄송한데 자꾸 브레이크랑 액셀이랑 헷갈려요."
도로주행 선생님 얼굴이 순간 하얗게 질리셨다. 도로주행을 하며 통과는 시켜주지만 따로 연습 많이 하라고 신신당부하셨다. 다행이다. 아빠 친구가 부탁하신 것 아닌가 싶지만 묻지는 않았다.
어쨌든 1종 보통 면허를 따고! 난 운전을 하지 않았다. 내차도 없었고 운전은 무서웠고 젊으니 대중교통을 타고 다녀도 힘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 결혼을 하고 남편이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하며 집에 차가 놀고 있으니 꽤가 났다. 부천에서 광명까지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는데 때로는 사람이 너무 많아 떠밀려서 내리지 못하고 정거장을 지나치기도 하고 옷이 망가지도 했다. 30분만 운전해서 가면 쾌적하게 갈 수 있는데 지하철로 힘들게 출퇴근을 하니 슬슬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해보자. 집에 차가 놀고 있는데 지금 왜 고생해서 출퇴근을 하니.
그래! 난 1종 보통이잖아! 오토스틱인데 왜 못해! 클러치도 읍짜나!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고 운전을 하기로 마음먹은 날 하필 비 예보가 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오늘부터 운전하기로 한 날이다. 오늘까지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면 앞으로 영영 운전대를 못 잡을 것 같았다. 세상해. 부슬비처럼 내리던 비가 10여분 지나니 앞이 안 보이게 퍼부우며 내렸다. 와이퍼는 최고 속도로 좌우로 쉴 새 없이 움직여대며 앞유리를 닦아댔다. 비 오고 어둑해서 차선도 잘 안 보이는데 겨우겨우 거북이처럼 도착했다. 운전하는 내내 '지하철 탈 걸. 차 버리고 나갈까? 버스 무서워.' 온갖 재난 공포영화 떠올리며 겨우 도착하고 나니 다리에 힘이 풀렸다. 몇 번 남편이 동승해서 직장까지 운전을 하며 연습을 하긴 했지만 나 혼자 운전은 비가 퍼붓는 그날 그렇게 시작했다. 시작할 때 최고 난도를 딱! 찍고 익숙해진 도로의 신호체계와 차선을 일단 외웠다. 익숙한 길로 출퇴근을 하니 그다음은 쉬워졌다.
워낙에 조심성이 많고 차선 변경도 잘 못하고 도로 통행을 거스르는 행동을 못하는 나는 사고도 한번 없이 찬찬히 운전하며 시내 운전에 익숙해져 갔다. 홀 몸 일 때 신나게 운전해서 출퇴근하며 겨우 능숙해졌는데 유산 끝에 어렵사리 갖은 소중한 아이를 임신하고는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혹시나 또 유산되면 안 되니 조심 또 조심했다. 아이를 낳고 나니 운전이 또다시 필요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아이 데리고 병원도 가야 하고 문화센터도 가야 하고 할 일이 많았다. 혼자 탈 때와 아이를 태우고 운전할 때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더 긴장되고 더 많이 양보했다. 이번에 차선 변경 못하면 한 바퀴 또 돌아야 하는데 이러며 동네 구경 많이 했다. 아이도 차만 타면 잘 자서 언젠가는 잠투정하며 울고 보챌 때 일부러 카시트에 태워 재운적도 있었다.
"이제 시내주행 잘하는데 고속도로 한 번 타보자."
남편이 시골 갈 때 운전 해보라고 운전대를 넘겼다. 순간 이 남자는 목숨이 두 개인가 싶었다. 나에 대한 신뢰가 깊은 것인가 아니면 생각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목숨이 여러 갠가. 그래 일단 해보자. 남편이 있으니 도와주겠지.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런지 고속도로는 차선변경과 신호등이 없으니 오히려 편했다. 몇 번 게이트를 놓칠 뻔해서 부산 갈 뻔했지만 옆에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런지 별 탈 없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러고 누워있으면 된다. 너무 힘이 들어가서 긴장하며 운전하고 나면 졸리다. 어쨌든 난 고속도로까지 타는 운전 고수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할 수 있다! 사실 이번 친정행도 엄빠가 운전하지 말고 고속버스 타고 오라고 하셨지만 남편차 몰고 무사히 왔다. 모닝으로 운전할 때는 내 앞에 깜빡이도 안 켜고 훅 들어와서 놀라게 하고 1차선으로 달리고 있으면 뒤에서 바짝 붙어서 위협적으로 운전하며 얕보는 운전자들이 많다. 대형차로 운전할 때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일단 차선 변경할 때 잘 껴주고 내가 조금 느리게 가도 사정이 있겠거니 하는지 빵빵대는 경우도 없다. 갑자기 내 앞에 훅 차선변경해서 껴드는 경우도 드물다. 운전자는 그대로인데 뭔가 대접받는 기분이다. 돈의 힘인가? 사고 나면 골치 아프니 알아서 피하는 건가? 난 모닝을 사랑하는데 내가 고속도로 탈 때는 모닝을 끌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도 여전히 시내주행은 내 사랑 모닝이 최고다. 최근에 아이 친구들을 데리고 잡월드에 체험학습을 갈 때 모닝으로 데려다준 적이 있다. 완전 무옵션에 가깝게 세컨드차로 구입해서 뒷좌석 차 유리문이 자동이 아니다. 옛날 수동식으로 열나게 돌려서 올렸다 내렸다 하는 시스템을 아이친구가 처음보고 너무 신기해했다. 태어나서 이런 것 처음 본다며 재밌다며 우리 집 차도 모닝으로 바꾸자고 호들갑 떨어서 친구엄마와 한참 웃었다. 얘들아 사고 싶어도 못사. 귀한 거야. 요즘은 이런 차 읍따!
운전이 무섭고 용기가 안 난다면 나를 보며 용기를 얻으시라! 나 같은 길치에 공간감각 없는 사람도 운전하고 잘 다니니까 말이다. 그동안 저로 인해 뒤에서 답답하셨던 일부 운전자 여러분 초보 운전자 너그럽게 양보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저도 양보 많이 하며 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