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 아레나>, 최나욱
퍼블리를 구독한지 꽤 됐는데, 나름대로 굉장히 만족하면서 이용하고 있습니다. 퀄리티 좋은 아티클이 많이 쌓여있고, 계속 업데이트되기 때문인데요.
그 만족도를 높여준 계기가 된 책이 바로 <클럽 아레나>입니다.
퍼블리에서 우연히 이 책을 소개하는 아티클을 접하고 사실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클럽을 소개하는 책이라고? 일하는 얘기만 올라오는 플랫폼에서?’
큐레이터 분도 그것을 의식하셨는지, 본문에 앞서 ‘<클럽 아레나>가 좋은 책인 이유’라는 제목의 큐레이터 코멘트 챕터를 넣어놓으셨더라구요. 사실 이 부분이 저에게 너무 강렬하게(?) 어필이 되어서, 자연스럽게 다음 챕터를 읽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책이 아레나라는 클럽에서 일어난 일들을 통해 한국 사회를 함축한다고 생각합니다. 토사물은 그 사람이 무엇을 먹었는지 보여줍니다. 지하의 클럽 역시 한국 사회의 어떤 면이 무엇을 추구하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퍼블리의 다른 아티클들에 대한 표현도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훌륭한 책, 유익한 책,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가기 위해 시간을 쪼개 읽어야 할 듯한 책, 먹기 싫어도 건강을 위해 아침마다 눈살을 찌푸리며 먹곤 하는 케일 주스 같은 책입니다. 생각만 해도 샌들우드 향기가 날 것 같습니다.’
내 지적 자원을 조금이라도 더 쌓기 위해 강한 의지를 갖고 읽는 텍스트들 사이에서, ‘클럽’이라는 세속적이고 흥미로운 주제를 담은 논픽션이 띠용 하고 있으니 관심이 갈 수밖에 없죠. 어떤 것을 지속하려면 완급 조절이 필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어서요. 이 경우에는 '케일 주스 사이에 끼어 있는 칵테일' 정도로 비유할 수 있을까요?
'사람이 케일 주스만 먹고 살 순 없지.'하고 끄덕거리면서 아티클을 재미있게 읽었고, 그 길로 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이 책을 사왔습니다.
* 재미있는 내용이 정말 많은데, 그것들을 하나씩 나열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접 읽어야 재밌죠. 그래서 인상적이었던 부분 몇 개만 추려왔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음악을 듣는 행위, 음악을 듣기 위해 어딘가를 방문한다는 사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더 이상 음악성과 같은 실질적인 퀄리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은 단지 일정한 상징성이나 분위기를 좇아 그곳에 모인다. 즉 어떤 디제이가 왔기 때문에 아레나를 찾는 게 아니라, 단지 ‘아레나’라는 장소가 ‘핫하다’고 합의되었기 때문에 막연히 아레나를 찾는 것이다.
잘보이려는 건 매한가지지만, 티 나게 많이 꾸미면 ‘잘 보이려고 별짓을 다한다’고 비아냥대기 일쑤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병적으로 중요해진 ‘쿨한’ 태도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괜한 멋을 부리기보다는 쿨한 태도를 보여주는 게 더 힙하고 멋져 보이는 것으로 미의 기준이 바뀌었다.
‘대충 꾸민다’는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가 모여 오늘날의 멋을 정의한다. 모두가 남들에게 잘 보이고 누굴 만나고 싶어 하는 속내는 똑같지만, 표면적으로는 욕망을 추스려 약간의 이미지 연기를 요구한다.
클럽이 많은 불법이 자행되는 공간이기는 하나, 불법적인 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나면 실질적으로 클럽이라는 현상을 만드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한 수많은 일반인들을 배제할 수밖에 없다. 사회의 일반적인 범주에 속해 있다가 클럽에 갔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 말이다.
일탈 공간이 일상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연속되는 것이라면, 일상에서 불거지는 문제에 대해 시사점 또한 던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컨대 남녀문제나 외모지상주의처럼 사회적 문제로 다뤄지지만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대해 말이다.
예민한 문제일수록 말해선 안 되는 것, 말할 수 없는 것이 많기 마련이다. 그러한 터부로 인해 사회에서는 논의를 진전시키기보다 편 가르기에 급급한데,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에게서 어쩌면 논의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는 동시에 제 외모가 클럽에 입장 가능한지를 궁금해 하고, 남녀 갈등이 깊어지는 가운데 서로의 인정을 갈구하는 모습은 논의와 실제 간 간극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클럽에 있는 사람들 또한 몇 시간 지나면 결국 같은 사회를 살아가고 같은 터부를 따르는 사람들이다.
클럽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그곳은 저에게 아주 낯선 공간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이 제가 어렴풋이 상상했던 것들과 정확히 일치하기도 했고, 훨씬 더하기도 했고, 오히려 반대이기도 하더라구요.
책을 거의 다 읽어가면서, 과연 어떤 내용으로 이 책을 끝맺을까 하는 호기심이 있었는데 그것 역시 좋았습니다.
흔히 클럽을 배격하고 타자화하는 경향이 있지만 클럽 안에서의 행동들은 모양새만 달리 한 채로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는 것. 왜냐하면 클럽에 가는 사람들도 아침이 되면 클럽을 나와 일상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라는 것.
<클럽 아레나>가 흥미로운 이유 중 하나는 이렇게 일정한 논조를 갖추고 분석, 정제된 결과물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아예 몰랐던 무언가를 알게 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흥미로운 일입니다. 그게 아주 자극적이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제이면서도, 이렇게 수준 높은 관찰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텍스트라면 더더욱 그런가 봅니다.
이 지점이 논픽션의 매력이기도 하죠. 주제와 저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른 플레이버를 낼 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