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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원동호랑이 Jan 13. 2022

'나는 이 사랑 때문에 죽을 거야.'

<머드>, 이종산



타령 중에 제일은 사랑타령이라 했습니다.




영화 <her>나 <Zoe> 같은 인간 아닌 존재와의 로맨스는 별로 몰입이 안 되더라고요. 한창 유행했던 한국식 SF 소설도 잘 보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두 가지의 결합인 <머드>가 왜 저를 사로잡았는지 더더욱 모를 일이에요.


<머드>는 인스타에서 '지나가다가' 우연히 본 책이었습니다. 절절한 카피 / 너무 예쁜 표지 / 마침 요즘 오랜만에 소설을 읽어볼까 했던 생각 이 삼박자가 쿵짝! 맞아서 퇴근길에 코엑스 영풍문고에 들러 바로 질렀어요. 그리고 지하철에서 당장 읽기 시작했죠. 이틀만에 다 읽었습니다.


‘외계인과의 로맨스'임에도 불구하고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었어요. 이건 진짜 읽어봐야 아는 건데.. 사랑하면서 느끼는 감정들이 탁월하게 묘사되어서일까요? 제가 그만큼 사랑을 '외계' 정도로 멀게 생각해서일까요? 아무튼 보니와 그것의 관계, 서로에게 갖는 감정이 그것 그대로 사랑이었습니다. '그것'은 작가가 생각하는 사랑을 형상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보니의 마음에서도 사랑이 넘쳐흘렀다. 인생에서 그보다 큰 행복은 없을 것 같았다. 그때 보니와 그것의 사랑은 순수했다. 훗날 모든 것이 끝장났을 때 보니는 이날을 떠올렸다. 그때 보니는 아직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지 않고 마음 안에 가지고 있었다. 마음속의 그 사랑은 보니에게 힘을 주었다. 보니는 사랑으로 빛났다. 그렇게 빛나는 시간은 인생에서 몇 번 주어지지 않는 선물이다. 아니면 시간이 그때를 미화한 것일까? 자신이 빼앗아 간 것을 자랑하려고?

- 95p



'같이 있는 동안 너무 행복했거든요. 제 인생은 항상 그랬어요. 좋은 일이 하나 생기면 그다음에는 반드시 나쁜 일이 하나 와요. 좋은 일 하나에 나쁜 일이 두 개거나 서너 개일 때도 있죠. 행복했던 만큼 나쁜 일이 와서 추락할 때 충격이 더 큰데, 이번엔 아마 행복의 언덕을 더 올라갔으면 추락할 때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고통이 너무 커서 죽었을 수도 있겠죠. 그래서 다행이라는 거예요. 너무 높이 올라가기 전에 내려왔으니까.'

- 147p



'나는 이 사랑 때문에 죽을 거야.'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마음이 벅차올랐다.

'나는 이 사랑 때문에 죽을 거야.'

문을 열자 그것이 보였다.

<날 버리지 마.>

- 160p



그날 아침에 두 사람이 서로를 껴안고 울고 있던 그 장면은 보니의 마음 안에 오래도록 또렷하게 남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는 그 장면을 떠올릴 때 자신의 안에 소외감 말고 다른 감정이 작게 소용돌이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도 저런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누군가와 아무도 끼어들 수 없을 정도로 끈끈하게 얽힌 관계이고 싶어. 혼자는 너무 허전하니까.'

그것이 보니의 인생에 들어온 순간, 보니가 그것에게 감싸였던 그 밤에 보니는 오래전 그날 아침의 풍경을 떠올렸었다. '내 인생에 드디어 그런 존재가 나타난 거야.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야.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사랑을 지킬 거야.'

- 251p








보니가 그것을 처음 만날 때 지진처럼 주변이 진동했다고 합니다. 이 묘사에 공감했어요. 세상이 '진동'할 때가 있죠. 진짜 진동이라기보다는 손끝 발끝이 찌릿찌릿하는 느낌과 비슷한 것 같아요. 그게 느껴진다는 건 제 안에서 뭔가 엄청 큰 심경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어떤 마음을 끊어내는 법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우연한 타이밍일까요, 특정한 계기일까요, 아니면 오로지 제 다짐일까요? 저는 제 마음 위로 돌무덤을 쌓아 꾹꾹 눌러놓고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분명히 뭔가 감정이 일어날 법한 상황에서 이상하게도 그 감정의 크기에 비례하게 무신경해지더라고요. 이게 혹시 안에서 나오지 못해 곪아 썩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찾는 게 영화와 책이에요. 이야기 속 사람들이 겪는 일들을 따라가다 보면 공감이 되고, 그 감정을 같이 느끼게 되죠. <비기너스>를 보면서 관계에 방어적이면서 동시에 싹트고 있는 사랑을 느끼는 남자의 마음이 되기도 하고, <코다>를 보면서 가족을 사랑하지만 내 삶을 찾아 떠나고 싶은 코다(CODA: Child of Deaf Adult)의 마음도 되어볼 수 있습니다. <머드>를 보면서는.. 벗어날 수 없는 사랑에 빠져버린 작은 인간의 마음이 되었겠죠?





마지막 즈음을 읽으면서 지하철에서 눈물을 참느라 혼났습니다. 묵직한 울림이 <답장>의 뮤비를 볼 때와 비슷했어요. 거기서도 마지막에 불꽃놀이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부분 때문에 그 뮤비를 좋아하거든요. 슬픈 이별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불꽃놀이는 황홀하고, 그래서 바로 뒤이어 나오는 서울의 풍경들이 딱 그 황홀했던 만큼 쓸쓸하게 다가와요. 영원하지 않고 덧없기 때문에 소중한 것들이 있다지만 저는 조금 덜 소중해지더라도 모두 영원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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