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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석 Feb 14. 2023

타이완, 특별한 고마움

소중한 기억과 강력한 동력

對台灣和台灣朋友們.

타이완과 타이완 친구들에게.


2015년 짧은 첫 사회생활을 마치고 타이완에 왔다. 사실 타이완은 내가 사회로 나온 뒤 처음으로 떠나온 외국이었고, 그 며칠은 나에게 낯설음과 새로움, 중화권이라는 친숙함과 익숙함의 연속과 반복이었다. 수백대 일의 경쟁을 뚫고 힘겹게 들어간 은행은 박차고 나오는게 더 어렵고 두려웠다. 


'나는 몇 달 동안 내내 내가 한 순간의 감정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는건 아닐까', 

'내지는 나는 사회생활의 개념을 잘못알고 있는걸까', 

'지금도 내 동기들은 새벽같이 출근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텐데 나는 이렇게 늦게까지 누워있어도 되는걸까'


더 심각하게는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이대로 계속 가라앉는 건 아닐까'


이와 같은 고민을 되풀이하며 심연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은행에서 근무할 때는 나의 스트레스에 대한 모든 화살을 남한테 겨누고 많은 것들을 부정했는데, 그만두고 떠나온 이후에는 그 화살들이 전부 나 스스로에게 향했다. 그리고 생각해냈다는 것이 고작 '다시 취업 준비를 해야 하면 영어 공부을 해야지', '인턴 경험이 없는데 그럼 하반기 인턴을 알아볼까', '원래 하고 싶었던 꿈을 좇는다면 대학원을 알아봐야겠다' 등등의 것들이었다. 


곧바로 느꼈다. 

이런 생각없는 생각들은 과거의 불행을 되풀이하는 것일 뿐이라는걸. 


다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반복된 고민의 뿌리에는 아주 원초적이면서도 거대한, 그리고 생소한 질문이 놓여져 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어떤 기준과 잣대로 삶의 가치를 나누고, 어떤 방향과 생각으로 움직이며 살아가야 하는가.’ 


남은 모든 인생을 전부 관통할만큼의 일관적이고 거창한 생각이 아니라, 당장 다음 날 아침의 나를 움직이게 할 질문이었다. 조급함에 먼저 행동하지 말고 기준을 세우고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 처음 겪는 혼란스러움과 누군가에게 물어도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답답함에 힘겨워하고 몸부림칠 때즈음 내 인생 중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던 중국 유학 시절이 생각났고, 그 생각은 곧장 실행에 옮겨져 타이완 여행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타이완 여행은 날카로운 화살의 표적이었던 그 당시의 나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어야 했다. 또 그 위로는 가족이나 친구, 어떤 누구도 먼저 나서서 건네줄 수 없는, 내가 직접 느껴내야 하는 성질의 것이었고, 동시에 앞으로 더 단단해지기 위한 디딤돌이어야 했다. 그런 나에게 타이완에서 겪은 경험과 사람들은 너무나도 소중했다. 타이완 친구들은 미래로 인해 서두르거나 자신을 재촉하지 않았고, 자신을 무언가와 비교하려는 생각도 드물었다. 나는 서툰 외국어를 사용하면서도 희열을 느꼈고, 잊혀졌던 자신감을 조금씩 되찾았다. 무엇보다 이곳만의 친절함과 상냥함은 지친 나에게 몇 갑절 이상의 위로로 다가왔다. 


그리고 마지막날 밤 이곳 101타워를 지나며 생각했다. 


‘무엇을 하든 매순간 즐겁고 행복하자, 

언젠가는 불안정할 때도 있을 것이고, 

많은 돈이 필요할 때도 있을 것이고, 

많이 벌지 못할 때도 있을테지만, 

적어도 그 순간에도 즐거움을 0순위에 두고 그것을 추구하려는 삶을 살자.’ 


희미하고 불확실했지만, 

조금이나마 고민에 대한 답을 내리고는, 

행복함과 안도감을 느끼며 늦은 밤 숙소까지 하염없이 걸었다.



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이곳을 걸으며 생각한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돌이켜보니, 사실 그때 내가 겪었던 경험들이 특별하다거나 직접적인 해답을 주는게 아닌, 어쩌면 오히려 굉장히 일반적인 것들이었구나. 심지어 내 스스로 했던 결심마저도 말하기 창피할 정도로 지극히 평범한 것이었구나. 그렇지만,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었다는게 중요하다. 그리고 그 시작으로부터 정말 사소한 결심과 시도, 확신과 노력들이 조금씩 쌓이고, 뭉치고, 성숙해지며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지금의 내가 되었구나. 지금의 내가 시작된 그날을 생각하고, 그때의 나를 돌이켜본다.


그래서 타이완은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곳이다.

중국어로는 도저히 이 무게와 감정을 써낼 수 없어 이렇게라도 적지만, 

타이완 친구들이 조금이라도 느껴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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