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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화 Mar 16. 2023

사직서에도 나름의 순기능이 있다

#7: 벼랑 끝 손잡이, 서랍 속 사직서

내 직장 생활은 대체로 평화로웠다. 어딜 가더라도 밝고 따뜻한 사람들이 참 많았다. 아주 버겁지 않은 선에서의 인간관계 문제, 적당한 스트레스, 성취감, 큰 불만 없는 근무 조건, 적절한 워라밸. 세세하게 따지고 들자면야 힘든 일 어디 없었겠냐만, 전체적으로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 책상 서랍 속에는 늘 사직서가 있었다. 발표 불안 진정용이었다. 발표가 부담스러워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사직서를 몰래 꺼내서 들여다보면서 ‘이게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 정도의 일인가’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곤 했다. 


나는 무책임한 유형의 사람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런데 불안증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평소와는 다른 사고를 하게 된다. 불도저처럼 밀어붙이고 직진하는 걸 좋아하는 내가 발표 불안 때문에 사직서를 꺼내 들다니. 정상적인 상태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불안증은 나를 때론 약해 빠지고 불성실한 사람으로 만들기도 했다. 


한 IT 회사에서 근무할 때다. 이 회사에 들어오기 전, 인도 북동부 지역 전력 IT 관련 프로젝트를 2년간 맡았다. 서류나 절차가 참 까다로웠던 아시아 개발 은행의 펀드가 끼어 있는 프로젝트여서 업무 강도가 아주 높았다. 녹록하지 않았던 인도 정부 기관 공무원과의 협업, 사무실 상주 인원 대부분이 남성인 지역 문화, 반정부군의 투쟁으로 불안한 치안 등으로 꽤 힘들었던 2년을 보낸 후 입사한 곳이다. 


낯설기만 했던 인도를 뒤로하고 새로운 조직에서 다시 어느 정도 익숙한 중남미 지역을 맡게 되어 기뻤다. 오랜만에 스페인어를 쓸 수 있어서 반갑기도 했고 근무 환경도 조건도 업무도 모두 마음에 들었다. 같은 부서 동료들과도 잘 맞았고 회사 전체 분위기가 대체로 건강하고 활기찼다. 그런데 나는 이 회사에서조차도 곱게 접은 사직서 한 장을 봉투에 넣어 내 자리 서랍 맨 아래 칸에 넣어두었다. 언제든 꺼내서 제출할 수 있는 상태로. 날짜만 쓰면 되도록. 아무도 모르게. 


매주 월요일 오전에 해외사업 부서 전체 주간 회의가 있었다. 특별할 게 없는 그냥 평범한 회의다. 모난 성격의 동료가 있거나 강압적인 상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의견이나 주장을 펼치며 누군가와 대립하는 자리도 더더욱 아니다. 단순한 업무 보고를 위한 정기 회의였다. 당시 나는 부서 사람들과 재미나게 잘 지내는 편이었고 심지어 ‘대화 주도형’ 인간이었으며 부서장도 언제든 편하게 얘기 나눌 수 있는 온화하고 평화로운 타입이었다. 


나는 이 월요일 주간 회의가 너무 짐스러웠다.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들으면 풉 하고 웃을 일이다. 그런데 나는 정말이지 이 주간 회의가 괴로웠다. 지역별로 주요 사항을 기계적으로 보고하는 자리였음에도 내 차례가 오기 전 가슴이 두근거리며 긴장되었다. 막상 내 차례가 되면 아무렇지도 않게 보고를 하긴 했다. 가벼운 보고 자리, 그냥 대화하듯 몇 가지 사항만 공유하면 되는 자리, 막상 내 차례가 되면 다른 이들처럼 편안하게 몇 마디하고 지나가는 그런 회의. 그런데 이 회의를 대하는 내면의 심리 상태는 전쟁이었다. 전날 밤부터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하고 월요일 오전부터 회의에서의 내 순서가 끝나기 전까지 신경이 다 곤두섰다. 그러다 말을 하기 시작하면 안정감을 되찾고 끝나면 허무하고. 이 상황을 계속 반복했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는 세상 사람들 다 창문 너머 저편에서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는데 나 혼자 떨어져 나와서 전전긍긍 걱정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회의가 끝나고 나면 다시 창문 안으로 들어가 다시 편안해지고 그러다가 발표 자리 생기면 다시 밖으로 쫓겨나오는 듯한 기분. 멀쩡하게 지내다가도 ‘발표’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는 이벤트를 만나게 되면 혼자 감정적으로 널을 뛰고 있다는 사실이 참 괴로웠다. 


자존감은 바닥을 내리치고 온갖 형편없는 생각들로 괴로울 때 상상 가능한 최악의 상황은 퇴사다. 그만 다 내려놓고 싶고, 도망가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아니야, 괜찮아. 별거 아니야’라는 생각보다 ‘그래, 정 힘들면 회사를 그만두면 되지’, ‘너무 힘들면 사직서를 내면 되지’라는 주문이 더 효과가 컸다. 마음이 땅으로 꺼질 때 없는 에너지를 힘겹게 끌어모아 억지로 위로 올리기보다는 그냥 눈 딱 감고 더 아래로 확 밀어버리니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오는 듯한 느낌이랄까. 발표를 망치고 난 후 혹은 발표 스트레스로 심리적으로 요동치는 순간에 사직서를 살짝 꺼내서 만지작거리다 보면 묘한 위로와 함께 제정신이 조금 빨리 돌아오곤 했다. 




나를 괴롭히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생기는 최악의 상황이 무엇인지 그 가장 나쁜 광경을 상상해 보면 보이지 않던 게 보일 때가 있다. 해결하기가 막막했던 문제 자체보다 ‘해결하지 못한다’는 마음에 더 애를 태우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즉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문제 자체보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내 생각이 나를 더 힘들게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벼랑 끝 난간에 손잡이를 달아 놓은 것처럼 사직서를 써서 가지고 있었다. 퇴사라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 놓고 생각해 보면 ‘내 현재 상황이 회사를 그만둘 만한 일까지는 아니다’라는 마음이 든다. 사직서는 내게 불안한 마음으로 상황을 과장해서 받아들이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서랍 속에 몰래 넣어둔 사직서에 이런 순기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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