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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희 Oct 28. 2020

2. 괌에 팩폭을 날리다.

괌에 오시기 전에 읽으시면 좋은 글.

괌에 살러 간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공표(?)했을 때, 두 가지 반응이 있었다.


좋겠다, 아이들이 건강해질 것 같다 등의 다소 긍정적인 반응이 50%. 의료시설, 아이들 교육문제, 한정적인 섬의 자원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50%쯤. 심지어 현대의 풍부한 놀거리들을 누리지 못하고 기껏해야 바다만 보고 살아야 할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지 않냐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그리고 후자의 반응은 대부분 더 친하고,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들려왔다.


내가 괌 대변인은 아니지만, 괌에 대한 팩폭을 듣고 있노라면 괌에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조금 슬픈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모든 부정적인 반응에 나도 딱히 반박할 수 없다. 그들이 말하는 모든 걱정의 근원이 사실이기도 하고, 실제로 내가 걱정했던 부분이고, 그것들이 우리 가족에 대한 진심 어린 걱정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팩트'폭력이다.


한국과 비교하면 괌이라는 작은 섬나라는 참 부족한 게 많다. 이곳에선 아픈 것보다 병원 가는 일이 더 무섭고, 미술학원을 다니고 싶다는 아이에게 괜찮은 미술학원을 찾아주는 것조차 여간 쉽지 않다.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성 기후와 비옥한 땅이 선물하는 풍부한 한국의 제철 식재료들도 괌에선 찾을 수 없다. 공장도 없어서 대부분의 공산품들이 수입되기 때문에 물가도 비싸다. 이 작은 섬나라에는 번듯한 키즈카페도, 놀이공원도, 어린이 박물관도 없다.


그리고 마지막 어퍼컷!!!


"거기 맛집 없잖아!!!"

나의 입맛 수준은 참 낮아서 무엇을 먹어도 잘 먹고, 참 맛있기 때문에 나에겐 웬만하면 다 맛집임에도 괌에 맛집이 없다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일단 식재료가 다양하지 않고 1년 내내 더운 섬나라의 특성상 음식 맛이 우리나라에 비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지사니까.


괌에 깊숙이 들어와 본 이들은 더 하다.

무엇을 먹어도 짜게 느껴지는 음식들과 맛있는 커피 한 잔 사 먹기 힘든 사실에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고, 미국령이지만 미국스럽지 않은(?) 주거형태와 다듬어지지 않은 도시의 비주얼에 실망을 감추지 못하곤 하더랬다.






위의 팩트들에 대한 반박은 하지 않겠다. 어차피 더 좋은 것과 비교하면 어떤 것이든 기우는 쪽은 초라해지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내가 괌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1. 괌은 아이들에게 굉장히 친절하다. 아이들이니까,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엄마니까 배려받을 때가 많다. 아이들이라서,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엄마라서 무조건 죄송하고 죄인 같은 느낌이 든 적이 많았었다. 하지만 괌에서는 그런 마음을 잠시 내려두어도 좋다. 문콕 사건을 목격한 적이 있다. 어떤 아이가 문을 확 열다가 옆 차에 문이 쾅 부딪혔다.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아마 꽤나 자국이 남았을 거다. (이때부터 문화충격) 문콕한 아이의 엄마는 아이에게 사과하라고 시켰고, 아이가 '쏘리'라고 하자, 옆 차 주인이 이렇게 말했다.

"차는 그냥 차일 뿐이야. 하지만 넌 아이잖아. 마음에 담아두지 마렴, 미안하다고 해줘서 고마워."

제일 충격이었던 것은 사건을 저지른 아이의 엄마가 '쏘리'가 아닌 '땡큐'라고 말한 뒤 유유히 떠났다는 것이다.

괌에서 만난 사람들이 내 아이를 보며 'Hafa Adai'라고 인사한다면 'Hafa Adai'라고 답해주길 바란다. 이곳은 아이가 그냥 아이라서 배려해주는 곳이니까.


2. 이곳은 인종차별이 거의 없다. 괌은 세계일주 항해를 하던 마젤란(Ferdinand Magellan)에 의해 발견되어 333년간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고, 그 후엔 스페인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의 식민지배 하에 있었다. 태평양 전쟁 직전 일본군에게 점령되었다가 다시 미국의 영토가 되기까지 차모로족은 (Chamorro, 괌 원주민) 침략당하고 순응하는 슬픈 역사를 반복해왔다. 그래서일까, 내가 만난 괌 사람들은 대체로 인종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 보였다. 스페인+일본+차모로의 피가 부모세대에서 섞여 내려와 그들이 또 필리핀+미국+차모로와 섞인 경우도 많다. 원주민들은 그 냉혹한 역사에서 다른 인종을 배척하는 대신 그들과의 공존을 순응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영토를 지켜온 것이다. 그들이 괌의 '원래' 주인임을 인정해준다면 괌에서 인종차별로 마음고생할 일은 드문 것 같다. 모르겠다, 그냥 그들을 보면 조금 슬픈 마음이 든다. (불쌍하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공감의 마음이라고 해두자.)


3.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처음 이사 왔을 때 참 보기 좋았던 모습이 있다. 우리 집 맞은편에 사는 가족들이 캠핑의자를 하나씩 가지고 나와 모두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 그냥 별도 보고, (낮에 비해) 선선한 밤공기도 느끼며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참 좋았다. 서울에서 태어나 쭉 수도권에서 살아온 나에게 그런 모습은 '로망'의 한 부분이었던 것 같다. 이곳에선 어디든, 언제든 캠핑의자 하나만 있으면 족하다. 비가 와도 금방 그치니 텐트도 필요 없고, 아무리 멀리 가도 집에 한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으니 양손 가득 무거운 짐도 필요 없다. 그냥 내가 앉을 곳만 있으면 조용하고 평안한 시간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다. 


4. 괌에 살면서 나의 삶은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몸무게 빼고요. 흑흑) 옷장도 단출해지고 신발장엔 쪼리 하나와 운동화, 특별한 날 신는 샌들 구두가 전부다. 화장대엔 선크림 하나와 아이들 로션이 전부인지 오래고 가방은 빨기 좋은 에코백이 제일 좋다. (가죽 가방을 두고 몇 달간 집을 비웠더니 보기 좋게 가죽이 다 벗겨지더군요.) 나의 하루는 냉장고에 그날 먹을 음식+콜라 한 캔만 있으면 필요한 게 없다.


놀다가 잠시 앉아 쉴 곳만 있으면 충분하다.
고무쪼리는 3년째 닳지도 않아요.






위에 쓴 글을 중간 점검하며 쭉 읽다 보니

'뭐야, 결국 없는 게 자랑이야?'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맞다.

없는 게 자랑이다.


괌은 없는 게 자랑이 될 수 있는 곳이다. 

Guam이라는 단어가 'I have everything'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괌에는 미슐랭 레스토랑도, 스타벅스도, 럭셔리 풀빌라 리조트도 없다.

장담컨대 그러한 것들은 앞으로도 괌에 없을 것이다. 이미 다 가졌으니까. 이 땅은 원래부터 갖고 있었던 것들로 만족하며 사는 곳이니까. 그런 것들이 없는 게 이들의 자랑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괌을 여행하려는 분들은 마음을 비우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괌 이민을 생각하시는 분들도.

이곳엔 대단한 맛집도, 교과서에 나올만한 유적지도, 분위기 좋은 카페도 없다.

다만 사람들이 주는 불편함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누구의 눈치도 보고 싶지 않을 때, 길 잃을 부담 없이 그냥 보이는 대로 드라이브하고 싶을 때, 강같이 잔잔한 바다에 몸을 담그고 싶을 때 가벼운 마음으로 오시면 좋겠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지향하는 분들이라면 이곳에서 살아보시는 것도 꽤 근사한 경험이 될 거다.


그렇게 이곳을,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그리고 그들의 라이프를 인정하는 넓은 마음으로 이곳을 찾는다면 누구나 '진짜 Guam'을 만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I have everything! 난 다 가졌어."


나는 이곳에 살면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든다.


아이들은 바다 앞에서 용감해지고
양동이 하나면 몇 사간을 논다.
아이들은 여전히 양동이 하나면 충분하다.
바다만 보고 사는 '양동이 육아'도 불쌍하지 않아요.



(괌에 대한 저의 주관적인 에세이입니다. 제가 느낀 것들이 괌의 전부가 아님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 네 맘이 내 맘 같지 않고, 저 사람이 이 사람 같지 않거든요. 헤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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