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
언젠가부터 꾹꾹 눌러쓴 손편지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요즘 매일 하루의 절반을 키보드 위에서 살아간다.
쓰다쓰다 못해 ㅁ자가 다 벗겨진 키보드가 꼴도 보기 싫을 때는 종이를 꺼낸다.
거친 종이 위에 잉크가 적당하게 나오는 펜을 찾아,
내가 좋아하는 문장을 적고 있노라면 혼자만의 세상에 들어간다.
나를 위해 눌러 쓰기도 하고, 끝난 관계에 대해 떠올리기도 했다.
나는 나와 살아가면서 이 친구의 변해가는 취향과 좋아졌다가 시든 감정들을 하나씩 지켜본다.
그렇게 매일 나를 조금씩 다시 알아간다.
예전에는 내가 나를 잘 아는 줄 알았다.
"나는 이런 사람이지"하고 스스로를 정의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말들이 자꾸 틀어졌다.
분명 어제는 좋아했는데, 오늘은 이유 없이 싫어졌고, 늘 괜찮던 일이 어느 날은 견딜 수 없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라는 사람은 고정된 하나의 모습이 아니라 계절처럼, 기분처럼, 자꾸만 흘러갔다.
"나도 나를 몰라"
모른다는 건 무서운 게 아니라, 계속해서 발견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나는 지금도 나를 잘 모른다. 어쩌면 평생 모를지도 모르겠다.
새로 좋아진 것들, 더 이상 끌리지 않는 것들, 불쑥 찾아온 감정과 오래 곁에 있는 익숙한 마음들,
그 모든 게 모여 나라는 형태를 만들었다.
그리고 언젠가, 지금의 이 혼란도 하나의 조각이 되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없이 알려주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