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좌우할 다섯 가지 시그널
생각해 보면 수없이 많은 시그널들이 나를 말렸다. 이거 아니야. 하지 말어. 그만!! 그땐 그걸 몰랐다.
아홉수에 결혼하면 안 좋데. 아홉수 때 운의 기운이 바뀌어서 불안정하데 아홉수는 피하자. 안 좋다는데 피하자 싶어. 29가 되기 직전 28살에 남편과 결혼을 했다. 아홉수를 피하고 싶으면 서른에 하면 되었을 텐데 망할 드라마에서 여자나이 삼십이 넘어가면 삼순이라며 노처녀 취급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내 이름은 김삼순이 대 히트를 치며 삼순이, 삼순이 거리는데 나도 모르게 서른 되기 전에는 결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계기가 된 것이다.
아홉수 되기 1년 전 2008년 3월 상견례를 했다. 그때 생각해 보면 어린애들이 결혼한다고 부모님 모시고 와서 동생들이랑 즐겁게 밥 먹었던 기억만 난다. 양쪽 부모님들도 젊었고 두집다 개혼이라 조심스러워하셨다. 남편의 남동생과 나의 여동생 이렇게 넷이 한 테이블에서 밥을 먹고 양가 부모님께서 한상을 차지한 구도였다. 지금이나 그때나 남편은 다정다감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결혼준비하며 한껏 예민해진 나와 자주 다퉜고 내가 조금화내면 자기도 질세라 버럭 하며 참지 않았다. 그때 깼어야 했는데 하필 길을 걷다 갑자기 튀어나온 쥐새끼에 순간 놀라 남편이 와락 안아주는 바람에 웃으며 다시 화해했던 기억이 난다. 망할 쥐새끼.
부모님들만 긴장했던 상견례를 잘 마치고 우리의 결혼은 바쁜 농번기를 피해 11월로 잡았다. 상견례부터 결혼까지 준비기간 동안 충분히 생각해 보라는 하늘의 계시였는데 그땐 또 그걸 모르고 마냥 설레기만 했다.
결혼준비를 아주 길게 하며 여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여유롭지 않게 생각될 만큼 다양한 이벤트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제주도에 계시는 친척어르신께 인사를 드리려고 가족 여행겸 1박 2일로 제주도로 인사를 갔다. 외갓집 작은할아버지께서 제주도에서 사업을 하시며 별장을 지어놓고 주말마다 이용하셨다. 우리는 그 별장에서 숙박을 하게 되었다. 별장에는 연못이 있었고 그 주변에는 나무데크가 깔려있어서 산책하기 좋았다. 2층집에는 방이 여러 개였는데 1,2층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서 편리했다. 나와 예비신랑은 2층 방을 쓰며 미리 신혼여행 온 것 같다며 좋아했다. 제주도 친척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같이 저녁 식사 후에 숙소로 돌아왔다. 여행첫날의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타월을 꺼내려는 순간, 거울 겸 타월 수납장의 문짝이 떨어지며 와장창 산산조각 났다. 난 알몸인체 놀라서 바들바들 떨었다. 온 식구들이 큰 소리에 놀라 달려왔고 결혼을 한 달 앞둔 예비 신부의 신상부터 살폈다. 유리 조각이 얼굴에 튀었다면? 아니면 내 몸에 박혔다면? 내가 넘어지기라도 했다면?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얼음처럼 몸이 굳어버렸다. 몸 다치지 않았으니 되었다며 타월로 몸을 감싸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라 놀랐지만 침대에서 좀 쉬니 괜찮아졌다. 액땜했다며 식구들이 안심시켜 줬다. 그땐 아무도 몰랐다. 샤워하다 깨진 유리가 하늘이 보내는 첫 번째 시그널이었다.
산책을 나가자며 연못 주변을 한 바퀴 돌려고 밖에 나왔다. 바람 쐬며 제주도를 느껴보자며 나무데크 위를 따라 걸으며 연못으로 향했다. 정말 나온 지 10여분 되었을까? 빠지직 퍽! 아아악!
내 오른쪽 다리가 부서진 나무데크밑으로 푹 들어가 덫에 빠진 동물처럼 허우적거렸다. 그때 놀란 식구들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세상해! 우리 아빠는 100킬로가 넘고 거기에 나보다 가벼운 사람은 없었다. 하필! 예비신부인 제일 가벼운 내가 그것도 썩은 나무데크를 밟아 오른쪽 다리의 사타구니까지 빠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드레스가 길어서 다행히 가려줘서 아무도 몰랐겠지만 오른쪽 다리에 멍이 들어서 드레스 피팅할 때 민망했다. 두 번째 시그널이다. 피해! 이 결혼 아니라고! 세상해 한쪽다리를 땅에 박아가며 알려줬는데도 못 알아듣고 액땜이라며 넘겼다.
우리 둘 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지만 시부모님께서 시골에서 결혼하길 원하셨다. 나름 그곳에서 제일 핫한 워터파크까지 겸비한 호텔을 상견례 끝난 후에 예약까지 마친 후 시골이지만 호텔에서 결혼할 생각에 꿈에 부풀어 있었다. 세 번째 시그널 작동. 8월 마지막날 불현듯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다. 받기도 전에 예감이 좋지 않다. 불행한 예감은 왜 틀리지 않는 것일까? 호텔이 부도가 나서 결혼식 진행이 안된다는 것이다. 바닷가 시골과 어울리지 않는 럭셔리 호텔이긴 했지만 망할 거라고는 눈곱만치도 생각하지 않았었다. 우리는 정말 몇 달 남지도 않은 예식을 어쩔 줄 몰라서 매우 당황스러웠다. 주변의 괜찮은 예식장은 가을철 웨딩 성수기로 모두 마감이었다. 딱 한 곳 언덕 위의 아주 고전스타일을 고수하는 예식장 한 군데만 자리가 있었다. 아직도 결혼식 사진 보면 우리 엄마 아빠 웨딩 앨범 같은 이유이기도 하다. 빨간 양탄자가 깔려있고 양쪽에 촛대와 쨍한 색깔의 조화들이 데코 되어있는 이름도 아름다운 명성 웨딩홀은 우리가 결혼한 이후 몇 년 지나지 않아 없어졌다. 미리 없어지면 나도 안 했을 텐데 명성대로 이름값도 못한다.
예식장뿐만이 아니었다. 아는 친척의 인쇄소에서 청첩장을 맡겼는데 친정아버지 이름이 가운데 글자가 '민'인데 '인'으로 잘못 찍혀 나왔다. 청첩장의 디자인이나 문구 같은 것은 포기하더라도 이름이 틀리면 문제가 크다. 와.... 네 번째 시그널. 인쇄소의 잘못인데 시부모님의 친척분이 운영하는 곳이라 두 번째 인쇄비도 내셨다고 한다. 그쪽 과실이라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지만 부모님이 알아서 하시리라 믿고 부랴부랴 모든 청첩장을 다시 인쇄해서 주변에 돌렸다.
청첩장문제가 해결된 후 정말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이번에는 주례사의 부모님께서 갑작스레 돌아가셔서 주례해주실 분이 사라졌다. 젠장할 다섯 번째 시그널... 이제 시그널을 세다가 잊어버릴 정도다. 이쯤 되면 알아들었어야지! 과거의 나야. 지금생각해 보니 무엇하나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었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서 내 친구들도 많았고 신랑 친구들도 많았다. 양가 부모님 및 친척들 사진을 모두 찍고 친구들과 지인들 사진을 찍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친구들 기념사진 촬영을 2번에 나눠서 촬영을 할 정도였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 명성 예식장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음식이 부족해서 난리였다고 한다. 시골이라 서울에 대절버스 2대로 내려온 하객들은 버스 시간에 맞춰 나가야 하는데 식사가 늦게 나와 곤란했다는 후일담을 들었다. 당일날에 내가 알면 속상할까 봐 친구들이 알리지 않았었다. 어찌나 미안하던지 얼굴이 화끈거렸었다.
어쩜 모든 시그널을 무시하고 얼렁뚱땅 결혼해서 애 낳고 지금까지 살고 있는 것 자체가 기적 같다. 하늘이 내려주신 로또 같은 내 남편! 너무너무 소중해서 미치겠다. 서로 나 아니면 네가 결혼이나 했을 것 같으냐고 고마운 줄 알라고 상대에게 강요하며 하늘이 보낸 많은 시그널을 무시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저 재벌집 막내아들처럼 다시 한번 기회를 주세요. 장난 아니고 인생 2회 차에는 실수 안 하고 잘 살 수 있어요. 제발!이라고 dm이라도 보내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