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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희 Dec 27. 2020

다 괜찮아지는 곳

친정의 마법

한국에 왔다. 부모님의 배려로 친정집에서 자가격리를 하게 되어 이래도 되는 건가 싶게 편안하게 격리생활을 즐기고(?) 있다. (대신 외출을 하셔야 하는 친정아빠께서 가족과 격리되어 가족들과 고립되어 계시다. 아빠 힘내세요...)  


2주간 아이들과 함께 격리생활을 결심하신 친정엄마 덕분에 나는 휴가를 얻었다.

'휴가라니!'

이런 마음이 들면 안 되는 건데  엄마만 만나면 딸의 고약한 심보가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해가 뜬 지 오래인데 눈도 떠지지 않아, 몸도 움직여지지 않아, 이불도 너무 무거워어어어어.

겨우 겨우 몸을 일으켜 눈 비비고 나오면 아이들은 이미 아침밥에 딸기 한 접시 싹 비우고 신나게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굿모닝!"

머쓱해서 엄마에게 인사를 날리면 "좀 더 자지~"라고 대답하시는 엄마.

"아웅, 그동안 피곤이 쌓였나 봐."라며 안 하느니 못한 말을 엄마에게 던지면 대답 대신 고소한 커피 내음이 코를 간지럽힌다.

분명 엄마랑 같은 시각에 잠든 것 같은데, 아침이면 거실은 말끔히 정리되어 있고, 세탁기엔 빨래가 돌아가고, 어제 저녁 건조기 속에서 돌아가던 빨래는 예쁘게 포개어 쌓여있다.

괌 집에는 없는 우렁각시 요정이 친정집에만 살고 있는 걸까?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 엄만 도대체 잠을 자긴 하는 걸까?


하루에 세 번. 10시, 3시, 8시에 자가격리 앱에 아이들과 나의 상태를 기록하는 것 외에 나에게 주어진 일은 하나도 없다.

매일 눈 뜨자마자 영어로 된 선생님의 메일을 체크하지

않아도 되고, 잠들기 전에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세수하지 않아도 괜찮고, 낮에 깜빡 졸아도 괜찮다.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아도 되고, 연락받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다 괜찮다.

친정엄마와 함께 하는 2주 간의 격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집 안에서 자가격리 수칙만 잘 지킨다면) 괜찮은 "완벽한 휴가"다.




이렇게 쓰고 보니 참 얄미운 딸년이다.

나를 출산한 이후의 엄마의 삶엔 완벽한 휴가가 있었을까. 엄마의 지난 세월, 엄마는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하루가 있었을까.

아무 데도 나가지 못하고, 마스크를 쓰며 생활하는 격리 생활 중에도 엄마는 참 부지런하다.


엄마가 차려준 따뜻한 밥 먹고, 예쁘게 깎인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며 엄마에게 그간의 고민들을 털어놓는다.

매일매일 통화를 해도 엄마와는 할 얘기가 어찌나 이렇게 많은지. 나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제일 좋았다.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모든 일이 항상 다 괜찮아지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이가 게임을 하면, 저렇게 무언가를 깊이 좋아하고 빠졌을 때 자극하면 오히려 좋지 않다며 약속만 잘 지키면 괜찮다고 하신다.

아이들이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끼고 있어도 아이들에게도 방학이 있어야 한다며 "이런 날도 있어야지, 괜찮아."라고 하신다.

아이들이 밥을 남기면 과일을 좀 더 먹으면 괜찮다고 하시고, 밥 먹기 싫으면 빵을 먹어도 괜찮다고 하신다.

아이들이 밥을 너무 많이 먹으면 그렇게 많이 먹고 쑥쑥 크는 시기가 있다며 괜찮다고 하신다.

아이들이 뛰면, 애들이 가만히 있는 게 안 괜찮은 거라며 매트를 깔아주시고 이곳에선 뛰어도 괜찮다고 하신다.


건강하기만 하면, 존재하기만 하면, 다 괜찮은 친정엄마의 마법 같은 내공.

나에게도 그 내공이 쌓이고 있는 걸까?




벌써 다음 주면 이 "완벽한 휴가"가 끝이 난다. (격리 해제 날만 기다리고 계시는 아빠께는 너무 죄송하지만) 많이 아쉽다. 해야 할 일들이 생기고, 가야 할 곳이 생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잠깐 동안의 딸 모드 생활을 끝내고 다시 아내와 엄마 모드로 돌아갈 준비랄까.


그래도 다시 괌에 돌아가면 왠지 다 괜찮을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긴다.

조금 힘들어도, 조금 버거워도, 조금 외로워도

언제든 찾아올 친정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내 인생은 다 괜찮다.






괌에서
한국으로 오는 길

(괌에서 한국으로 오는 여정은 (꼬맹이들에겐) 쉽지 않았다. 한국의 코로나 확진자가 급격하게 늘어났던 주라 선별 진료소에 검사 대기자가 무척 많았기 때문이다. 새벽 5시에 인천에 도착해 많은 절차를 거쳐 방역 택시를 타고 관할 보건소에 가니 오전 7시 40분 정도였는데, 선착순으로 검사를 받을 수 있어서 선별 진료소가 여는 9시까지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마침 그날이 제일 추운 날이라 여름나라에서 온 아이들이 감기에 걸릴까 봐 걱정이 많이 되었다. 검사도 기대만큼(?) 무척 아팠다. (추워서 코가 얼어붙었었던 것 같기도...) 하루 종일 직접 코로나 방역에 힘쓰시는 분들을 마주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죄송스러웠다. 하루의 여정도 이렇게 힘이 들었는데, 2020년 한 해를 코로나와 싸우며 지내신 그분들의 여정이 얼마나 험난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시기에 입국한 사실조차 죄스럽기도 했다. 새롭게 찾아오는 2021년에는 마법처럼 코로나가 종식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2020년 한 해 동안 자신의 모든 삶을 내던지고 코로나와 싸워오신 모든 분들의 내공이 쌓이고 쌓였으니 분명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모두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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